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불거진 박물관 수집 도난 미술품, 그마저도 숭고하다.
또 불거진 박물관 수집 도난 미술품, 그마저도 숭고하다.
  • 윤태석 뮤지엄 칼럼니스트(문화학 박사)
  • 승인 2014.08.14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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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윤태석/뮤지엄 칼럼니스트(문화학 박사)/한국박물관협회 기획지원실장/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겸임교수/한국박물관학회 이사/한국박물관교육학회 이사
7월 10일 ‘사립박물관에서 도난 문화재 '우르르'..박물관장이 무더기 소유’라는 제목의 저녁뉴스가 공중파를 타면서 종로에 있는 해당 박물관이 큰 홍역을 치르고 있다. 뉴스의 주요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추정가격이 28억 원에 달하는 조선시대 불교 미술품 5점이 한꺼번에 경매시장에 나왔는데 이를 조계종과 문화재청 도난미술품목록과 비교해보니 10년에서 20여 년 전에 사찰에서 도난당한 조선 후기 불교 미술품들이었다. 여기에는 석가모니 법회장면을 그린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세 분의 부처님이 등장하는 '삼불회도(三佛會圖)' 목불에 금칠을 한 '목조관음보살좌상(木造觀音菩薩坐像)' 등이 포함되어있었다고 한다.

이 미술품들은 경매 출품 전까지 한 사립박물관장이 소장해 온 것으로 경찰이 수사를 해보니 박물관장의 개인 창고에도 도난문화재가 무려 400여 점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해당 박물관장이 미술품 수집을 위해 사채를 빌렸다가 못 갚게 되자, 사채업자가 담보물을 경매에 내놓아 공개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에 대해 해당 박물관장은 인터뷰에서 “박물관에 공개하기 위해 수집한 건데 도난품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사겠느냐?”고 항변했다. 그러나 경찰은 해당 관장이 불교미술 전문가인 만큼 도난품이란 걸 모를 리 없었을 것이라고 보고 문화재 은닉 혐의로 입건하는 한편 도난 경위와 유통 경로를 추적하고 있다고 밝혔다.

뉴스와 수사의 관점은 이 관장이 장물인줄 알고 구입했냐? 는 것으로 비교적 단순한 쟁점이다. 그러나 박물관전문가들이 보는 시각은 다르다.

첫째, 담보로 설정한 자료가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이하 박미법)’ 상 등록된 것이냐는 것. 둘째, 등록된 자료가 아니라면 이 미술품을 박물관 소장 자료로 봐야하는지? 아니면 단순 개인의 사유재산으로 볼 것 인지이다. 마지막으로 박물관 사람들은 어떠한 경우도 미술품을 담보로 잡을 수 없다는 것인지 이다. 이는 제도적인 것과 박물관 윤리가 혼재되어있어 그 실마리를 풀기가 쉽지 않다.

먼저 박물관장이 밝힌바와 같이 이 미술품들은 공개된 장소인 박물관에 전시하여 관람객들에게 문화향유와 교육 등을 하기위해 수집한 것으로, 도난품인줄 알았다면 거금의 사재를 털어 수집했을까? 이는 상식선에서 봐도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또한 이 박물관은 똑 같은 사안으로 2006년에도 수사를 받았다. 그 결과 무혐의 처리되었다는 사실역시 이 같은 주장의 신빙성을 뒷받침한다.

이번 사건직후 필자가 서울시 소재 박물관 등록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서울시에 확인한 결과 도난품은 없다고 확인해주었다. 이것으로 등록 자료가 담보로 설정되지 않았음도 확인된 샘이다.

박미법은 박물관 등록 시 일정한 수량의 자료를 주소지 광역자치단체에 등록하게 되어있다. 등록해야할 수량은 박물관 등급에 따라 60~100점 이상으로 비교적 미미한 편이다. 그러나 등록 후 소장 자료 수, 학예사 변경, 관람료 및 자료이용료 등의 변화로 인한 변경등록 사유가 발생하더라도 그때그때 반영하기가 쉽지 않을 뿐 더러 행정당국의 관리감독도 느슨해 적극적인 법적용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불교, 민속 등 6,000여점(문화체육관광부 발간 2013년도 문화기반시설 총람)을 소장하고 있는 이 박물관 역시 박미법상 등록 자료는 172점으로 총 소장자료 대비 2.9%에 불과하다. 그러나 매년 실시하는 정부 현황조사 시 등록 되지 않은 자료까지도 박물관스스로가 소장 자료라고 밝혔으며 박물관장 역시 박물관자료로 구입했다고 주장함에 따라 등록 외 자료도 박물관 소장품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격한 법적 잣대로 보면 박미법에 등록된 자료만을 합법적인 소장품으로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수사는 엄격한 법의 잣대만을 적용해야하기 때문에 등록 외 자료까지를 대상으로는 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는 박물관 전체를 대상으로 한 윤리강령이 없다. 일각에서는 국제박물관위원회(ICOM)의 윤리강령으로 볼 때 이번 사건은 문제가 심각하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장기 경제침체와 국공립박물관 관람료 무료운영, 유사 문화기반시설과의 무한 경쟁, 세월호 참사 등 반복되는 박물관 관람 환경위축 등은 사립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으며, 소장품 수집과정 및 등록 시 소장품의 진위는 물론 장물 여부마저 걸러낼 수 없는 현실은 윤리적인 운영의 의지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이렇듯 오늘날 우리 사립박물관·미술관(이하 박물관)은 생존과 운영의 심각한 위험에 노출되어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립에게 과연 엄격한 윤리적 잣대를 들이댈 수 있을까? 가혹하기까지 하다.

이번 정부는 문화융성을 큰 기조로 내세우고 있다. ‘문화가 있는 날’과 ‘길 위의 인문학 사업’ 시행 등은 그 대표적인 정책으로 국민들에게 문화를 통해 삶의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기 위함에 그 목적이 있다.

그러나 정부는 문화의 거점인 박물관 등 문화기반시설이 먼저 살아야 건전하고 수준 높은 문화향유가 가능하다는 사실부터 인식했으면 한다. 도난 미술품을 수집했다고 또 이를 담보로 잡혔다고 해서 박물관 등록을 취소하겠다는 엄포에 앞서 왜 이러한 일이 발생했는지? 어떻게 하면 잠재적 위험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지? 부터 고민해야한다.

결과는 차치하고 이번 사건에 연루된 박물관은 고맙게도 국가보물 2점, 서울시 유형문화재 11점, 서울시 문화재자료 1546점을 포함하여 6,000여점의 소장품을 순전히 사재로 수집해 알뜰하게 관리해왔다. 이는 어지간한 공립도 할 수 없는 큰 업적으로 한 가정의 숭고한 희생이 점철된 헌신의 축적물임을 사회는 인정해야 한다. 비록 일부 소장품의 유입경로가 불확실하다고해도 사립박물관이 있었기에 한데 모아 잘 관리될 수 있었다는 점은 높이 평가되어야한다.

정책당국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립에 있어서도 자료수집과 등록 시에 진위와 도난여부를 검증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한다. 또한 박물관의 모든 소장품이 등록될 수 있도록 법제를 정비하고 변경등록에 불편함이 없도록 정책적 지원과 뒷받침을 해주어야한다. 이번 사건으로 결코 박물관이 다쳐서는 안 되며, 행여나 박물관이 도난 문화재의 집합지로 인식될까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