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食道樂 14] 떡갈나무세상 '강마을 다람쥐'
[예술가의 食道樂 14] 떡갈나무세상 '강마을 다람쥐'
  • 김종덕 창작춤집단木대표/한예종 강의교수
  • 승인 2014.06.06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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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일정이 취소되거나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비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할지 난감하다. 딱히 누군가를 만나기도 어중간하고 집에 들러 쉬어 가기도 부족한 시간, 풍경이 좋은 찻집에서 신문을 읽거나 가방에 넣고 다니는 책을 읽어도 좋고, 근처 영화관으로 발길을 돌려 보고 싶었던 영화를 감상하는 것도 방법이다.

집중하고 싶은 공연이나 전시, 영화를 혼자 관람하는 것에 익숙한 상태라 낯설거나 어색한 일도 아니다. 오늘 감상해야할 영화의 필요충분조건은 가장 근접한 시간에 시작하여 약속 시간 30분 전에 끝나야한다는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영화이다. 즉, 예술성이나 관람객의 평점을 고려하고 따질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다행이 5분 후에 시작하여 약속시간 30분 전쯤 끝나는 [어거스트 - 가족의 초상]을 관람하게 되었다.

지나온 길은 돌이킬 수 없고, 가야할 길은 끝이 보이지 않으니 인생 참 얄궂다.

-김종덕의 책 "모난돌에 호통치지마라" 中에서-

이 영화의 시작은 오랫동안 병든 아내 곁을 지키고 있던 교수이자 시인인 남편이 아내를 위해 가사도우미를 고용하고 외출한 뒤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는데, 사인(死因)은 자살로 밝혀진다. 장례식을 치른 가족들은 오랫동안 떨어져 살아온 탓인지 어색하고 낯설다. 저녁 식사를 하는 내내 갈등은 표면으로 드러나고 충돌하면서 가족이 해체되는 과정을 낱낱이 보여준다.

가족들의 불행은 마치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것처럼 남편의 외도 대상이 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고 배신감과 암 투병의 고통을 견뎌내기 위해 약물 중독이 되어버린 어머니를 누가 모실 것인가를 두고 갈등하는 세 자매, 불행이 유전 된다면 아마도 이 영화와 같을 것이다.

첫째 딸은 아버지의 기대를 뒤로한 채 사랑을 선택하지만 남편의 외도로 상처받고 이혼을 준비 중이며, 둘째 딸은 사랑하는 사촌 동생이 아버지와 이모의 외도로 태어난 남매지간이라는 사실을 알고 분노하며 집을 떠나게 된다. 째 딸은 사랑하는 남자와 약혼을 한 후에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한다. 그러나 약혼자는 어린 조카와 대마초를 피우며 성적 유희를 즐기다 들켜서 도망치듯 집을 떠나며 울부짖는다.

한 가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따로 없다. 온 가족이 모여서 소통하고 유대감과 결속력을 확인할 수 있는 식사시간, 그러나 영화 ‘어거스트-가족의 초상’은 소통하는 법을 잊어버린 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장례식을 치른 후 경건해야할 식사 시간에 대화는 단절되고 고함을 치거나 물건을 집어던지는 등, 언제 한꺼번에 터져버릴지 모를 시한폭탄처럼 영화를 보는 내내 위태롭기만 하다. 시대적 배경은 현재가 아니라 과거이지만 감정표현이 서툴고, 분노조절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현대인들의 초상을 보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고, 한 편으로는 안타깝고 슬펐다.

▲강마을 다람쥐의 주요 메뉴
강남에서 자동차로 20~30분 정도의 거리인 팔당댐 상류에 자리 잡은 ‘떡갈나무세상 강마을 다람쥐’는 도토리음식 전문점이다. 산을 등지고 잘 가꾸어진 넓은 정원을 걷다보면 끝자락에 팔당호가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예약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오자마자 자리 잡고 앉아서 바로 식사할 수 있는 곳도 아니다.

번호표를 받고 두어 시간 기다리는 것이 예사이지만 온 가족이 담소를 나누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좋은 곳이기도 하다. 음식점 상호에서도 눈치를 챘겠지만 이곳 음식은 모두 도토리 분말가루가 주재료이다,

내가 좋아하는 도토리 전병은 담백하고 속이 편안한 음식으로 도토리 전을 얇게 붙여내어 그 안에 두부와 고기, 야채를 다지고 말아서 따뜻하게 내어 놓는데 강렬한 맛으로 미각을 자극하지 않으나 재료에서 볼 수 있듯이 건강에 좋은 음식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쫀득해서 젓가락으로 집어도 부서지지 않는 도토리묵과 된장에 비벼먹는 도토리야채 비빔밥, 도토리 파전에 오징어를 얹어서 구운 도토리 파전, 묵사발과 도토리 비빔국수, 수육 등 어른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미각까지 사로잡은 맛있는 요리 천국이다.

마음이 지치거나 외로울 때, 온가족이 모여 두어 시간 기다릴 준비를 하고 ‘떡갈나무세상 강마을 다람쥐’에서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보자. 혼자 가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힘들고 무료했던 삶의 여정에 내가 보지 못한 아름다운 동행, 가족들이 함께 해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될 것이다.

떡갈나무세상 강마을 다람쥐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삼성리 299-2. ☎031-762-55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