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인터뷰]한국 근현대미술의 거장, 최만린 작가를 만나다
[미니인터뷰]한국 근현대미술의 거장, 최만린 작가를 만나다
  • 이은영 기자
  • 승인 2014.04.10 12: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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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 거역할 수 없어 선택한 조각, 60년을 넘겨 독보적인 단계로 숙성되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이 한국현대미술사 연구발전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기획한 ‘한국현대미술작가시리즈’이자 조각부문 첫 전시로 《최만린》전의 주인공, 최만린 작가를 만났다.

▲ <현(玄)>(석고, 120x20x80cm,1966)

 한국현대미술작가시리즈 <최만린>전은 원로 조각가 최만린(1935~)의 1950년대 말부터 2014년까지 60여 년 활동을 조망하는 회고전으로 그의 대표작 약 200점이 소개되며, 회화 등 주류 분야에 비해 기반이 취약했던 조각계에서 독자적인 조형언어를 구축하고, 후진 양성과 한국 조각 발전에 힘써 온 최만린을 새롭게 조명한다.

 최만린은 일제시대와 한국전쟁 등 한국 근현대사의 격변기를 몸소 체험한 작가이자 해방 이후 국내에서 미술교육을 받은 첫 번째 세대이다. 그는 단절된 전통의 계승과 현대성의 조화라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평생에 걸쳐 부단히 노력했으며, 한국적 조각의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자기 성찰을 통해 독자적인 조형언어를 구축해왔다. 또한 회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반이 열악한 조각 분야에서 오랜 세월동안 작가이자 교육가, 행정가로서 오랜 기간 활동하며 한국 조각계의 발전을 위해 헌신해 왔다.

▲ 최만린 작가

 다음은 지난 9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나눈 일문 일답이다.

▲ <이브 61-3>(청동, 86x18x88cm, 1961)

- ‘한국적인 조각’을 한다는 수식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리고 서구의 방식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작업 스타일을 구축하게 된 배경에 대해 설명해 달라.

 학생 때 미켈란젤로와 로댕을 좋아했고, 당시 그들의 작품들이 훌륭했지만, 늘 마음속에는 뭔가 마음에 파묻힐 만한 작업을 못하고 있었다. 초기에는 내가 습득한 기량을 가지고 했었지만 빠져들지 못했다. 그렇게 조끔씩 철이 들어가면서 그들의 아름다운 것에 마음이 무거워 점점 아닌데, 라는 생각을 했다. 작은 나라에서, 그것도 우리끼리 반 토막 난 나라에서 살고 있다, 라는 생각을 해보니 시대적 상황과 환경을 고려해, 내가 익히고자 하는 분야에서 비록 서툴러도 내 맘속에서 나오는 소리를 해야 하지 않은가, 생각했다.

 서양말로 ‘이브’를 붙여서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전시 처음에 소개된 이브 시리즈는, 내 스스로 하나의 인간을 작품에 담아보고자 하는 흔적이다. 당시 ‘실존’이라는 용어로 해석하는 분들이 많지만, 저는 그 언어를 잘 몰랐다. 그저 어린 시절에 내가 겪으면서 철들면서 겪은 우리들의 삶과 죽음, 생명에 대한 애틋함을 이브라는 이름에 담고 싶었다. 당시 관심을 많이 받았지만, 내 스스로 서구적인 문화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서구적인 틀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고, 작업실에 들어갔더니 컴퍼스와 자 등 서양식 도구들과 여기저기 얻어서 주워놨던 책들을 보고 장애가 되겠구나, 했다. 그것들을 모조리 버리고 나니 필통에 딱 하나 남은 것이 모서리가 나간 낡은 붓이더라. 붓을 사용하게 된 것이 작품의 기본적인 실마리가 됐다. 연필은 분석적인 사고의 정확한 도구인데, 붓은 그렇지 않다. 연필로 찍는 것과 붓으로 찍는 점의 차이는 엄청난 것이었다. 이것은 동양 문화권의 사념이 정립되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그 때부터 울타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붓을 가지고 서법을 공부한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신문지 조각과 휴지 조각에 점도 찍어 보고 그어도 봤다. 자로 그은 선과 점으로 찍은 선을 보면서 여기서 내가 더 나아갈 수 있지 않겠나 생각했다. 붓으로 그은 선을 서법적이라 해석하는데, 제 나름대로 그어보며 시작한 것이 <천·지·현·황>이다. 한자 문화권에서 하늘과 땅과 사람의 관계에서 연상되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 <천(天)>(시멘트, 60x20x45cm, 1965)


 

 한편, 이번 전시에는 1960년대 작가의 데뷔 작품으로 큰 주목을 받은 인체 조각 <이브>에서 시작해, 서예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한국적 조각의 뿌리를 탐색하기 시작한 1960년대 후반의 <천·지·현·황>과, 생명에 대한 관심을 본격적으로 형상화한 1970-80년대의 <태>가 전시된다. 또한 이보다 더욱 근원적인 형태로 환원된 1990년대 이후의 <O>까지 전시돼, 그의 작품세계를 총체적으로 살필 수 있다.

 특히, <태>와 <O> 시리즈 등 대형조각 시리즈는 청동주물 제작 이전 상태의 석고원형을 완성작과 함께 전시돼 작가의 작업 과정도 입체적으로 체감할 수 있다. 전시는 오는 7월 6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