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유진성 ㈜창원건설 이사]남몰래 어려운 예술인들 후원… “마음 편히 창작에만 전념토록 해드리고 싶었다”
[인터뷰 - 유진성 ㈜창원건설 이사]남몰래 어려운 예술인들 후원… “마음 편히 창작에만 전념토록 해드리고 싶었다”
  • 윤다함 기자
  • 승인 2014.05.12 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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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 명목으로 구입한 작품만 500점, 훗날 미술관 지어 작가레지던시도 운영 계획

 

     현재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는 유진성 ㈜창원건설 이사는 20여 년 전, 우연히 알게 된 한 화가와의 인연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30여 명에 달하는 미술인들에게 전시회 개최 지원, 재료 구입, 작업실 임대 지원 등 경제적인 후원 및 정신적인 힘을 전달해왔다. 또한 예술인들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고, 그들의 마음을 열기 위해 도움에 앞서 작품을 꼭 구입하는 등 세심한 배려를 보여 예술인들도 유 이사의 진심 어린 마음을 알고 후원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 500점 가까이 달한다고 하니 그간 유 이사의 아낌없는 후원과 더불어 문화예술을 향한 깊은 애정을 알 수 있겠다.

     처음 시작은 어려운 환경에도 작업을 이어온 화가의 화실을 방문했을 때였다. 작업실 한쪽에 쌓여있는 그림들을 보고 유 이사는 가슴이 아팠다고 한다. 저 치열한 열정이 혹여나 빛을 보지 못할까봐 말이다. 그래서 그는 조심스레 화가에게 전시회를 열어주겠다고 제의했고, 이는 이창섭 화백의 전국 6개 도시 순회전으로 기록된다. 유 이사는 전시 개최를 도우며 다른 화가들도 알게 됐고, 몇몇 유명 작가들을 제외하곤 미술인들이 생계를 걱정하며 정작 작품에 열중하지 못하는 실정을 듣게 된다. 문화예술인들은 시대적 정신과 작가 정신으로 작품을 빚어내고, 그 작품들은 보는 이들에게 희망과 꿈을 주기도, 고된 삶을 위로해주기도 한다. 이것만으로도 존경받아할 이유가 충분한 예술인들이 어려운 생활을 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단다. “순수함과 맑은 영혼으로 작품에 대한 열의가 가득한 우리 문화 예술인들이 마음 편하게 창작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미술인을 위해서 작가의 작품을 구입하고, 재료비를 지원하고, 심지어는 건강을 위해 약을 지어주기도 했다. 작업실 임대를 위해 발 벗고 나서기도 했으며, 누수로 고생하는 작가의 집을 깨끗하게 보수해주기도 했다. 이는 모두 ‘어려운 여건에서 묵묵히 창작 열정을 불사르는 예술인들에게 따뜻한 향기를 전해주겠다’는 그의 마음가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늘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문화예술인들을 공경해야 우리나라가 문화강국이 될 수 있고, 문화강국이야말로 일류국가라고 말하는 유 이사는 앞으로 우리 문화예술계가 활짝 웃는 날만 가득할 수 있도록 예술인들에 대한 후원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했다.

-제5회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메세나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린다.
“영광스럽고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큰 상을 받게 된 내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다. 나보다도 더 훌륭한 분들이 많이 계시는데 말이다. 우리 문화예술계에 더욱 더 힘을 보태라는 뜻으로 알겠다. 수상 후, 주변에서 축하해주는 분들도 많고, <서울문화투데이>를 통해 보다 폭넓은 분야의 문화예술인들과 교류하는 자리도 가지며 정신없이 보낸 것 같다. 연극, 무용 등에 종사하시는 문화예술인분들과 함께 자리하며, 지금껏 내가 알았던 것보다 더 어려운 여건에서 작품 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그와 더불어, 문화예술인을 조명하고 그들의 육성을 도우며 문화예술의 기록과 저변확대를 위해 노력하는 문화예술전문 언론사 또한 너무도 힘든 상황에서 일하고 계시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보다 더 실질적인 도움과 후원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앞으로도 한결같이 문화예술인들을 위해 마음을 쓰겠다.”

-건설업에 임하면서 예술가들에 대한 후원에 힘써오셨다. 어떠한 계기로 이와 같은 적극적인 후원이 시작하게 됐는지 알고 싶다.
“90년대 초반쯤이었다. 미술작품이나 공연 보는 것을 좋아했지만 그저 평범한 관람객에 지나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이창섭 화백님을 우연히 알게 돼 그분과 가깝게 지내게 됐다. 작업실에 방문했던 적이 있는데 작품이 독특하고 참 좋더라. 그런데 그때 그분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셨는데, 이런 좋은 작품들이 빛을 보지 못하고 작업실에 쌓여있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화백님께 조심스레 전시를 열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다고 말을 꺼내면서 작가 열정으로 태어난 이 작품들을 많은 관람객들과 공유해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그래서 6개 도시 순회전을 열어드렸고, 그걸 계기로 다른 미술인들과도 만나면서 미술인들의 어려운 작업현실과 고충을 듣게 됐다. 재능은 있지만 재료비, 생계비 등으로 그 재능을 제대로 펼칠 수 없는 상황이 너무나도 안타까워 한 분, 한 분 도와드리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도움이나 후원을 받는 예술인들의 반응은 어땠나?
“예술인들은 예민하기도 하지만 아주 순수한 분들이다. 그러기에 작은 것에도 상처 받거나 마음 상하는 경우도 있다. 무작정 도움을 드리겠다가는 자존심 상할 수도 있어 나서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작품 구입을 시작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가까워진 후에는 재료비 명목으로 도와드리고…. 내가 조심스럽다는 걸 그분들도 알아주시고 내 진심을 봐주시는 것 같았다. 서로가 존중하며 진심으로 대하니 이제는 형제 같기도, 가족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일부러 호칭은 조심하고 있다. 다들 형님이라고 편하게 부르라고들 하시지만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 문화예술인들은 존경받아야할 분들인데, 내가 형님이라고 부르는 게 자칫 무례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자신을 낮추고, 겸허히 행동하면 혹여나 도움 받는 분들의 마음을 다치게 할 확률도 줄어들 것이다.”

-본지는 지난해 한 예술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집의 누수 등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이를 듣고 최근에 그 작가의 집을 무상 보수해줬다고 들었다. 어떻게 이뤄진 일인가?
“서울문화투데이를 통해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이 굉장히 아팠다. 집에서 물이 샌다는 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는 건설업에 종사하는 내가 그 누구보다도 잘 알지 않았겠나. 우리나라 예술계의 선구자이신 분이 그런 환경에서 살고 계시다니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찾아뵙고 보수에 대해 조심스럽게 제의 드리곤 이뤄졌다. "

-지금껏 주로 미술인들을 후원해오셨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별다른 이유는 없고, 처음 후원이 이창섭 화백님을 도와드리면서 시작됐기 때문에 화가들과의 인연이 이어져왔다. 그러다가 서울문화투데이와 인연을 맺은 뒤 무용인들을 만나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무용에는 문외한이라 그간 몰랐던 무용계의 열악한 여건을 뒤늦게야나마 듣고 이젠 무용인들도 도와드리려고 한다. 화가는 재료와 화실이 있으면 작품을 할 수 있고, 그 작품을 팔면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다. 그에 비해 무용인들은 공연 하나를 무대에 올리기까지의 과정도 녹록치 않을뿐더러 공연을 한다고 해서 티켓수익으로 이어지기도 힘들더라. 앞으로는 미술계뿐만 아니라 미력하게나마 무용인들께도 도움이 돼 드리고 싶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작업을 이어가는 예술인들의 의지 또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예술인분들과 대화를 하고 그분들의 작품을 보다보면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 할지라도 작업을 포기 못하는 것에 나도 모르게 공감하고 수긍이 가더라. 그런 의미에서 작품들을 보면 경건해지고 존경심이 든다. 예술인들마다 고유의 작가정신이 있다. 작가정신이란 작품철학, 영혼, 시대성 등이 어우러진 거라 생각하는데, 저마다의 구체적인 이유는 다를지언정 공통적으로는 이를 지니고 있으며, 그 정신으로 작업을 이어나가시는 거라 생각한다. 그 이상에 대해서는 감히 내가 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예술인 후원을 좀 더 규모를 키워 사업으로 발전시킬 계획은 없나? 혹은 뜻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 후원회 형태로 운영할 생각은 없는지 궁금하다.
“후원회에 대한 생각은 몇 년 전부터 갖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주로 미술 작가들을 도와드려왔는데, 그분들을 위해서는 후원회보다는 작품을 직접 구입해드리는 게 더 필요한 일이더라.(웃음) 미술계뿐만 아니라 예술계 전반에 두루 도움을 드리기 위해서는 서울문화투데이와 같은 문화예술전문 매체를 후원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다. 매체를 통해 도움이 널리 퍼질 수 있도록 하는 거다. 다행히 주변에서 이를 공감해주고 필요성을 절감해주는 분들이 많이 계셔서 조만간 착수하려고 한다.”

-아들 유대영 군이 애니메이션을 전공한다고 들었다. 진로에 영향을 좀 주셨을 것 같다.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이창섭, 이수동 선생님과 자주 보며 지냈으니…. 그분들 전시는 물론 여러 미술전시를 많이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주기적으로 인사동에 가서 갤러리 순회를 시켜주곤 했는데 그런 게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아들이 현재 예원예술대 만화게임영상학과에 재학 중인데, 처음부터 미술을 전공한 건 아니었다. 고등학생이 되고나서 아들은 음악을 전공하겠다며 작곡공부를 2년 넘게 하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입시를 6개월가량 앞뒀을 때에야 미술로 전환한 거다. 지원 당시, 지방대라 아쉽지 않냐 묻는 내게 자신이 가서 학교를 유명하게 만들면 된다고 말해 아빠로서 마음이 뭉클하기도 했다. 그래서 4년 장학생으로 입학해 잘 다니고 있는 중이다.”

-예술인들을 후원하면서 보람을 느꼈을 때는 언제인가?
“예술인들과 함께 어울리다보면 오히려 내가 치유 받고, 행복을 느낀다. 작품에 위안을 받기도 하고, 인간관계를 통해서는 즐거운 추억이 남질 않겠나. 건설업이 많이 힘든데, 그럴 때마다 작품이 날 위로해주고, 작가분들이 힘이 돼 준다. 20여 년 전 첫 시작한 이런 작은 도움들이 지금은 유명해진 작가분들께 보탬이 됐다고 생각하면 그보다 더 뿌듯한 게 있을까? 내가 도와드린 작가분들이 잘 되시고, 대중의 사랑을 받으면 그게 제일 보람차다.”

-미술인들을 돕기 위해 작품을 많이 구입하셨다고 했는데, 소장 작품수가 꽤나 많을 것 같다.
“이수동 화백님의 작품만 60여 점 갖고 있고, 이창섭 화백님 작품도 수십 점, 권기철 화백님의 작품도 5~6점은 된다. 다 합치면 500점 가까이 될 듯하다.”

-그렇게나 많은 작품들을 보관은 어떻게 하시나?
“작품수가 계속 늘어나다보니 보관할 데가 없어 애 좀 먹었다.(웃음) 실은 시골 부모님 댁에 일부 맡겨놨는데, 어머니 아버지께서 그걸 지키시느라 고생이 많으시다. 쌀가마니를 놔둔 방에 그림을 같이 놔뒀었는데 어느 날엔 도둑이 들어서 쌀 열 가마니를 다 훔쳐간 적이 있었다. 부모님께서 놀라서 방에 갔더니 쌀은 다 없어졌을지언정 그림은 그대로였다더라.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하기도 하지만 재밌는 에피소드다.

-소장 작품수가 수백 점이나 된다니 정말 방대한 컬렉션인데, 이들을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
“조그마한 미술관을 만들어서 비영리적인 공간으로 운영하고 싶다. 또한 작가분들을 위한 작업실도 함께 제공하면 어떨까 싶다. 아직은 구체적으로 추진한 내용은 없지만, 뜻이 같은 분들을 만나 향후 계획을 세울 것이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씀?
“모든 문화예술인들이 별 걱정 없이 오로지 작품에 열정을 다할 수 있는 환경 조성과 더불어 문화예술 언론사의 발전이 이뤄지길 바란다. 그렇다면 대중들도 문화예술 속으로 쉽게 들어가 예술인들과 같이 호흡하고 공감하며 문화예술이 주는 긍정적인 에너지로 고된 삶을 위로받고 치유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그랬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