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정우범 화백]눈앞 펼쳐진 지상낙원 ‘판타지아’展, 유화보다 더 유화 같은 수채화의 비밀
[인터뷰 - 정우범 화백]눈앞 펼쳐진 지상낙원 ‘판타지아’展, 유화보다 더 유화 같은 수채화의 비밀
  • 인터뷰 이은영 편집국장 / 글 윤다함 기자
  • 승인 2014.09.01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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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고안해낸 畫具·작업방식 통해 국내 수채화 대가로…

▲정우범 화백
     수채화가 정우범의 전시가 이달 2일까지 선화랑에서 열린다. 대표작 ‘판타지아’ 시리즈 외에도 ‘설국’ 시리즈 등 작품 30여 점이 전시된다. 정 화백이 야생에서 대자연의 신비함에서 느낀 환희의 순간을 표현한 판타지아 시리즈는 사계를 표현한 500호 대작 및 최근 새롭게 시도한 수채물감과 아크릴의 혼용작업으로 더욱 두툼한 마티에르를 느낄 수 있었다는 평을 받은 바 있다.     정 화백은 국내 독보적인 수채화가로서, ‘수채화는 색깔이 풍부하지 못하고 중량감이 덜하다’란 편견에 맞서 그만의 독특하고 다양한 수채화의 표현방법을 연구하고 발전시켜왔다. 또한 크기의 제한이 있다는 수채화의 일반성을 깨고 100호에서 500호에 이르는 대작을 대담하게 그려내며 섬세한 감성을 큰 화면에 함께 담아내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자연을 주된 주제로 삼아왔는데, 특히 대표작 판타지아 시리즈는 자연과의 교감을 더욱 극대화한 표현으로 그려진 반추상적 특징을 지닌다. 수채화 고유의 투명, 우연 효과 외에도 색을 빼내는 기법과 그것을 다시 채우는 방법을 반복적으로 진행해 더욱 풍부하고, 깊이 있는 색을 만들어낸다.

     미술평론가 신항섭 씨는 “그의 수채화는 종이라는 재료가 가지고 있는 가벼움에서 벗어나고 있다. 수채화는 가벼운 그림이라는 일반적인 인식을 깨뜨리고 있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수채화가로는 매우 드물게 밀도와 중량감 있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정 화백은 그만의 독특한 기법과 도구로도 유명하다. 스트로크stroke(빠른 붓놀림으로 문지르기)라고 불리는 이 기법은 높은 밀도의 작품을 위해 그가 고안해낸 표현방법으로, 수제로 만든 고급수채화용 종이를 물에 적시고, 예리하고 탄력이 있는 갈필붓(거칠거칠한 유화 붓을 정 화백이 직접 짧게 잘라 만든 것) 끝에 안료를 발라 툭툭 치면서 표현하는 방식을 뜻한다. 이때 물감은 벌어진 종이에 스며들고, 종이가 마를 때 틈새가 제자리로 돌아가면서 착색되어 굳어지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정 화백은 이를 “색을 종이의 모세혈관까지 침투시키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많은 이들은 수채화가 그저 맑고, 투명한 느낌이라고 알고 있지만, 정 화백의  그것은 마치 유화를 쓴 것과 같이 색의 밀도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이와 같은 기법을 쓴 작품은 변색, 탈색에서도 자유롭다고 할 수 있다.

     유년시절, 동네 훈장이었던 부친의 영향을 받아 지필묵을 끼고 살았던 정 화백은 어려서부터 농담의 감각을 익힘으로써, 수채화 작가로서의 운명적인 길을 닦아왔다. 교직 생활을 했을 당시 그는 방과 후 아이들의 미술을 지도하면서 어린아이들의 순수한 그림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아이들 같이 자유롭게 그리겠다’며 다짐했고, 40세가 넘어서야 교직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 뛰어들었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형태와 색감으로 작업을 이어오며 오늘날 그만의 독특한 화풍으로 미술애호가들의 애정을 받고 있다.

     전시가 열리고 있는 선화랑에서 정 화백을 만나 그의 작업세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얘기를 나눴다.

 -대표작 ‘판타지아’ 시리즈에 대한 소개 부탁한다.
“1990년 후반부터 꽃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당시 화가들은 꽃을 그린다고 하면 보통 화병에 꽂혀있는 꽃이나 그릴 때였는데, 난 다른 방향에서 그려보고 싶어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가 2002년 오승우 선생님과 함께 터키로 여행을 갔는데, 아타튀르크 대통령기념관을 찾았다가 영감을 얻게 됐다. 야생화가 기념관 내 뜰을 덮고 있는 모습을 보고 여기가 바로 지상낙원이라고 느낄 정도였다. 이렇게나 아름다운 것을 그림으로 옮길 수 있다면 너무나도 좋겠다고… 귀국 후 작은 꽃들을 수집해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일단 10호짜리부터 시작해 주변에 선보였더니 다들 반응이 좋더라. 그래서 점점 작품 크기를 키워나갔고 500호까지 온 거다. 판타지아 시리즈는 대작일수록 작품을 감상하기에 더 좋다고 생각한다. 마치 눈앞에 낙원이 펼쳐진 것 같은 느낌을 주니 말이다.”

▲정우범 화백 프로필: 개인전 : 미국 워싱턴 갤러리미셸, 서울 선화랑, 부산 타워갤러리, 프랑스 파리 갤러리실브 등 다수 /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 및 운영위원 역임

-처음에는 꽃만 그리다가 이후 이파리를 추가하고, 최근에는 문자까지 넣어 조형미를 더하고 있다.
“꽃 위주로 하다가 꽃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이파리들을 넣기 시작했다. 잎사귀라는 게 그렇게 예쁘고 아름다운지 새삼스레 느꼈다. 꽃과 거의 동등한 정도. 꽃만으로 색채적인 구성을 이뤘다면 이젠 녹색이 더해지며 시각적으로도 무게감이 느껴진다. 꽃만 있으면 현란할 수도 있지만 잎이 그 분위기를 딱 잡아준다고나 할까. 최근에는 문자까지 포함해 디자인적으로 새로움을 주고 있다. 글자라는 게 얼마든지 변형이 가능하고 그만큼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한다.”

-수채화임에도 유화에서 느낄 수 있는 깊이감과 입체감이 느껴진다.
“원래는 수채물감으로만 하다가 최근에는 수채물감으로 한 다음 유화로 덧칠하는 방식으로 작업하고 있다. 한마디로 혼합재료. 아크릴로도 해보고 있는데 써보니까 재밌고 좋더라. 아크릴로만 작업한 작품도 있다. 아직까지 수채로만 이뤄진 작품 비중이 더 높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균등하게 작업하려고 한다. 수채화는 보다 더 평면적이고 가볍고 옅은 느낌이잖나. 무게감이 풍부하고 깊이감과 색감을 표현하기 위해선 아크릴이 없어선 안 되겠더라. 수채화대로, 유화대로 각 특징을 살리며 손색없는 작품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예전에는 유화보다 쳐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걸 극복했고 뛰어넘었다고 본다. 그래서 평론가들이 내 수채화를 ‘반입체’라고 표현하곤 한다.”

-대체적으로 다수의 작가들이 유화를 선택한다. 수채화를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내가 어렸을 적 부친께서 산골동네 훈장님이셨는데, 덕분에 지필묵을 늘 가깝게 다룰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물을 사용하는 먹이 익숙했고 또 좋았다. 번짐, 종이의 효과나 질감, 물의 물성 등에 대해 일찍이 알았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레 수채를 하게 됐다.”

<설국>105X95cm acryl, arches canvas 2013

-작업과정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무엇보다도 화구畫具가 중요하다. 결정적으로 붓과 종이활용법, 물감활용법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난 수채화붓을 사용하지 않고 대신 유화붓을 칼로 들쭉날쭉 잘라 만든 갈필붓을 쓴다. 수채화붓은 선이 가지런하고 똑 떨어져 평범한 반면, 갈필붓을 빳빳하고 건조한 느낌으로 만들어 그리니 그게 독특한 선을 자아내더라. 특히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리는 역필법과 빠른 붓놀림으로 문지르는 스트로크 기법을 더한다. 형태를 먼저 잡아놓는 게 아니라 붓을 문지르며 형태와 색, 구도를 동시에 잡는 거다. 그렇게 스트로크를 하면 종이 표면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는 물감이 잘 스며들 수 있는 환경이 돼 준다. 그러면서 입체감도 살아나고, 색감의 풍부함도 깊어진다. 그리고 색을 넣어주기도, 빼주기도 하는 일명 ‘플러스+마이너스-’ 작업 또한 핵심이다. 색을 계속 넣어주기만 하면 한계가 있어 더는 못 받아들인다. 이때 스며들지 못하고 겉도는 물감을 한 번 빼주는 거다. 그러면 또 색감이 확 달라지는 걸 느낄 수 있다. 이렇듯 색을 넣었다 뺐다하는 기법을 반복적으로 하며 작품이 완성된다."

-단순히 스케치해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서 작품 완성까지의 과정이 복잡하고 어려울 듯한데, 완성 소요시간은 어느 정도 걸리나?
“다른 작가들보다 장시간 작업하는 편이다. 100호짜리 하나 하면 20일 가량 걸린다. 바닥에 눕혀놓고 상하좌우 구분 없이 차분히 그린다.”

-수채화와 유화의 작업을 비교해 한다면?
“유화가 마르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그렇지 언제든 그릴 수 있는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수채화는 보다 더 젊고 감각 있을 때 그려야한다. 나이 들어서 수채화는 하기 힘들 것 같다. 수채화는 쉽게 번지고 섞여버린다. 집중이 조금만 떨어져도 그리기가 힘들다는 거다. 또한 물로 조절하는 거니 아무래도 더 어려운 것 같다. 하지만 유화는 세워놓고 그릴 수도 있고 덧칠까지도 가능하잖나. 영국화가 터너가 원래는 수채화를 그렇게 잘했다고 한다. 그런데 수채화가 너무 어렵고 대작도 힘들고 해서 유화를 하게 됐다고 하더라.”

▲전시가 열리고 있는 선화랑에서 작품 앞에 선 정우범 화백

-작가는 다작이 중요하다고 한다. 하루 작업량이나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매주 하루, 그림을 좋아하는 일반인들을 지도해주는 것 외에는 매일 공무원 출퇴근하듯이 아침 9시면 화실로 출근하고 오후 6시에 퇴근한다. 작업도 작업이지만 그만큼 중요한 게 휴식이다. 작업 끝내고 어디 술 마시러 가는 게 아니라 꼭 집으로 바로 간다. 가족들과 시간 보내며 머리를 쉬어주고, 회복해야 다음날 또 출근할 수 있다. 출근 전에는 집사람과 아침 산책을 빼먹지 않는다. 집근처 연세대 북문 쪽을 걷는데, 새소리, 개구리소리부터 시작해서 청솔모, 다람쥐, 꿩 등 자연을 경험할 수 있다. 나무와 꽃 풍경을 감상하며 판타지아 영감을 받거나 구상을 하기도 한다. 특히 야생화는 봄부터 가을까지 계속 꽃 피우는데, 그걸 보면서 나 또한 계속 배우는 것 같다. 도심에 살지만 마치 산 속에 사는 것 같은 느낌이 좋더라.

-작가 이전, 광주교대부속초등교사로 재직하다가 40세가 넘어서야 전업 작가로 뛰어들었다. 독특한 이력이 눈에 띄는데 어떻게 작가를 하게 됐나?
“어렸을 때부터 미술은 참 잘했다. 그랬지만 광주교대에 입학 후 초등학교에 발령받아 교직생활을 시작했다. 늘 그림에 대한 갈망이 있어서 방과 후 미술수업을 열어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는데, 그때 아이들로부터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피카소가 ‘어린 아이처럼 그리고 싶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이들만의 천진무구한 선이나 색감으로부터 작품에 대한 기초를 다졌다. 그리고 주말이면 산, 들 가리지 않고 다니며 소묘를 많이 했던 기억이 있다. 대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내 생각대로 변형해 재창작 하는 거야말로 진정한 내 것이 아니겠나. 소묘를 꾸준히 하며 그림변형력을 습득했다. 당시 난 목우회 회원이었는데, 거기서 오승우 선생님과 가까워진다. 선생님이 바로 사표를 권하신 분이다. 그렇게 있으면 평생 아마추어로밖에는 남을 수 없다며 전업 작가를 권유하셨던 선생님의 말씀이 내게 가장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이를 계기로 교직을 그만두게 됐다.”

<판타지아> 95×55cm aqua, acryl, arches canvas 2012

-비교적 늦은 나이에 데뷔하고, 지역작가에서 중앙작가로 넘어오기까지 만만치 않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식 4년제 미대를 졸업한 게 아니다보니 너무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이끌어줄 이도, 밀어줄 사람도 없었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내가 혼자서 묵묵히 열심히 하고 있으니 행운이 찾아온 것 같다. 어느 날 태권도 박사인 이기정 선생을 우연히 알게 됐다. 이 선생이 자기 친척집에서 내 그림을 보곤 나를 직접 찾아오신 거다. 그게 인연이 돼 미국 올랜도시티갤러리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갖게 된다. 그걸 시발점으로 미국 곳곳에서 전시 개최와 작품 판매에 성공하며 광주 언론에서 날 대서특필했다. 그때부터 일이 잘 풀리기 시작한 것 같다. 그러던 중 두 번째 기회가 또 찾아오는데, 지인에게 소개받아 당시 금호문화재단 이강재 부이사장과 가까워진다. 그분께서는 개인적으로도 내 작품 80호짜리 두 점을 구매하기도 했는데, 그러고 2주쯤 지났을까… 사보 표지화를 그려달라며 연락이 왔다. 두 점을 그려줬더니 너무나 좋아하시며 앞으로 1년 치 표지화를 모두 그려달라고 했다. 이를 계기로 광주화단에서 내가 다시금 급부상하게 된다. 금호문화재단에서 밀어주는 작가라며 말이다. 그리고 2년 후 김창실 선화랑 대표께서 한 잡지에서 내 그림을 보곤 마음에 드셨다며 화실로 직접 오셨다. 쭉 둘러보시더니 작품 25점을 찍으시고는 전시하자고 하셨다. 선화랑에서는 지금까지 내게 다섯 번의 초대전을 해줬는데, 김 대표님 생전에 내게 얼마나 잘해주셨는지 모른다. 호남을 넘어 중앙으로 발 돋음 하기까지 김 대표님께서 날 키워주셨다. 이를 계기로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예정된 전시가 있다면 알려 달라.
“올해 부산오션갤러리에서 상설전이 이뤄질 예정이다. 내년 5월에는 대만 손문미술관에서 초대전이 있다. 또 대만 내 가장 큰 상업화랑과 전시 얘기가 오가고 있는데, 하나의 분수령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50호에서 500호에 이르기까지 40점 가량 전시할 계획이다.”

-꿈은 무엇인가?
“큰 욕심 부리지 않고 현재 하는 작업을 최대한 충실히 해나가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 그러면 자연스러운 변화가 따라오지 않을까. 갑자기 무슨 변화를 추구하려고 하면 오히려 잘 되지 않는다. 예전만해도 내가 판타지아 시리지를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계획만 거창하게 말한다고 해도 그저 그때그때 하는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꿈이 무엇이며, 무엇을 하고 싶냐 묻는다고 한들 지금 뭔가 딱히 떠오르지 않지만, 내 작업을 열심히 하다보면 얻는 게 있을 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