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수의 미술시장 이야기] 아트페어 아트페어!!
[박정수의 미술시장 이야기] 아트페어 아트페어!!
  • 박정수 미술평론가/정수화랑 대표
  • 승인 2014.09.03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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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수 미술평론가/정수화랑 대표
아트페어가 난무하고 있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9월 2일 광주아트페어가 다양한 잡음과 이야기 속에 막을 내렸고, 이달 말에는 한국국제아트페어와 목포아트페어가 열린다.

각 지자체마다 약속이나 한 듯 아트페어, 페스티벌 등의 이름으로 매달 두 세개씩 어김없이 나타난다. 가볍게 말하면 아무나 아트페어고 어디서나 아트 페어다.

시간이 지나면 자리 잡겠지만 지금에서 만큼은 난무와 난립이다. 사회의 변화 시점에서 오면 난무와 난립이 횡횡한다. 80년대 중반의 골동상인의 난무, 90년대 중반의 임대화랑의 난무, 00년대 중반의 경매회사의 난립과 난무를 겪으면서 오늘에 이른터다. 어쨌거나 미술시장은 자생력을 가지고 변화와 발전을 거듭한다.

이러한 시기는 사회구조 혹은 사회문화의 변화를 중심축에 두고 있다. 그 첫 번째가 예술작품의 형식과 내용의 변화다.

90년대를 장악했던 풍경화 정물화와 화려한 비구상에서 2000년대에는 장식성과 스토리를 지닌 주인공 있는 작품으로의 변화가 있었다.

대중이 익숙하게 알고 있는 만화적 상상력이 주를 이루기도 했다. 가장 최근에 끝난 광주아트페어의 경우만 보더라도 그러한 조짐이 조심스럽게 감지된다.

조각과 공예품, 미술시간에 경험해봄직한 공작품의 결합이 그것이다. 밝고 화려한 색상을 기본으로 기묘한 손 기술이 가미된 공작형 작품의 대거 등장이다. 조각과 공예와 입체작품의 결합이다.

두 번째로는 시장구조의 변화다. 화랑에서의 거래가 끊기면서 아트페어로 몰입되는 변화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나라에서 사 주지 않고, 기업에서 사 주지 않는 이상 시장에서 사고팔고를 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팔리는 작품이 최고의 덕목인 시장 형성이 불가피한 시대를 겪었다. 미술시장의 활성화와 함께 출현한 아트페어는 기존의 미술시장의 개인적 거래에서 다수대 다수로 확장하면서 미술시장의 규모를 기하급수적으로 팽창 시켰다.

그러나 아트페어는 신진 미술인들의 입성과 다양한 미술품의 판매를 통한 미래를 약속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최근에 이르면 팔리기만 하면 좋은 형태의 미술시장에 대한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예술작품은 낯설고 어색한 창의성이 우선되기도 한다. 반면 이러한 작품은 예술성과 상관없이 판매가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팔리지 않아도 좋음으로 가상할 수 있는 영역의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한 것이다.

세 번째로는 예술가 스스로가 변하고 있다. 직거래의 한계성을 이해하면서 미술시장의 유통구조에 적응하려는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 예전에는 작가의 작업실에서 직거래가 일어나더니 요즘에는 SNS를 통해 미술품의 직거래가 일어나고 있다.

직거래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 안목에서의 미술시장구조를 이해하여야 한다. 직거래된 작품이 미술시장에 다시 등장할 경우 작품 매매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도 무방하다.

가장 1차적인 것이 가격 문제다. 직거래로 100만원 작품을 70만원에 소장한 후 세월이 지나 매매를 생각한다고 가정하자. 직접 구매자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화랑에 의뢰하여야 한다.

화랑에서는 원 가격의 70%선에서 거래가 거의 불가능하다. 70만원에 구매할 일 절대 없다. 직거래로 오랫동안 활동한 작가의 시장성은 소멸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은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장의 변화는 기정사실로 인지되어야 한다. 지금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덕목으로서의 접근이다.

창의적 작품과 다소 신인들의 작품이 유통될 수 있는 시장구조가 요구되는 것은 사회변화의 바람직함이며, 현재의 시장구조로서는 미래의 정신활동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변화는 언제나 신선하지만 다소의 불합리를 겪은 이후에 일어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