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食道樂] <<재첩요리 전문점 - 청룡식당>>
[예술가의 食道樂] <<재첩요리 전문점 - 청룡식당>>
  • 김종덕/무용가
  • 승인 2014.09.26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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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오랜만의 여행이다. 생활의 언저리에서 나를 구제라도 하듯 친구를 이끌고 남도 100리(약 40km/섬진강~선암사~순천만) 길을 나섰다.

첫 번째 도착지는 섬진강 하구의 조그마한 식당이다. 몇 해 전에 먹었던 재첩회와 재첩국이 그리워 무려 4시간을 달려왔다.

강물과 바다물이 교차되는 깨끗한 모래에서만 자란다는 재첩은 섬진강이 우리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30년 동안 재첩요리만 전문으로 했다는 섬진강 하구 청룡식당의 백미는 애호박을 살짝 데쳐서 작은 재첩과 인정스럽게 초창에 버무려서 내어주는 재첩회이다.큰 양푼에 재첩회와 밥을 참기름에 비벼서 뽀얗게 우러난 재첩국과 먹고 있으면 세상 근심걱정이 다 사라지는 듯하다.

재첩은 예로부터 열기를 다스리고 해독에 좋은 식재료로 알려져 심한 질병으로 몸이 쇠약한 사람에게 좋다고 한다.

재첩의 타우린과 아미노산은 담즙산과 결합해서 간 기능을 활성화하고 염증반응을 억제함으로써 간질환에 도움을 주며, 인체에 필요한 필수 아미노산이 어떤 비율로 들어있는가를 나타내는 단백질 스코어라는 것이 있는데 재첩은 거의 완벽에 가깝다고 한다.

특히 재첩속의 비타민 B12는 철분을 섭취해도 치료가 어려운 악성빈혈에 효과가 있으며, 각종 무기질이 풍부하여 숙취해소에도 좋다. 재첩은 영양학적으로 매우 우수하지만 성질이 차서 몸에 열이 많은 소양인 체질이나 태양인 체질에 좋은 음식이다.

그러므로 태음인이 재첩을 즐겨먹는 것은 삼가해야한다. 다만 재첩에는 비타민A의 함량이 부족한데 비해 부추는 비타민A의 모체인 베타카로틴이 매우 많고 열에 견디는 성질이 강해 국을 끊여도 손실이 거의 없기 때문에 재첩국에 부추를 넣고 끊이면 영양의 균형이 유지된다고 하니 소음인 체질인 경우에는 부추를 넣고 끓여서 먹으면 부작용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여유롭게 출발한지라 늦으면 풍경을 눈에 다 담지 못할까봐 서둘러 선암사로 길을 재촉하였다. 감성이 풍부했던 고등학교 시절 혼자 와 보았던 선암사는 아직도 사람들 손을 타지 않은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세월을 비껴가지 못한 나는 많이 변하였는데 선암사는 예전 그대로 나를 반겨주어 눈물겹도록 반갑고 고마웠다. 앞으로 20년 후에도 거기 자연 그대로 있어주길 소망하며 냇가를 따라 자연스럽게 굽어 있는 길사이로 언뜻 보이는 전각이 참 아름답다고 감탄하며 이 모습 이대로 기억하기 위해 연신 사진으로 기록하였다.

선암사가 좋은 이유는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두어 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가뭄에도 나무들이 머금은 물들이 작은 아우성을 치며 흐르는데, 그 소리만으로 정신이 맑고 투명해지기 때문이다.

개울을 따라 흐르는 물은 시리도록 깨끗한 탓에 돌과 바위에 이끼가 없어 마치 새로 옮겨다 놓은듯하다. 선암사에는 4대 천왕도 없고, 역사와 규모에 비해 장엄하거나 화려하지도 않다.

단청이 없는 선암사의 처마는 무심해 보이지만 흠잡을 수 없이 완벽한 미적 감각을 발휘한 작품이며, 크고 작은 선암사의 사찰 지붕은 겹겹이 쌓여있어 중첩된 구조물이 하나의 표상처럼 느껴진다.

또 대놓고 드러내지 않았지만 건물마다 다른 색감의 조화가 은은하며, 전체 구조물들은 공간을 계산이라도 한 듯, 서로를 해치지 않아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짜임새가 있다. 한 참을 손 때 묻지 않은 아름다움에 빠져 있다 보니 뉘엿뉘엿 해가 넘어 갈 즈음 저녁 예불을 위한 법고 소리를 들은 후에야 발길을 돌렸다.

선암사 입구 한옥에 방 두 개를 잡고 초저녁부터 할 일 없이 노닥거리기가 싫어서 한참을 묻고 달려서 영화 한 편을 보고, 자정이 다되어 숙소로 돌아오니 인심 좋고 상냥한 아주머니가 주무시지도 않고 기다리다가 ‘숲 속에서 길 잃은 줄 알았다.’며 농담을 건넨다.

한옥에서 아침은 특별했다. 세상과 동떨어져 급할 것도 없고, 마음은 넉넉하고 푸근하여 어머님의 손 때 묻는 집에서 쉬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여정은 미적 감각이 뛰어나 거대한 예술작품으로도 손색이 없는 순천만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친구가 꼭 함께 가보고 싶은 찻집이 있다며 공주로 방향을 틀었다.

찻집 [담꽃]은 한 눈에 봐도 주인의 단아하고 정갈한 성품을 알 수 있는 곳이었다. 들어가는 입구에 핀 관상용 연꽃을 비롯하여 마당엔 잔디를 덮고 작은 바위와 꽃들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자연을 축소시켜 놓은듯하다.

한옥을 운치 있게 개조하여 방안의 분위기는 그윽하고 창가에 놓인 다기들이 풍경과 어우러져 드러내지 않는 아름다움에 도취될 수밖에 없었다. 친구와 함께한 이번 여행은 심성 고운 사람들의 정갈하고 욕심 없는 삶에서 숭고한 아름다움을 가슴에 담고 돌아왔을 뿐만 아니라 ‘자연스럽다’는 것은 고도의 정밀함으로 꾸며진 신의 조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당분간 남도 100리 길을 추억하며 각박한 속세의 생활을 버텨봐야겠다.

<<청룡식당>> 061-772-2400
전남 광양시 진월면 신아리 아동마을 1191-28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