[박정수의 미술시장 이야기]예술하는 2014!
[박정수의 미술시장 이야기]예술하는 2014!
  • 박정수 미술평론가/ 정수화랑 대표
  • 승인 2014.04.06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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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미술평론가/ 정수화랑 대표
2014년에 들면서 지금까지 관심의 중심에 있었으나 관심의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했던 예술의 다양한 담론들이 수면으로 뜨고 있다.

작품의 가치라든가, 예술의 기준, 예술의 관점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취중대담으로 오가고 있다. 최근까지 거기에 동참하지 않았던 중년미술인까지 스스로에 대해 질문하고 거기에 답을 구하는 현상이 보이고 있다. 그리 새로운 일을 아니지만 미술시장의 새로운 담론을 형성할 때 늘 일어나던 일중의 하나이다.

90년대 중반 미술작품의 경중의 문제보다 국전출신 미술가와 명성과 인지도를 확인할 수 있었던 미술단체장의 미술품 판매가 어느 정도 한계점에 이르렀을 때도 이러한 현상이 있었다. 당시에는 구상미술과 포스트모더니즘이 주요 핵심 논제였다. 2005년을 즈음하여서는 대중예술과 고급예술, 물질과 정신에 대한 이야기들이 술자리에서 많이 거래되었다.

미술시장의 10년 주기설이 힘을 받아가는 현 시점에서는 과거와는 달리 예술에 대한 원론적 접근이 주요테마로 형성되고 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혹은 왜 미술품이 사회에 유통 되는가? 등에 대한 사회적 물음이 자주 거론된다. 이러한 논제는 미술인 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의 견해에도 저촉된다.

한편으로 보통사람에게 예술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하면 그들은 몹시 곤란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미술인에게 하더라도 머쓱한 표정이나 계면쩍은 얼굴로 서로 말을 아끼는 실정이다. 예술이라는 것이 그만큼 어렵기도 하거니와 예술과 관련된 글과 말들이 무수히 많다는 의미다.

술잔을 기울이며 하는 이야기들 중에서 예술에 관한 취중대담은 대다수가 젊은 미술인들의 소유물인 냥 취급되기 일쑤다. ‘인생은 연극이다. 연극은 예술이다. 고로 인생은 예술이다.’라는 당황스러운 삼단논법에 가타부타를 언질 할 수 있는 이들조차 그리 흔하지 않다. 모호한 미래에 의해 보통사람들은 인생을 예술로 보기도 한다. 그만큼 예술이라는 것을 이해하기가 모호하고 명징한 해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예술이 뭘까?라는 명제가 깊어지면 "개 코도 모르는 예술보다 지금 알 수 있는 술이나 마시자!" 고 소리치기 일쑤다.

인생이 예술이라면 세상 모든 이들이 예술가가 된다. 그러므로 최소한 인생이 예술이 아님은 분명하다. 다소 어색한 결론일 수 있지만 인생은 예술의 소재이며, 예술작품의 무늬정도로 이해되어 봄 직이 좋을 것 같다. 예술이라는 거창한 질문에 ‘예술은 00이다’라는 말을 할 수 없을 바엔 ‘이것은 이래서 예술이 아니라’라는 말로 큰 범주에서 하나씩 벗겨나가는 방법이 더 편하다.

인생이 예술이 아닌 이유는 모든 인생이 작품으로 남겨지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예술은 예술작품을 근본으로 한다. 인생에 대한 결과를 새로운 인생을 위한 작품으로 남겨지고 보존된다면 예술이 될 개연성이 크다. 그러므로 ‘인생은 예술이다.’라는 말보다 ‘모든 인생이 예술이 되는 것은 아니다.’로 고쳐 쓰면 좋을 듯하다. 이를 기준으로 예술이 될 수 있는 인생이라 한다면 예술작품을 생산하는 인생을 예술가라 할 수 있다.

2014년 들어 예술에 대한 담론이 새롭게 등장하는 것은 우리사회의 변화를 예측하는 일이며, 미술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예견하는 일임에 분명하다. 예술이거나 예술작품이거나 하는 원론에 대한 접근이 강화되면 될수록 현 시점에서 요구하는 인문학적 견해가 확장되는 일이다.

‘무기교의 기교’에 대한 미학적 접근을 사회통념에서 비롯하기 보다는 명확한 스토리보드를 통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최소한 현 시점에서 주목해야 할 바는 예술작품 형성에 무작위적 행위는 지난 시점으로 물려진다는 것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