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食道樂 15] <<루이 14세>> 김종덕/무용가
[예술가의 食道樂 15] <<루이 14세>> 김종덕/무용가
  • 김종덕 창작춤집단木대표/한예종 강의교수
  • 승인 2014.06.20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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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형태심리를 통해 무료해하는 학생들의 성격을 파악하곤 한다.
인간의 행동양식은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어서 습관을 관찰하다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성격이 급한지, 다혈질인지, 탐욕스러운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기본적 예의를 갖추고 있는지, 품격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지 등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춤을 권력의 도구로 사용한 루이 14세의 식습관을 보면 어떤 심리적 불안과 행동장애를 겪고 있었는지 짐작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루이 14세(Louis XIV ; 1638-1715)는 왕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기 위해 무용과 소품을 정치권력의 도구로 활용하여 '태양왕'이라고 불렸다. 부르봉 절대왕정의 전성기를 구사하게 된 루이 14세는 아버지인 루이 13세와 안도트리슈가 결혼한 지 23년 만에 생제르맹앙레에서 태어나 5세 때 왕으로 즉위하여, 모후의 섭정과 재상으로 임명된 J. 마자랭으로 하여금 국정을 보필하게 했다. 전쟁으로 나라가 피폐하여 국민들은 점차 반항의 기미를 보였고, 파리고등법원은 국민의 입장을 대표하여 왕권에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프롱드의 난이 일어나 전국을 혼란에 빠뜨렸고, 파리를 떠나 모후와 각지로 유랑하며 고난을 겪기도 했다. 프롱드 난이 진압되고 재상 마자랭이 죽자 1661년 루이 14세의 친정이 시작된다. 그로부터 '살아있는 법률', "짐은 곧 국가이다."라고 할 만큼 절대주의시대의 대표적 전제군주가 되었으며, 베르사유궁전은 유럽문화의 중심이 되었다. 왕의 후원으로 코르네유, 라신, 몰리에르 등의 거장이 고전주의 문학을 꽃피웠으며, 프랑스어가 우아하고 세련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프랑스는 아주 높은 이상을 가진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나라로 생각하며 현실을 자신의 이상에 부합시키는 노력을 기울이고 무용을 하나의 예술로 간주하는 등, 모든 예술은 가장 높은 수준에 도달함으로써 프랑스의 권위에 기여할 수 있고 기여해야한다고 믿었다. 자신도 직접 궁정발레에 출연하여 1670년 32세에 춤추기를 멈추지만 이후에도 무용의 발전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한다. 그 대표적인 예로 세계 최초로 1661년 왕립 무용 아카데미(Academie Royale de Dance)를 설립하여 전문적인 무용수를 배출하고자 했다. 또 예술가들에게 연금을 주어 적극적으로 궁정 발레를 장려했으며, 국가에서 자금을 보조해주고 예술가 스스로 작품 주제를 정하여 창작할 수 있게 하였다.
루이 14세는 절대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정치적인 의도를 발레로 표출하려했다.
가면을 앞과 뒤로 쓰고나와 인간의 이중적인 내면을 표현하기도 했으며, 가면과 의상을 통해 더욱 생생하게 작품의 분위기를 이끌었다. 발레의 중간에 낭송하듯 노랫말이나 이야기가 등장하였으며, 그가 직접 춤을 출 경우 주변에서 루이 14세를 찬양하는 내용의 시를 낭송해야했다. 궁중발레가 삽입된 축제의 특징은 발레 공연 마지막에 모든 무대장치와 소품, 의상을 대부분 태워버렸다는 것이다. 1664년 '마법성의 쾌락'까지 계속된 이와 같은 행위는 공연자와 관객이 정성으로 만들어진 장치들을 소각하게 함으로써 심리적 희열과 왕의 능력을 과시하려했다.

루이 14세의 식습관은 교양을 따지는 프랑스 문화와 최고의 예술 전성기를 꽃피운 왕의 품격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맛을 음미하기도 전에 순식간에 흡입하듯 먹어치우는 탐욕으로 비만과 위장장애를 겪어 화장실에 가기도 전에 서서 실수를 하였으며, 불후한 어린 시절과 계속되는 왕권에 대한 도전으로 심리적 강박, 정서적 불안이 폭식이라는 행동장애로 전이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절대 권력과 부(富)를 통해 명예와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행복을 누려보지 못한 태양의 왕 루이 14세는 나보다 더 행복했을지 생각하게 되는 주말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