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바르드 뭉크-영혼의 시>展, 예술의 전당서 개최
<에드바르드 뭉크-영혼의 시>展, 예술의 전당서 개최
  • 고무정 기자
  • 승인 2014.07.03 15: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절규> 석판화 버전, <생의 춤>, <마돈나> 등 뭉크 대표작 만날 수 있어

지난 3일부터 오는 10월 12일(일)까지 표현주의 미술의 선구자 에드바르드 뭉크의 회고전이 예술의전당에서 개최된다.

<에드바르드 뭉크-영혼의 시 Edvard Munch and the Modern Soul>展 라는 이름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뭉크의 걸작 <절규 The Scream> 석판화 버전을 포함해 유화버전 <생의 춤 The Dance of Life>, <마돈나 Madonna>, <뱀파이어 Vampire>, <키스 The Kiss>등 뭉크의 대표작과 뭉크의 셀프카메라 등 총 99점의 작품을 전시한다.

이번 전시로 뭉크의 전반적인 작품세계를 조망하고, 20세기 초 격동의 유럽을 살아낸 그가 어떻게 자신의 운명을 극복하고, 예술로 승화시켰는지 확인할 수 있다.

전시에 앞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욘 우베 스테이하우그 뭉크미술관 수석 큐레이터는 “뭉크는 1894년 처음 동판화를 시도한 이래 계속 석판화를 제작하며, 판화에서도 발군의 작품을 남겼다”며 “한국에 온 석판화 ‘절규’는 뭉크가 1895년 제작한 이후 자신을 홍보하는 대표적인 이미지로 활용해 남다른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뭉크 미술관 스테인 올리브 헨릭센 관장은 "2년전 뭉크전을 제안받고 한국전을 추진해왔다"며 "1920년대 위상을 떨친 뭉크는 노르웨이의 아이덴티이며 현대미술계의 천재"고 말했다. 그는 "1944년 뭉크가 사망이후 2만4000여점이 기증됐다"며 이 가운데 회화 석판화, 영상등을 엄선해 100여점이 건너왔다"고 덧붙였다.

욘 우베 스테이하우그 뭉크미술관 수석 큐레이터가 뭉크의 『지옥에서의 자화상』을 설명하고 있다.

현대인의 불안과 소외를 표현한 뭉크의 걸작 <절규 The Scream>

<절규 The Scream>는 신을 잃고 현대 사회의 물질주의에 지친 현대인들의 불안을 표현한 작품으로 해석된다. 뭉크는 여러 버전의 <절규>를 제작했는데, 우리에게 알려진 작품은 네 가지 버전이다. 각각 유화, 템페라, 크레용, 파스텔로 그려졌고, 판화로도 제작됐다.

이번 전시는 1994년과 2004년 작품 도난 사건으로 인해 해외반출이 어렵게 된 회화 버전 대신 1895년 석판화로 제작된 흑백의 강렬한 <절규>를 만나볼 수 있다. 판화 버전의 <절규>는 2006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전시된 이후 8년 만에 처음 해외에서 공개된다.

삶과 죽음과 사랑에 관한 시 - <생의 프리즈> 연작

뭉크가 “삶과 죽음과 사랑에 관한 시” 라고 표현한 <생의 프리즈>는 사랑, 삶의 불안, 고독, 죽음 등 인간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감정과 삶의 단면을 테마로 구성한 연작이다. 1893년 베를린에서 머무르던 시기에 ‘사랑’을 주제로 시리즈를 연구하기 시작하며 1895년 첫 전시가 열렸다.

고독한 인생을 살았던 뭉크는  비관적인 인생관을 통해 바라본 인간 본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
<생의 프리즈> 연작은 잘 알려진 <절규 The Scream>를 포함 <생의 춤 The Dance of Life>, <마돈나 Madonna>, <뱀파이어 Vampire>, <키스 The Kiss>등 뭉크의 대표작 대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이번 전시는 유화 1점과 판화 3점으로 이루어진 <키스> 시리즈를 만나볼 수 있다.

뭉크의 자화상, 그리고 셀프카메라

현재 뭉크의 자화상은 70점의 유화와 20여 점의 판화, 100여 점의 수채화와 드로잉으로 남아있다.

뭉크는 회화 외에 새롭게 등장한 사진과 영화와 같은 신기술에 관심이 많았다. 산업화와 함께 영상 매체가 비약적으로 발전했던 시기였던 세기말, 카메라 렌즈로 세상을 보는 모더니스트였던 그는 30여 년간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이번 전시는 뭉크의 다양한 자화상 10점이 전시된다. 회화로 제작된 작품 5점 <자화상 Self-Portrait>(1882), <지옥에서의 자화상 Self-Portrait in Hell>(1903), <스페인독감 직후의 자화상 Self-Portrait after the Spanish Flu>(1919), <유리 베란다에서의 자화상 Self-Portrait on the Glass Veranda>(1930-33), <대구 머리 요리를 먹는 자화상 Self-Portrait, with a Cod’s Head on the Plate>(1940-42), 판화로 제작된 작품 1점 <팔뼈가 있는 자화상 Self-Portrait>(1895), 셀프 카메라 사진 4점을 만나볼 수 있다.

키스 The Kiss IV(1902)

뭉크가 가진 또 하나의 수식어 - 판화 마스터

판화분야의 선구자이기도 했던 뭉크는 유화 약 1,100 점, 판화 약 18,000 점, 드로잉과 수채화 4,500여 점을 남겼다.

총 20,000여점의 작품 중 대다수를 판화 작품으로 남겼다는 사실은 뭉크가 판화에 상당히 매료되었고, 평생 동안 끊임없이 판화를 연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뭉크는 1894년 처음으로 동판화 기법을 시도한 이래, 당시 매우 세련된 기법의 다색 석판화를 제작하던 툴루즈 로트렉(1864~1901)에게서 영향을 받아 지속적으로 석판화를 제작한다.

당시 회화 작품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었던 뭉크는 본격적으로 판화 제작에 뛰어들게 되었고, 이것은 판화 분야에서도 회화만큼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게 되는 발판이 되었다.

뭉크는 초기에 이미 회화로 표현했던 이미지와 모티프를 이용한 복제본 형식의 판화를 제작했다. 그러나 점차적으로 <생의 프리즈>에 속하는 작품들이 판화로 탄생하면서, 단순한 복제품이 아닌 완성된 작품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때로 뭉크의 판화는 회화보다 높게 평가되기도 했는데, <질투 Jealousy>의 경우 유화보다 더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