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홍성훈 홍성훈오르겔바우 사장]“오르겔의 한국화 모색해 다가올 ‘문화빅뱅’에 일조하고 싶어”
[인터뷰 - 홍성훈 홍성훈오르겔바우 사장]“오르겔의 한국화 모색해 다가올 ‘문화빅뱅’에 일조하고 싶어”
  • 윤다함 기자
  • 승인 2014.04.21 0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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옻칠 등 디자인적 변형, 부품 국산화로 한국화 실현 가능성 더해

     2014년 현재, 대한민국은 문화의 빅뱅, 즉 ‘문화 르네상스’를 앞두고 있는 중요한 시점이라고 홍성훈 홍성훈오르겔바우 사장은 말한다. 음악, 미술, 문학 등 모든 예술 장르가 동시다발적으로 융성할 시대가 오고 있다는 것. “흥미로운 얘기이죠? 2040년이 바로 그 시기라는 겁니다. 과거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300년마다 문화부흥이 이뤄져온 것을 알 수 있어요. 대표적으로 세종 이후 영조, 정조에도 그러했죠. 그냥 웃어넘길 얘기로 들을 수도 있었겠지만 제겐 이 말이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과연 2040년에는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이 2040년에는 어떤 결실을 맺었을지…”

     전형적인 유럽 고유의 문화라고 할 수 있는 파이프오르간(오르겔)을 우리의 것으로 소화할 수 있도록 한국화化에 힘쓰고 있는 그는 국내 최초이자 유일무이한 파이프오르간 제작자이다. 우연히 접하게 된 악기의 매력에 빠져 1987년 독일 뮌스터 목공 마이스터 밑에서 나무에 대해 배우고, 플라이터오르겔바우에서 3년간 정식 도제 수업을 받았다. 세계 최고의 파이프오르간 제작회사인 요하네스 클라이스 오르겔바우에 입사해 1997년 자격을 얻었다.

     그가 만든 파이프오르간은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뒤셀도르프 로버트 슈만 국립음대의 유르겐 쿠르사바 교수가 지난해 11월 임동주교좌대성당 공연에 와서 연주했던 파이프오르간이 너무나 좋았다며 극찬하기도 했고, 그 교수의 학생은 그를 주제로 논문을 쓰겠다고 했단다.

     파이프오르간을 스스로 지을 수 있는 국가는 전 세계에 30개국 정도이다. 그것도 대부분 유럽 국가이고, 아시아에서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처음 이 일에 뛰어든 것 자체가 기적이나 다름없었다고 말하는 홍 사장은 이제는 우리 전통적인 음색이 담겨있는 파이프오르간을 만들어 우리의 문화로 만드는 것까지 계획하고 있다. 옻칠을 하거나 칠보로 장식하는 등 디자인적 변형을 시도하며 그 계획에 한 발짝 더 다가가고 있다. 또한 파이프오르간의 부품 및 재료의 40% 이상을 국산화해 자체 제작 중이며, 앞으로 10년 안에 70%까지 끌어올릴 것이라고 한다. 유럽 내 제작회사 중 극히 일부만이 70% 자체 제작이 가능하다고 하니 그가 재료 국산화에 쏟은 노력은 실로 엄청난 것이다. 1998년 서울 대한성공회 주교좌성당에 첫 작품을 설치한 이후 올해 하반기 13번째 작품 공개를 앞둔 지금까지를 되돌아보면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온 것이기에 그의 ‘파이프오르간 한국화 계획’ 실현에 기대를 더하게 만든다.

     문화부흥이 도래한다는 미래의 그때가 왔을 때, 파이프오르간이 우리 정서와 감성을 대변할 수 있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으면 좋겠다는 그의 작품이 언젠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파이프오르간이 되지 않을까 바라본다.

-지난 1월, 제5회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을 수상했다. 수상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린다.
“‘한국에 돌아가 오르겔로 당신의 문화를 만들라.’ 긴 유학생활을 마치고 떠나올 때 마이스터가 내게 했던 말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파이프오르간은 수 세기동안 지속돼 온 유럽의 전형적이고도 전통적인 문화이다. 동시에 이를 만드는 국가는 유럽과 북미 등을 제외하고는 몇 개국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어쩌면 내겐 오르겔을 만드는 그 자체가 기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리는 그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닮아간다고 했다. 세종대왕이 종묘제례에 사용할 악기가 없어 중국으로부터 선물 받아온 편종을 다시 재구성해 한국의 독자적 음악을 만들며 외국의 전형적 문물이 들어올 때마다 우리의 것으로 보다 발전시키려고 했다. 정조 때의 실학자 홍대용은 중국에 가서 제일 먼저 보고자 한 것이 바로 ‘대풍금’이란 파이프오르간이었다는 기록도 있다. 나는 바로 여기에서 위안과 힘을 얻는다. 새로운 문화가 우리 것으로서 융화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언젠가는 우리 문화로 되지 않을까하는 희망으로 매달린다. 연초에 수상을 하니 더욱 더 의미가 더해지는 것 같았다. 문화대상을 내게 주신 것은 파이프오르간이 이제 우리의 시대로 넘어올 수 있도록 격려를 주시고자 한 뜻으로 알겠다.”

-국내 유일의 파이프오르간 제작자이다. 지금까지 제작한 파이프오르간들을 알려 달라.
“1998년 서울 대한성공회 주교좌성당에 첫 작품 설치 후, 파주 예수로교회, 서울 논현2동성당, 광주광역시 임동주교좌대성당, 구로아트밸리, 여수엑스포, 상암동 중소기업중앙회에 이르기까지 총 16대의 파이프오르간이 보급돼 있다. 특히 광주 임동주교좌대성당에 설치된 작품은 파이프의 개수가 2천5백 개에 이르며, 높이는 10m가량 된다. 올해 하반기, 양평 국수교회에 설치를 앞두고 있다.”

-지금껏 파이프오르간은 유럽 고유의 것으로 인식돼 왔다. 이런 파이프오르간이 어떻게 우리의 감성과 연결된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파이프오르간을 얘기하기 전, 우리에게 친숙한 악기인 풍금에 대해 말하고 싶다. 마이스터 자격증에서 파이프오르간뿐만 아니라 풍금도 제작할 수 있다고 쓰여 있을 만큼 풍금은 파이프오르간과 구조가 같다. 풍금이 본디 우리 전통 악기는 아니지만 우리 정서를 대변할 수 있는 악기라고 생각한다. 풍금만의 멜랑콜리한 감성, 허스키한 바람소리 등에서 느껴지는 우리네의 애환은 다른 어떤 악기보다도 가장 표현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파이프오르간 또한 우리의 악기가 될 수 있겠다고 내다보는 것이다. 또한 파이프오르간은 수천 개의 파이프가 모여 있는 건데, 이 파이프는 결국 피리와도 같다. 즉, 파이프오르간은 피리의 조합이다. 피리만큼 누구나 한번쯤은 연주해봤고 또 쉬운 악기가 있을까? 파이프오르간이 생소한 것 같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우리 감성을 가장 많이 닮은 악기이다.”

-파이프오르간이 우리의 것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작품적으로도 변형을 시키고 싶고, 또 파이프오르간을 구성하는 부분 등의 이름이 모두 라틴어로 돼 있는데 이를 우리말로 만들어 표기하고 싶다. 대중들은 물론이거니와 연주자들조차도 뜻을 정확히 이해하고 치는 이들이 몇이나 있을까. 파이프오르간의 주요 악기이름 하나하나씩 우리말로 바꿔 이름을 짓는 시도 중이다. 시도가 끊임없이 이뤄지다보면 정립도 가능하다고 본다. 작품적으로는 옻칠을 하거나 칠보로 만든 나비로 장식하는 등 시각적으로도 변형을 주고 있다. 언젠가는 우리 전통악기의 음색이 느껴지는 파이프오르간도 제작할 것이다. 파이프오르간을 망치겠다는 뜻이 아니다. 광주에 여섯 번째 작품 설치 후 봉헌연주회를 가진 뒤 산타체칠리아음악원의 한 교수가 내게 했던 말이 있다. ‘파이프오르간은 다른 악기와 달라서 그 나라의 그 민족이 지어야만 하는 악기’라고…. 이 말이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고 생각한다.”

-1986년 독일로 가 1998년 귀국했다. 12년간의 유학생활에서 배운 것은 무엇인가?
“매력적이고 신기해서 이 일에 뛰어들게 됐지만… 그렇게 힘들고 복잡한 일인지 잘 몰랐던 상태에서 시작하게 된 것 같다.(웃음) 12년 가까이 도제 생활을 하면서 가장 큰 수확은 파이프오르간의 역사를 체득했다는 거다. 내 마이스터께서 굉장히 많은 파이프오르간들을 직접 보고 경험할 수 있게 해줬다. 난 거의 현장에서 지내면서 파이프오르간의 모든 소리, 모든 문제점 그리고 파이프오르간에서 생길 수 있는 모든 일들은 다 본 것 같다. 완성되고 첫 소리가 터져 나올 때의 그 희열은 말할 것도 없다.”

-독일 유학 생활 11년 여 만에 오르겔바우마이스터 시험에 합격했다. 시험에서 요구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일단 자신의 마이스터로부터 시험을 응시해도 좋다는 허락을 먼저 받아야한다. 허락해주지 않으면 시험조차 볼 수 없다. 그리고 오르겔바우마이스터학교에 입학해 일련의 과정들을 이수한 후 최종적으로 시험을 볼 수 있다. 독일어부터 시작해 수학, 파이프오르간 설계법, 주물법 등 25개 정도 되는 과목을 배운다. 그리고 파이프오르간을 직접 제작하는 실기시험을 본다.”

-파이프오르간은 만든다고 하기 보다는 짓거나 세운다고 표현하더라.
“사이즈가 다양하긴 하지만 파이프오르간 자체가 마치 건축설계와도 같이 대형작업에 섬세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동 가능한 작은 파이프오르간은 300개 정도의 파이프로 이뤄진다. 대형 규모의 파이프오르간은 8000개 혹은 그 이상의 파이프가 들어갈 수도 있다. 하나 만드는데 1년은 족히 걸리고, 큰 작품은 2년에서 5년까지도 걸린다.”

-오르겔바우마이스터는 도제를 둘 수 있다고 했는데, 현재 제자가 있나?
“지나쳐간 이들은 많았다. 3개월, 6개월, 1년 주기로 다들 그만 두더라. 처음에는 내가 너무 힘들게 가르치는 건 아닌지 생각도 해봤는데, 그보다는 그들이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어려웠기에 그만두는 것이라 본다. 내가 맨몸으로 독일에서 배울 때와 비교해서는 조건이 너무나도 좋다. 나는 오랜 시간에 걸쳐 배웠던 것을, 내게 와서 배우면 속성으로 접할 수 있다고 해야 할까?(웃음) 바로 현장에 투입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 말이다. 요즘은 누가 배우러 온다고 해도 실은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그저 이렇게 나에게 온 선택이 옳은 결정이 될 수 있도록 내가 뒷바라지 해주는 정도… 이렇다 할 제자는 없고, 현재 2명이 배우고 있긴 하지만 한 명은 곧 그만 둘 것 같고, 다른 한 명은 배운지 이제야 두 달된 친구다.”

-파이프오르간을 직접 연주해볼 생각은 해본 적 없나?
“연주는 잘 못하고, 장난삼아 쳐보는 정도. 유학시절, 제작가로서 연주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도를 해봤지만 도저히 배울 시간이 안 나더라. 마이스터 과정만으로도 벅찼다. 더군다나 대부분 현장에 나가있고, 일이 끝나는 시간도 늦은 밤이라 레슨을 받기 힘들었다.”

-특별한 스토리가 담긴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스토리는 계속 발전돼 왔는데 그 정점을 달리는 게 바로 올해 10월쯤 공개될 13번째 작품이다. ‘산수화오르겔’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비대칭형태로 자연을 그렸다. 남한강과 산이 어우러진 동양화 같은 모습을 담아냈다. 디자인적 요소를 넣음으로써 한국화 실현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

-파이프오르간은 여전히 대중들에게 생소한 악기이고, 연주회도 만나보기 어렵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현재 국내에 150여 대의 파이프오르간이 있다. 장식용으로 놔둔 곳도 종종 있더라. 마치 인테리어를 위해 놔두는 것 과 같이 말이다. 앞으로는 이런 게 점점 지양되고, 오르겔이란 새로운 문화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질 것으로 내다본다. 연주회는 연 50~60회 정도 열리고 있지만 대부분 서울에 한정돼 있다. 연 200회를 목표로 나 또한 거기에 일조하려고 한다. 적어도 내 작품이 설치된 곳에서는 반드시 정기연주회를 갖도록 협의할 것이다. 실제로 중소기업중앙회에서는 봄과 가을에 정기연주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렇듯 연주회가 늘어나고 수요가 늘어남으로써 오르가니스트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고 자연스레 개런티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
“궁극적으로는 내 파이프오르간을 수출할 수 있길 꿈꿔본다. 어쩌면 유럽 시장까지도 넘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세계 최고의 파이프오르간을 만들겠다는 사명을 늘 갖고 있다. 꿈이 이뤄져 우리나라의 위상도 높이고, 우리의 것에 대한 자부심도 커졌으면 좋겠다. 앞으로 작품으로서 이를 증명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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