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세상 물려줄 수 없다, 미안하다”
“이런 세상 물려줄 수 없다, 미안하다”
  • 이소리 글꾼
  • 승인 2014.05.13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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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양우석, 1천100만 관객 영화 ‘변호인’ 소설로 펴내다

“당시 광주 시민의 죽음을 절규하며 신촌역 앞에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고 죽어간 부산의 어느 노동자의 이야기는 신문 한 귀퉁이에도 실리지 않았다. / 대신, 방송과 신문은 대회 한 달 전부터 시작되는 사전행사를 연일 방송해서 국민의 눈과 귀를 그곳으로 집중시켰고, 대다수의 국민들은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도 못했다.”-71쪽

“이 쉐끼, 얌마! 내는 대학 못 가봐 모르겄지만, 저거 공부하기 싫어 지랄뱅이 떠는 거 아이면, 저 뭔데? 쟤들 사는 세상은 데모 몇 번 한다고 바뀌는 그런 말랑말랑한 세상이야? 내가 살아온 세상은 겁나 힘들었어. 세상이 데모로 바뀌어? 니미 뽕이다, 마.” -80쪽


 
ⓒ 21세기북스 


2014년, 올해 들어 첫 ‘천만 관객’을 끌어들이며,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5위에 오른 ‘변호인’. 그 영화 ‘변호인’이 소설 <변호인>(21세기북스)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소설 <변호인>은 같은 이름을 단 이 영화 시나리오와 연출을 맡았던 양우석 감독이 직접 썼다는 점에서 예전에 나온 ‘소설이 된 영화’와는 많이 다르다.

연기파 배우들이 펼치는 뜨거운 연기로 누적 관객 수 1100만을 훌쩍 넘기며, 한반도 남녘을 들썩이게 했던 영화 ‘변호인’. 이 영화는 속물에 가까웠던 세무 전문 변호사 송우식(송강호)이 다섯 차례에 걸친 공판을 거치며 인권 변호사로 거듭나는 길을 드라마틱하게 그려 큰 사랑을 받았다.

 

이 책을 펴낸 ‘21세기북스’는 “‘변호인’ 열풍은 잠들지 않았다!”며 “영화의 감동을 이어가고 싶은 관객들에게 소설 <변호인>은 영화를 통해 모두 들을 수 없었던 그 시절, 그 사회의 이야기를 상세히 들려줄 것”이라고 귀띔했다.

소설 <변호인>은 부당한 공권력에 마빡을 들이대며 맞선 인권 변호사가 겪는 고군분투기다. 이 소설은 그 고군분투 속에서도 순간순간 묻어나는 웃음과 감동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부산 돼지국밥이 자리 잡게 된 까닭, 1981년 부마항쟁, 전두환 정권이 만든 3S 정책 등… 이 소설은 그 시대 상황을 사실 그대로 잘 그려내고 있어 요즘 젊은 세대들은 이 책 한 권으로 7~80년대를 거슬러 오를 수 있다.

“국가인 국민을 탄압하고 법을 짓밟았잖소?”

“사실, 우석에게 오늘은 정말 중요한 날이었다. 해동건설 일만 잘 처리한다면 우석은 동호 말처럼 전국구 변호사가 되는 것이었고, 고졸 출신 어쩌구 하는 무시도 더 이상은 받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 순간에 우석은 자꾸 순애가 눈에 밟혀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오늘의 운세가 동쪽에서 운명이 기다린다 했는데……” -136쪽

 

소설 <변호인>은 1980년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닌 특별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고졸이라는 짧은 학력 때문에 멸시하는 세상… 그 열등감 속에서 부동산 등기업무, 세무업무와 같은 ‘돈이 될 만한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맡았던 주인공 송우석. 그는 비록 가방끈은 짧지만 처세에 능수능란한, 그야말로 잔머리 잘 굴리는 그런 변호사다.

어느 날, 우석에게 은인과 같은 국밥집 주인아주머니 순애가 낳은 아들 진우가 시국사건에 휘말려 잡혀간다. 우석은 이 사건에서 부당한 공권력이 한 개인을 마구 짓밟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보게 된다. 우석은 그때부터 진우 변호인이 되기로 마음먹는다. 돈밖에 모르던 속물이었던 변호사가 이 우연한 일을 통해 참다운 인권변호사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우리의 아무렇지도 않은 평범한 일상은 누군가의 치열하고 특별한 투쟁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라는 말처럼 지난 80년대는 “다른 생각들이 억압받는 사회, 자기 목소리를 내면 구석으로 몰리는 사회, 겉으로 보이는 자유의 이면에 짓눌리고 세뇌당한 채 끌려 다니는 국민들이 어렵사리 숨 쉬는 사회”였다.

1980년대에 겪었던 엄청난 억압과 굴종은 케케묵은 이야기가 아니다. 2014년 오늘을 사는 우리 사회에 드리워진 그림자다. 세월호 침몰 참사와 그에 따른 구조상황, 정부 대응 등을 꼼꼼하게 살펴보라. 이 엄청난 사고가 지금 누군가 한순간 ‘아차’하는 실수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겠는가.

“압니다. 너무 잘 알지요.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그런데 증인이야말로 그 국가를 법적 근거도 없이 국가란 법의 개념도 모르면서 국가 보안 문제라고 마구 내질러서 국가인 국민을 탄압하고 법을 짓밟았잖소? 증인이 말하는 국가란 이 나라 정권을 강제로 찬탈한 일부 군인들, 그 사람들 아니오?” -230쪽

이 소설은 실제 일어났던 이야기를 주춧돌로 삼고 있다. 1981년에 일어났던 ‘부림사건’이 그것. ‘부림사건’은 절대권력을 쥔 이들이 바라볼 땐 매우 예민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 절대권력에게 개인이 무참하게 짓밟혔던 희생과 아픔은 누가 보상하겠는가. 세월이 흘렀다고 해서 어찌 그 아픈 삶을 모른 척 덮어둘 수 있겠는가.

이 소설은 역사책이나 영상자료 속에서 보았던 그 역사, 그 한 장면을 실제로 겪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그 시대를 건너온 세대에게는 지난날에 대한 반성과 교훈을, 그 시대를 겪지 못한 젊은 세대에게는 부모 세대가 지닌 아픈 역사를 통해 오늘과 내일을 비출 수 있다.


 
ⓒ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영화에서 못 다한 이야기, 소설로 다시 읽는다

“수경아! 먼저 정말 미안하다. 내 신문 보고 뛰어나갈 때만 해도 다 때려칠라 캤다. 그런데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진우한테도 그러면 안 되는 거고. 나나 당신한테도 이러면 안 되는 거고……. 근데 내 여기서 때려치면 계속 이럴 거 아이겠나. 여보, 내 포기할 수가 없다. 우리 건우, 연우한텐 이런 세상 물려줄 수가 없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수경아.” -243쪽

영화감독 양우석이 펴낸 장편소설 <변호인>은 영화 속에 나오는 생생한 대화를 글자를 통해 다시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변호인>은 영화에서는 인물이 내뱉는 대사와 행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소설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속내를 또렷하게 파헤치고 있어 영화와는 색다른 재미를 폭삭 안긴다.

영화감독 박찬욱은 추천사에서 “나도 내 각본, 또는 내 영화가 소설로 옮겨지는 예를 많이 보아왔다. 다시 말해 내가 쓰지는 않았다는 얘기”라며 “양우석은 감독이기도 해서, 각본의 문장에서 소설의 문장으로 그저 형식만 갈아탄 것이 아니라, 완성된 영화를 소설화했다. 이건 좀 중요한 차이”라고 평했다.

영화배우 송강호는 추천사에서 “작가 양우석은 소설을 통해 그분의 다양한 감정, 삶에 대한 빈틈없는 열정, 세상을 대하는 강직한 태도를 영화 그 이상으로 표현하고 있다”며 “영화에서 못 다한 이야기로 우리들에게 또 다른 감동을 가져다 줄 소설 <변호인>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적었다.

소설가 이인화는 추천사에서 “이것은 한국 현대사가 영원히 기억할 한 바보의 강인한 영혼이 태어나고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감동적인 이야기”라며 “한 편의 법정드라마를 중심으로 폭력과 공포가 지배했던 시대에 순수한 열정으로 자기만의 서사시를 써내려갔던 주인공의 영상들이 절망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낳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말하며 깊은 울림을 남긴다”고 썼다.

영화감독 양우석은 고려대학교에서 철학과 영문학을 공부했다. 그는 MBC 프로덕션 영화기획실 프로듀서와 SK인디펜던스 기획실장, (주)올댓스토리 창작본부 이사를 거쳐 지금은 (주)로커스 기획창작본부 이사로 있다.

2014년 제19회 ‘춘사영화상’ 신인감독상과 제9회 ‘맥스무비 최고의 영화상’ 최고의 감독상을 받았다. 주요작품으로는 2008년 만화 <로보트 태권브이>, 2009년 만화 <당신이 나를 사랑해야 한다면>, 2010년 만화 <칩>, 2011년 만화 <스틸레인> 등을 썼다. 2013년에는 영화 <변호인>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