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두 큰 어른의 마지막 춤판
[특별기고] 두 큰 어른의 마지막 춤판
  • 심우성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민속사학자
  • 승인 2014.09.05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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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우성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민속사학자
-벌써 오래전 가셨건만 뵙고만 싶습니다-

흡사 쌍수정(雙樹亭)이셨던 두 어른

유서 깊은 마을에는 수백년이나 묵은 큰 나무가 서 있기 마련이죠. 으레 그 나무 밑 주변은 마당을 이루니 남녀노소의 쉼터, 마을의 공동관심사를 논의하고 결정하는 회의장소가 되기도 합니다.

마을의 지킴이로 숭상회온 이 거목이 때로는 나란히 서 있고, 그 옆에는 단아한 정자를 갖추고 보면 더욱 운치가 있습니다. 이런 정자를 이름하여 흔히 ‘쌍수정’이라 하지요.

우리 민속춤계에 이와 비유되는 두 어른의 큰 거목이 계셨으니 ‘진쇠춤’의 명인 이동안(1906~1995)선생과 ‘북춤’의 명인 하보경(1909~1997)선생이십니다.

벌써 가신지 오래이건만 두 어른께서 마지막 춤판으로 삼으셨던 옛 ‘문예회관 대극장’이 지금은 명칭도 바뀌었건만 그 앞을 지나며 이 글을 쓰고 싶군요….

▲ 1996년 10월 10일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큰 춤판' 공연 중 마이크를 든 사람이 필자 

이동안 선생님은 춤과 함께 춤 장단에 통달하셔서 이 바닥의 큰 어른이셨는데 어쩐 연유인지 엉뚱하게도 인형놀이의 하나인 발탈(중요 무형문화재 제79호)의 예능보유자가 되셨었고, 하보경 선생님은 밀양 박중놀이(중요 무형문화재 제68호)의 예능보유자로 ‘양반춤’과 ‘범부춤’을 맡으셨었습니다. 그런데 장기는 ‘북춤’이셨었죠….

이 두 어른께서는 누구나 떠받드는 우리 민속춤의 기둥이셨습니다. 저를 지극히 사랑해 주신 두 어른께서 이제는 다 저 세상으로 가신지 오래이니 허 허 텅 빈 ‘쌍수정’이 되고 말았군요!

한 무대 위의 두 별빛
1995년 늦가을이었습니다. 서울시 종로구 동숭동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두 어른이 나란히 춤을 추시던 자리가 결국 마지막 회우이셨는가 합니다.

그 후로는 두 분이 다 몸이 불편하셔서 제대로 춤판을 펼치질 못하셨지요. 그 마지막 춤판이 있던 날 분장실에서 주신 귀한 가르침이 지금껏 귓전에 생생하니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이선생 : 우리 이 늙은 것 구경한다구 웬 사람이 저렇게 모였다우? ‘인생 칠십 고래희’라는데 우린 구십이 내일 모레니 징글맞게로 살았어! 여보게, 나무나 바위는 묵을수록 귀물인데, 이 인간은 늙을수록 추하니 그저 덧없는 것 인생인가봐? 그렇잖소. 허 허 보경이….

▲ 1996년 10월 10일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큰 춤판' 공연. 이동안(좌) 하보경(우)

하선생 : 그런가봐…허 허…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 난 이제 겨우 ‘춤속’을 조금이나마 알 듯도 하니… 허 허 허….

이선생 : 음…그래, 허긴 나두 그런것 같구려….

하선생 : 허허, 그렇기에 철 들자 망령든다 했는가봐…. 이 두 어른의 옆자리를 지키던 내가 무엄하게도 불쑥 참견을 했구나!?

아니에요. 선생님들 께서는 바로 천년 묵은 고목이셔요. 이 선생님 언젠가 말씀하셨잖아요. 「춤은 그늘이 짙어야 한다」고… 그 그늘을 보려고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이지요!

하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춤꾼의 무게는 가랑잎이었다, 바위가 되고 바위였다가, 가랑잎인가 하면, 한 몸에 가랑잎과 바위가 함께 도사려 있다」고 하셨잖아요!

선생님! 두 어른께서는 바로 이 시대 우리 춤판의 우뚝한 고목 이십니다. 이 때, 선생님들 차례라며 앳된 제자에게 끌려 무대로 나가셨고, 사진가 ‘박목수’님이 마지막 두 거목의 자태를 한 장의 사진으로 남겨 주셨습니다.

그늘 짙은 거목의 춤사위를 이제는 이 사진으로 밖에 만날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텅 빈 ‘쌍수정’앞에 우린 외롭게 서 있군요.
두 어른이시여, 내 내 편안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