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랑 이종상 화백 특별기고](8-9) 시리아, 팔레스타인 벽화와 동서 크리스찬 프레스코
[일랑 이종상 화백 특별기고](8-9) 시리아, 팔레스타인 벽화와 동서 크리스찬 프레스코
  • 일랑 이종상 화백/대한민국예술원회원
  • 승인 2014.04.11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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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일랑 이종상 화백/대한민국예술원 회원/서울대 초대미술관장/독도문화심기운동본부장
(8) Siria, Palestina 벽화
고대 Orient문명의 제문화권의 교차점으로 동서미술의 혼전과 모방이며 Arab벽화의 고전적 전통성을 Hellenism에 전했다. 발견된 벽화는 소수이나 Rome제국과 Parthia왕국의 접촉점에 위치한 Palmyza와 Dura Europos의 벽화가 많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Caravan city전형인 Palmyra는 분묘에서 장식화와 fresco의 선 벽화 등이 나왔고 3C초기의 승리의 여신 마가리트?엘?례디데 묘실 벽화는 사실적이 아니며 Hellenism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동방의 고유성을 지니고 있다. Greece의 영향을 받았으나 유형적 線, 운문류수묘의 장식화된 배경 처리에서 정화와 유사성이 있다. 기원전후 약 600년에 걸쳐 번영한 Dura-Europos의 서측 성벽에 세워진 Palmyra신전, Mitra신전 등의 벽화는 기적적으로 보존되어 선명한 색채를 보여주며 초기의 것이 뛰어난데 비해 후기의 것은 퇴보를 보인다. 단편을 모아 복원한 Zeus Theos신전 내실 벽화가 있는데 2C초의 것으로 보이며, Hellenism벽화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Orient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즉 초기의 작례에서 인물이 정면을 향한 립체적 묘사가 아닌 선묘에 의한 표현을 주로 하여, 얼굴 묘사도 개성과 표정 묘사에서 떠나 유형적(類型的)이지만 눈이 큰 것이 인상적이며 Palmyra초상 조각의 특질과 가깝다. 개인 주택의 세속적 벽화로 전투도?향연도?수렵도가 있으며 양식적 특징은 종교화와 같다. Mitra신전 수렵도에는 Iran미술의 특질인 달리는 말이 형식화되어 있고 구성이 도식적이며 동물의 모습이 동일하여 변화가 없다. 선묘법을 썼으며 달리는 말발굽 밑의 파문형?횡곡선은 6C경 고구려 무용총 벽화의 산천의 암시적 표현법과 유사하나 경영 위치에서 고구려 벽화보다 치졸하다.

(9) 東西 Christian Fresco
Roman catacomb벽화에서 1453年 토이기인이 Constantinople을 약탈한 이후까지의 동방 기독교국의 벽화를 Christaan fresco라 한다. 초기 기독교 미술은 작상의 배척은 아니나 신의 표현을 반대하여 수난의 Christ가 벽화에 표현된 것도 5C 이후인 듯하다.
이교도의 사원에 우상이 환조되어 있으므로 초기에는 환조를 배척하고 벽화와 도칠부조로 catacomb를 장식했으며 라체상을 피하여 이교도 미술과 구별지으려 했다. catacomb벽화 양식은 Pompeii와 유사하나 기독교의 도덕적?종교적 이상과 일치하는 순진성과 복지의 표현이 미흡하여 3C Roman fresco의 성모?성자?예언자의 도상에서 그 제재 이외에 기독교적 이념 표현을 찾을 수 없다.
당대에는 mosaic의 성화제작이 활발하여 Byzantium성당의 「Justinian황제」의 력사적 전설을 취급한 mosaic의 아름다움은 훌륭하다. 그것은 AD. 226~641의 Sassarides의 Persia에 영향을 받아 생겨, Rome Greece的 요소가 아닌, 진정한 Asia的 아름다움이며 동양 고유의 융단에서 나온 것이라 본다.
우상 파괴자의 금욕적 사도에 의해 Christian회화가 8~9C 동안 Byzantium을 떠나야 했으며 우상 배척의 편견으로 조각의 수요가 미흡해 Byzantium벽화, mosaic, 백도술(enamels), 양피지 벽화 등이 성행해 現今까지 보존돼 왔다. 11C의 Daphni성당 mosaic는 Byzantium미술 특성 그대로 연극적 장중성과 음산한 엄숙성과 묘사법의 빈약을 보이며, 극히 monunental한 의의를 가지나 반면 생기가 없고 Justinian황제 시대 이래로는 가일층 류형적 법칙에 고정되었다. 이 경향은 문예부흥기에 이르러 더욱 현저히 노출되었으나 Italy의 Giotto벽화와 비견할만한 Kahrie Djami의 mosaic가 Constantinople에서 제작되었다. 종교와 건축과 유기적 관련을 갖는 벽화는 Byzantine에서 전파되어 중세의 구주를 휩쓸었으며 다분히 퇴폐적인 Byzantine미술이 16C에 사멸될 때까지 西Asia와 東方에 미친 영향도 불소하며 Vasari에 의하면 13C 선묘화법이 Byzantine미술가에 의해 Florence에 수입되었다 한다.
Italy에 Byzantine미술품이 범람할 때 Duccio나 Giotto의 벽화는 고식적 전통을 파기하고 대상관찰, 인체관찰의 응물상형적 묘사법으로써 빈사 직전에서 신화법 회화 양식을 발견하여 준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