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국립현대무용단의 신작 ‘우회공간'
[이근수의 무용평론]국립현대무용단의 신작 ‘우회공간'
  • 이근수(무용평론가, 경희대명예교수)
  • 승인 2014.08.04 1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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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근수 교수
‘역사와 기억’이란 주제아래 한국현대무용의 뿌리를 찾고 ‘렉처 퍼포먼스’란 공연형식을 통해 현대무용의 지평을 확대해가는 것이 국립현대무용단에서 두 번 째 시즌을 맞는 안애순 예술감독의 역점사업이다. 현대무용의 이나현, 발레의 김지영과 김주원, 전통춤의 김운태 등 중견들을 등장시켜 자신의 춤을 말하도록 한 <춤이 말하다-Cross Cut,(12월 8일~15일, 자유소극장)>가 첫 시도였다면 <우회공간(7.25~27, 아르코대극장)>은 그 두 번 째 작업이다.

연출가(방혜진)에 의하면 <우회공간>의 기획의도는 세 가지로 보인다. 김수근이 설계한 건축물인 공간사랑에서 현대무용공연이 처음 이루어진 사실을 환기시키면서 무용무대로서 공간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것, 공간사랑 무대에서 가장 활발하게 공연한 3인의 현대무용가 이정희, 남정호, 안신희를 불러내어 당시의 작품을 복원시키는 것, 그리고 출연자들의 체험과 육성을 통해 당시 한국무용과 발레라는 장르에 새롭게 추가된 현대무용과 컨템퍼러리댄스(contemporary dance)의 관계를 설정하고 개념을 구분해보자는 것이다.

통금해제를 알리는 사이렌소리와 함께 무대가 열린다. 남정호가 발걸음으로 당시 춤추었던 무대 면적을 측정한다. 대략 7평정도의 좁은 공간이다. 그녀는 불란서에서 귀국한 1982년 공연작품인 ‘대각선’, ‘계속’, ‘안녕하세요’를 차례로 보여주며 당시의 회상을 곁들인다. “공간이 좁을수록 움직임의 밀도는 커진다.” 오늘날의 화려해진 공연무대와 비교해볼 때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말이다. 안신희가 등장한다. ‘교감’(1981)과 ‘지열’(1983)이 공간사랑에 올린 대표적 작품이다.

그녀는 당시 자신의 안무를 기억하지 못한다. 어딘가 보존되고 있는 흐릿한 영상자료를 찾아내어 기억을 더듬어가며 동작들을 재생해간다. 가운데 놓인 의자 하나가 춤의 오브제다. 앉았다가 일어나 주변을 돌고 의자를 옮기기도 하며 공간을 만들고 허문다. ‘지열(地熱)’은 보다 강렬한 춤으로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정념의 춤을 추던 그녀의 특징을 떠오르게 한다.

무대에 건축가(김정후)가 등장해서 공간사랑의 구조를 설명한다. ‘다양한 문화적 용도에 따라 가변성과 기능성을 갖춘 작지만 큰집’이 그가 파악하고 있는 건물의 특징이다. 마지막으로 이정희가 등장한다. 천정에서 내려온 밧줄이 뱀이 똬리를 틀 듯 춤추는 이정희를 에워싸는 ‘실내(室內)’는 건물이 완공되기 전인 1976년 공연작이고 이어서 ‘검은 영혼의 노래’(1988)도 보여진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1970~80년대의 격동기에 겪었던 무용가의 아픔을 표현한 ‘살풀이 연작’ 중 한 작품이다.

기획의도를 무대에 구현하는 연출 면에서 볼 때 ‘우회공간’의 공연형식은 세련되고 신선하다. 객석 맨 앞자리에 질문자를 착석시켜 자연스럽게 무대를 객석으로 연장시키고 무대에 선 출연자들이 공연과 공간, 춤과 현실에 대한 주장을 풀어가도록 함으로써 컨템퍼러리댄스와 현대무용을 차별화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그러나 이 작품은 몇 가지 의문과 아쉬움을 남긴다. 첫째 컨템퍼러리댄스와 현대무용의 개념구분에 대해 관객들은 연출가만치 예민하지 않다는 것이다. 안신희를 비롯한 출연자들 역시 양자를 동일한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는 듯 하다. 무대에서 복원된 1980년대의 현대무용은 그 당시의 컨템퍼러리댄스였고 컨템퍼러리를 표방하는 ‘우회공간’ 역시 현대무용이 아닌가. 양자가 서로 다른 실체를 갖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현학적인 개념구분을 공연중심에 끌어들임으로써 구성이 복잡해지고 관객과의 소통을 통해 현대무용의 이해도를 높이려는 효과가 약화된 것은 세 마리 토끼를 한몫에 잡으려는 연출자의 과욕 때문이 아닐까 한다. ‘우회공간(迂廻空間)’이란 제목은 설명하기 어려운 신조어다. 이를 영역한 ‘the Oblique Space’ 역시 모호한 개념이다. 피사의 사탑이나 다락방 같은 경사진 공간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직선 아닌 우회적 경로를 통해 목표에 다가가고 싶다는 의도였다면 ‘Detoured'와 같은 용어가 적합하고 아예 제목을 <춤이 말하다 2-Time & Space> 쯤으로 바꾸는 것이 이해도를 높일 수 있었을 것이다.

현대무용의 개척자들이 한 무대에 올라 초기의 춤을 복원하면서 설명을 곁들인 70분의 시간은 지루하지 않았다. ‘렉처 퍼포먼스(lecture performance)’라는 형식의 공연이 더욱 성공적이려면 춤의 포커스를 단순화하고 관객과의 쌍방 커뮤니케이션을 도입하는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수강생들과의 개방된 토론을 통해 강의는 완성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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