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새 사기사건, 숭례문 부실복 문화재 수리체계의 혁신… 그 해답은 ‘조선시대 의궤’에 있다!
‘국새 사기사건, 숭례문 부실복 문화재 수리체계의 혁신… 그 해답은 ‘조선시대 의궤’에 있다!
  • 박희진 객원기자/한서대 교수
  • 승인 2014.09.26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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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지대 의궤 속 장인정신 오늘날 되살릴 필요가 있다”

2008년 2월 숭례문이 불에 탔다. 2010년 11월에는 대한민국 4대 국새가 폐기 처분됐으며, 2013년 11월에는 다시 일으켜 세운 숭례문이 복원한지 1년 반도 채 되지 않아 ‘부실’이란 오명을 쓴 체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연초부터 문화재 복원사업 관련 비리의혹을 본격 수사하면서 전통문화의 대를 잇는 장인(匠人)들에 대한 의혹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 장경희 교수

4대 국새 사건이나 숭례문 화재와 부실복원 등 문화재 사건사고의 중심에 선 문화재청은 사기와 로비, 비리 의혹 등으로 얼룩진 문화재 관리의 고질적인 문제에 대해 마땅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조선시대부터 체계화된 문화재의 관리 시스템이나 운영 방식에 대해 진정성 있는 접근보다는 문제시 되는 사업에 참여한 장인, 즉 인간문화재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개인의 사욕으로 빚어진 문제인 마냥 책임을 떠넘기기에 바쁘다. 민족문화의 자존심을 밑바닥으로 내리치는 이러한 사태가 언제까지 반복되어야 할까. 본 기자는 그 해답을 역사의 기록에서 찾으려한다.

2013년 1월 문화재연구에 한 획을 긋는 조선시대 장인에 대한 기록이 두 권의 책으로 출판됐다. 『의궤 속 조선의 장인』이란 제목의 이 책은 조선시대 의궤(儀軌) 513권에 들어 있는 장인 10만 명을 2,000페이지로 정리하여 그간 학계의 관심을 받지 못해 연구가 되지 않았던 조선시대 장인의 역사를 낱낱이 밝히고 있다.

국내 왕실공예분야의 유일한 전문가로 알려진 한서대학교 장경희 교수의 20여 년 세월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긴 역작이다. 문화재 전문가 장경희 교수(54·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를 만나 조선시대 장인의 역사를 조명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 3일 인천광역시 중구에 위치한 한국근대문학관에서 ‘2013 우현상’ 시상식이 열렸다. 한국 최초의 미학자이자 미술사학자인 우현 고유섭(又玄 高裕燮) 선생의 학문적 업적과 예술정신을 계승하고자 인천문화재단(대표 김윤식)이 수여하는 상이다. 우현상은 학술분야와 예술분야의 두 영역으로 나누어 선정하여 시상하는 데 장경희 교수는 『의궤 속 조선의 장인』의 출판으로 학술상 부문에 선정된 것이다.

이 책은 장경희 교수가 1994년부터 2013년까지 20여 년 간 조선왕실 의궤 연구에 매달려 연구한 끝에 조선시대 장인을 오늘에 되살려낸 역작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조선왕조 의궤에 기록된 장인에 관한 자료를 충실히 정리한 책으로 문화재연구에 새 지평을 열었다.

특히, 이 책의 집필된 연구결과는 한국문화재 연구에서 유난히 소외되어온 무형(無形) 문화재 연구에 커다란 발전의 계기가 될 것이라 보여진다. 그가 그 오랜 세월 학계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장인 연구에 20년이란 긴 세월을 매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513권 조선시대 의궤가 20여 년의 연구 끝에 2,000페이지 책으로

장 교수는 자신이 장인에 대한 연구를 돌아가신 스승의 유업(遺業)을 이어가려는 생각에서 시작됐다고 말한다. “저의 석사학위 논문 지도교수가 이종석(1933∼1991)선생님이십니다. 홍익대학교 학부시절에 민속공예를 배운 인연으로 석사학위 논문까지 지도해 주셨지요. 그때 조선시대 경공장(京工匠) 연구를 함께 하자며 제자로 삼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조선시대 경공장(京工匠)이라 함은 조선시대 왕실과 각 관부에서 필요로 하는 각종 물품의 제작에 종사하던 장인들을 말한다. 장 교수는 홍익대학교 섬유공예과를 졸업하였는데, 당시 대학에서 인연을 맺게 된 은사 故이종석 교수의 지도아래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지병이 있으셨던 선생은 1991년 58세의 나이로 작고하고, 당시 석사를 갓 졸업한 장 교수는 매우 참담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스승의 3주기에 맞춰 그 분의 글들을 모아 유고집  『한국의 전통공예』(열화당, 1994)를 발간해 제자 된 도리를 이어갔고, 20년 세월 노력 끝에『의궤 속 조선의 장인』(솔과학,2013)을 출판한 것이다.

민속학자 故이종석 선생은 중앙일보 계간미술의 주간이자 호암갤러리 관장을 역임하고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의 문화재전문위원이었다. 스승의 사후 1992년 장 교수는 이종석 선생의 육필원고를 정리 중에  『진찬의궤』(조선시대 궁중잔치를 기록한 의궤) 관련 자료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이 오늘날 장 교수의 의궤 연구의 계기가 된 것이다.

“스승님은 비록 가셨지만 그 인연은 끝나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의궤 속 조선의 장인』 이 책을 2013년 스승님의 80세 되시는 해에 출판하게 되어 그 뜻이 더 깊지요, 나름대로 스승과의 약속을 지키고 스승을 기억하는 분들과의 기념과 헌정의 의미로 이 책을 낸 것입니다. 한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인 셈이지요.”

조선 왕실의 의궤는 유네스코(UNESCO)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있는 중국이나 일본에서 찾을 수 없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기록물이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등 편년체 역사서에서는 찾을 수 없는 그 시대 문화재 곧 건축이나 회화, 조각 및 공예를 제작하기 위한 국가의 관리 조직, 장인들의 운영체계를 비롯하여 물품과 도구의 동원까지 세밀한 내용이 기록돼 있어요.”

장 교수가 말하는 의궤 속 내용은 가히 대단하다. 특히 왕실에서 특별한 날에 행하는 행사, 즉, 결혼(국혼 國婚), 장례(국장 國葬), 제사(제례 祭禮) 등 이러한 국가차원의 대대적인 행사에 쓰이는 모든 것들이 기록돼 있다고 한다, “의궤 내용은 국혼이나 국장, 제례처럼 왕실에 특별한 날 필요한 건축물, 궁궐이나 왕릉, 종묘와 같은 건물을 비롯해서 의관, 제기, 가구, 악기, 노부 등 행사에 모든 공예품을 만든 내용이 80% 이상입니다.”

그렇다면 동시대 전통문화의 대를 잇는 장인에 대한 연구도 가능하지 않을까. 21세기 전통을 잇는 장인도 그 뿌리는 조선시대에서 비롯되었다. 전통 기술의 원천 또한 조선시대에 있기 때문에 현대와 과거를 이어주는 연구로 조선시대 의궤 활용이 가능할 것이라 짐작해본다.

▲ 왼쪽부터 우현상위원회 안휘준 위원장, 장경희 수상자,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김윤식.

조선시대 의궤, 동시대 무형문화재 연구 발전에도 지대한 영향 미칠 수 있다.

장 교수는 의궤가 1600년부터 1928년까지 현존하기 때문에 300여 년 역사 속 장인들의 기록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장인들이 사용한 재료부터 그 도구의 변화까지 알 수 있다고 하니 그간 끊임없이 논란이 돼왔던 문화재 ‘원형’에 대한 근본적 해결의 실마리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문화재 원형에 대한 논란은 그 법적, 제도적 기준이 명확하게 제시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문화재 사건사고에 빠지지 않고 지적되어 왔던 문제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장인의 역사가 구체적으로 연구되지 않아 지금의 문화재 연구에 있어 복원과 수리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하기 어려웠고, 이를 실행하는 장인들도 재료사용이나 제작방법에 혼란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조선시대 문화재 제작과 재료에 대한 장인 연구가 본격화 된다면 문화재 ‘원형’에 대한 논란 또한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무형문화유산은 현재까지 119개의 종목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인정(2013. 12. 31 문화재청 발표 /현재 기준)1)되었고, 그 가운데 우리 민족의 의식주 생활과 의례의식 등에 사용됐던 공예품 중에 전통적인 재료와 도구를 이용하여 전해져온 전통방식으로 제작하는 기술을 공예기술 종목으로 분리하여 현재 50개 종목 63명의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2013. 12. 31 문화재청 발표 기준)가 그 기술의 ‘원형’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장 교수가 찾은 조선시대 의궤 기록에 따르면 500여 종의 무형 문화재 종목과 10만 여명의 장인들의 역할이 분리돼있다고 하니, 앞으로 무형문화유산 발굴과 연구에 커다란 반향을 미칠 것이라 짐작된다. 장 교수는 그 간 장인들의 신분이나 처지에 주목하면서 30여 종 장색의 재료나 도구를 연구했다.

“이제부터는 500여 종류의 장인들이 어떤 전통 재료나 도구를 썼는지, 그것이 시대에 따라 어떠한 기술적 변화나 양식적 발전을 하는지 찾아볼 계획”이라고 앞으로 연구계획을 밝혔다.

21세기 정신이 깃든 새 시대 문화재를 만들어야

조선시대 장인을 되살려 낸 『의궤 속 조선의 장인』, 이 두 권의 역사 기록들을 바탕으로 전통과 현대를 잇는 문화재 연구가 새 시대를 맞이했다. 21세기 전통 장인에 대한 국가적 관리체계의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며, 조선 후기의 문화재 보존 방식을 현대에 이어가는 나침판이 될 것이라 기대해 본다.

“의궤에는 문화재 제작 현장에서의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기록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요. 비천한 노비 신분의 장인들도 맡은 일에 충실하면 그 현장에 자신의 이름을 올릴 수 있었지요. 작은 못 하나, 돌멩이 한 개까지도 모두 꼼꼼히 체크하고 기록합니다. 성을 쌓든, 궁궐을 짓든, 왕릉을 만들든, 국새를 제작하든 혼자서 하는 일은 없고, 최고의 기술자들이 자기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합니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정성을 쏟는 것이지요. 이렇게 공들이기 때문에 몇 백 년의 세월을 거뜬히 견디는 것입니다.”

 장 교수는 의궤 속 전통의 장인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맡은 바 본분에 충실하였고, 이를 관리하는 학자는 현장을 제대로 완벽하게 기록해왔다고 한다. 의궤를 연구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하는 장경희 교수.

문화재 연구자로서 그의 멈추지 않는 발걸음은 동시대 새로운 역사로 기록되고 있었다. 문화재 사건사고의 중심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는 지금이다. 장경희 교수는 거듭 ‘의궤 정신’을 오늘에 되살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지금의 장인들은 21세기에 18세기 유물을 베끼지 말고, 21세기 정신이 깃든 새 시대의 문화재를 만들어야 한다. 옛 것의 정신을 본 받되 오늘의 모습으로 구현해야 한다.

”박희진 객원기자.

장경희 교수 약력

서울 출생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홍익대학교 미술사학과 석·박사 학위
현) 한서대학교 문화재보존학과 교수
현) 한국전통문화연구소 소장
현)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현) 서울, 충남, 대전, 세종시 문화재 전문위원

(학위)
규장각 소장 의궤와 왕실공예품의 제작 및 장인을 분석해
1999년 '조선왕조 왕실가례용 공예품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우현학술상 선정 요지
규장각과 장서각 등지에 다수 소장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조선왕실 의궤> 중 1601년부터 1910년까지 기록되어 있는 513권에서 조선시대 장인들의 이름을 고스란히 찾아내었다. 그 중에는 궁궐을 세운 목수와 석수, 국혼을 치를 때 어보를 만든 옥장과 각수, 잔치를 베풀 때 악기를 만든 풍물장, 왕릉을 영건할 때 석물을 세운 석구와 조각장, 단청을 그린 화승과 단청장, 왕의 어진을 그린 화원, 종묘의 제기를 만든 유기장 등의 이름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그동안 이름이나 얼굴이 알려지지 않아 익명의 존재였던 장인을 발겨 그들이 조선왕실 문화를 꽃피운 예술가였음을 밝힌데 의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