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食道樂 12. <<국수명가>>
예술가의 食道樂 12. <<국수명가>>
  • 김종덕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의교수
  • 승인 2014.05.13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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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첫 데뷔무대는 1997년 3월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였다. ‘시와 무대미술과 남성춤의 만남’이라는 기획전에서 김성옥의 詩 [면죄부]를 바탕으로 ‘연극 에쿠우스를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묘사한’ 작품이었다.

이때 김성옥 시인의 초청으로 당시 문화부에서 재직하시다 국립극장장과 의정부예술의전당 사장을 역임하신 최진용 사장님을 처음 대면하게 되었다. 벌써 17년이란 세월을 ‘문화마당21’이라는 모임과 극장 운영자와 예술 감독으로 아름다운 인연을 맺고 있다. 전남 광양에서 출생해 순천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뒤, 부산에서 대학교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변변한 인맥이나 유무형의 자산도 없이 홀로 상경하여 무용수로서 뿐만 아니라 작가로서 활동이 보장된 서울시립무용단을 운 좋게 입단하게 되었다.

이후 창작활동과 학문에 뜻이 있어서 무용단을 그만두고 고군분투해야 하는 홀로서기를 선택했다. 사장님께서는 외롭고 고달픈 서울 생활에 보이지 않게 혹은 소리 없이 기댈 곳을 허락해주신 분, 좋은 자리에 초대를 해주시고 아름다운 인연을 맺게 해주셨으며, 필자의 모든 공연에 관객으로 오셔서 자리를 빛내주시고 응원해 주신 분, 늘 걱정과 보살핌으로 힘이 되어주신, 내게는 아버님 같은 분이시다.

 

광화문에서 삼청동 방향으로 진입하다가 폴란드 대사관을 끼고 쭉 들어가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분관 뒤편에 ‘국수명가’가 자리하고 있다.

한옥의 벽을 허물고 통유리로 마감한 이집은 실내가 훤히 들여다보이고 채광이 잘되어 좋다. 전시회에 들렀다가 작가와 찾아간 밥집은 소박하지만 정직하고 인심 또한 후한 곳으로 최진용 사장님의 인품과 참으로 많이 닮아 있었다.

필자가 꼽는 국수명가 최고의 음식은 곤드레 나물과 각종 채소를 들기름에 비벼 먹는 곤드레 비빔밥이다. 잘 데친 곤드레와 신선한 야채가 어우러져 다른 양념은 굳이 필요 없다. 그 맛과 향은 무심한 듯 미각을 자극하고, 먹은 후에도 맛깔스러운 향이 가득 남아 있어 여운이 꽤 오래가는 듯하다.

두 번째 음식은 수육 보쌈으로 수육과  부추무침, 잘 익은 갓김치를 깻잎에 함께 싸서 먹으면 신선한 부추와 시큼하고 쌉쌀한 갓김치 그리고 깻잎의 향이 부드럽고 단백한 수육과 함께 입안에서 앙상블을 이룬다. 이외에도 파전과 김치전, 멸치국수 등 다섯 가지의 음식을 맛보며 감탄할 즈음에 주인이 맛보라며 덤으로 권하는 야채비빔국수까지 각기 다른 맛에 도취되어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만끽했다.

비빔국수에는 멸치육수가 나오는데 멸치 이외에 다른 어떤 맛도 첨가되지 않아 음식 맛을 씻어내고 새로운 미각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제대로 하는 듯했다.

필자가 최상위 맛 집 목록에 국수명가를 두기로 한 이유를 굳이 말하라고 하면,
1. 참기름과 들기름뿐만 아니라 모든 식재료는 거짓이 없다.
2. 집에서 먹는 음식처럼 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운 사람에게 제격이다.
3. 인심 좋은 주인의 넉넉한 마음과 정성스러운 상차림이 사람을 감동시킨다.
4. 가격대비 만족도가 최고이다.
5. 어느 한 가지 맛없는 음식이 없다.
6. 음식 궁합에 잘 맞는 밑반찬과 양념장이 마련되어 있고, 식재료의 고유한 맛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이처럼 음식을 만드는 사람과 대접하는 사람의 정성과 인품에 따라 동일한 재료라도 맛은 달라질 수밖에 없나보다. ‘신체는 영혼을 담는 그릇’이라는 말처럼 평소 언행과 마음가짐에 따라 사람의 외모도 변화되는 모양이다. 계절의 여왕 5월에는 자상하고 꾸밈없이 소박한 최진용 사장님의 존안을 뵙고, 수줍어서 평소에 품고만 있었던 감사의 마음을  국수명가에서 꼭 전하고 싶다.

<<국수명가>>
서울시 종로구 사간동 9번지. ☎02-732-9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