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필요한 건 뭐? 마음을 열고 차이를 인정하는 것”
“우리에게 필요한 건 뭐? 마음을 열고 차이를 인정하는 것”
  • 양문석 기자, 편보경기자
  • 승인 2009.07.22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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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반두비’로 꽉막힌 사회, 속시원히 뚫어낸 신동일 감독

청소년을 위해 만든 영화가 청소년 관람 불가 판정을 받았다고?
지난 14일, 신동일 감독과 인터뷰를 하기로 한 날은 문자 그대로 비를 양동이로 쏟아 붓는 것 같은 날이었다. 비 맞은 생쥐 꼴이 되어 만난 우리는 마치 무슨 비밀 모의라도 하는 사람들처럼 모여 그동안 가슴속에 숨겨 놓았던, 혹은 망각하고 있었던 대화들을 나눴다. 신 감독은 이주노동자와 편부모 밑에서 자라는 한 청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반두비’에 우리가 가슴속에 꽁꽁 숨겨두고 차마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무장해제’해 놓았다. 시종일관 편안한 미소를 띠고 말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생각하는 진중한 모습의 신 감독을 보고 있노라니 영화 ‘반두비’ 탄생의 배경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청소년 관람 불가 판정이라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6월 25일에 개봉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나?

투자사 사장 때문에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긴 하지만 올해가 육이오 59주년이지 않나. 남과 북의 분열을 일으킨 사건이었는데 향후 남과 북의 소통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인종 사이의 갭, 가족 사이의 어떤 갭, 세대 차이 등 여러 어떤 갭을 해소하고 통합을 이루자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 주인공 ‘카림’역의 마붑 알엄과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안다. 마붑 알엄은 전작 ‘나의 친구, 그의 아내’에 단역을 맡기도 했는데 배우에 대해 평가를 해달라.

단역을 맡았을 때도 좋은 기억이 있었다. 반두비 영화를 기획 준비하면서 카림 역할을 할 만한 사람을 헌팅하기 위해서 이주노동자문화재에 갔었다. 이러한 배우를 찾는데 도와 달라고 했더니 3일쯤 후에 마붑 알엄이 ‘제가 하면 안될까요’하면서 프로포즈 콜을 해왔다.

뜻밖이었지만 가능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몸은 아니어서 10키로 정도 감량해야 했다. 잠재력이 있는지 오디션을 봤는데 무사히 통과도 했다. 똑똑하고 이해력이 빠른 친구이며 한국말을 너무 잘해서 오히려 영화에서는 약간 어눌하게 하라고 지시할 정도 였다. (웃음) 만족스럽다.

- 주변의 평가에 비해 흥행은 기대에 못 미친 걸로 안다.(7.3~7.5 스크린수21, 전국누계 5,553명) 원로 김수용 감독은 “영화는 작품성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한다”라고 말씀하신바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실 두 마리 토끼를 잡고자 하는 것은 모든 감독들의 욕망일 것이다. 작품에 대한 평가로는 인정을 받은 것 같은데 흥행 면에서 많이 아쉽다. 원인을 분석해 보건데 사실 반두비에는 악재가 있었다.

등급이 청소년 관람 불가로 매겨지기도 했고 비슷한 시기에 ‘트랜스포머’가 개봉한 것도 그랬다. 내가 봤을 때는 작품 소재 자체가 워낙 관객들에게 낯설기 때문에 비 호감으로 작용한 것이 아닌가 한다. 언젠가는 나도 관객 몰이를 할 수 있는 영화를 기대한다.

-영화에서 하고자 하는 말들이 직접적으로 언급돼 적잖이 놀랬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뭐였나?  

영화상에 대사로도 친철하게 나오지만은 ‘마음을 열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현 정권처럼 소통의 통로가 막힌 적은 없었다고 느낀다. 대통령도 그렇고 사회구성원들도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다. 다른 사람이 나와 똑같을 순 없지만 인정을 해 주자는게 내가 말하고자하는 바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어느 때 보다도 바른 눈과 귀가 필요한 때인데 현 집권층들은 너무 안 들려고 하는 것 같다. 또 시력검사도 제대로 받아야 한다. 오늘 신문에도 빈곤층이 대량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하는데 사회 통합적인 정책이 필요할 듯하다. ‘반두비’를 단체 관람하시는 것은 어떨 까. 그럴 일은 없겠지만...

-영화 마지막 부분 즈음에 반두비는 결국 불법체류자로 체포되어 방글라데시로 돌아가게 되는데 이후 결말은 어떻게 되나? 민서가 다만 이태원 인도카레를 먹으면서 반두비를 추억하는 것은 너무 아쉬운 것 같기도 하다.

어떻게 되었을까? 그것은 관객들의 상상의 몫이다. 민서가 방글라데시로 가서 우연히 길거리에서 반두비를 만나게 되고 감정이 복받쳐서 포옹을 하는 엔딩, 혹은 비록 만나지는 못하지만 그 해의 뜨거웠던 여름을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며 서로를 인생의 힘으로 삼는 것 등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여자주인공 민서가 고등학생치고는 너무 발칙하다는 생각은 안 드나?

민서는 발칙 그 자체인 애다. 10대가 아니라 20대라고 해도 좋을지 모른다. 하지만 영화를 본 한 여고생은 ‘자기 친구를 보는 것 같다’ 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런 걸 보면 한편으로는 보기 드문 캐릭터는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나에게도 10살된 딸이 있는데 딸은 나의 존재의 이유이자 창작의 원천이다.

우리 딸이 민서처럼 10대 후반의 나이가 되면 ‘학창시절을 어떻게 보냈으면 좋겠다’ 하는 나의 생각이 있는데 그런 염원을 담았다. 그래서 의견을 구하기 위해 가족들과 다 같이 영화를 보기도 했다. 물론 예민한 장면은 눈을 가리기도 했지만(웃음). 영화 하는 아빠를 늘 보다 보니까 딸도 영화를 좋아한다.

-청소년 심의에서 거절된 이유는 뭐라고 보는가?

영화가 현 정권을 비판하는 아이콘을 담고 있다 보니 정치적인 이유로 보는 분들도 있고 예컨대 10대 여고생이 얼굴이 검은 남자와 사귄다는 설정 자체가 가치관 상에서 불편함을 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한마디로 꽉 막힌 사고에 당한 거다.

모방위험이라는 말을 했는데, 도대체 반두비를 보고 어떤 것을 모방하게 된다는 건지 너무 모호하다. 이것은 온당치 못한 판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청소년들은 알 만큼 다 알고 이 영화를 보고 좋은 쪽으로 느낄 수 있는데 이런 것들까지 차단을 한다면 가족 내부에서 부모와 어떻게 소통할 것인지 유감스럽기 짝이 없다.

 민서가 안마시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장면이 논란이 되는 장면이라면 그런 것일 텐데 현실을 외면만 하지 말고 오히려 냉정하게 봤으면 하는 생각이다.

-신 감독이 생각하는 반두비 영화 속 명장면이라면?

민서가 안마시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중 담임선생님을 손님으로 만나게 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관객들이 가장 많이 웃는 장면이기도 하다.

소스라치게 놀란 담임이 술자리에서 민서와 첫 면담을 하게 되는 식으로 이야기는 전개되는데 학생과 교사 사이에 대화와 소통이 얼마나 필요한가 하는 내 마음의 진위를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또 민서가 그렇게 번 큰돈을 엄마에게 내밀 때 엄마가 그 돈을 어디에서 벌었는지 묻지도 않고 다만 언제 같이 쇼핑가자고 대답하는 약간은 슬픈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여름방학 동안 고생해서 번 돈을 가족들과 함께 쓰고자 하는 민서가 그만큼 성장했다는 말도 될 수 있겠고 돈의 출처를 묻지도 않는 엄마의 무책임함을 부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다음 장면에서 엄마가 새아빠가 될 사람과 삼겹살을 구워먹으면서 ‘이 고기를 누가 사주는 줄 아느냐’고 되묻는 것을 볼 때 민서에 대해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엄마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조금 식상한 질문이겠지만, 신동일 감독에게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를 안 했다면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가장 어려운 질문이다. 영화는 지금 현재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그 무엇이다. 영화와 함께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는데 영화는 어떤 가치관이나 바람, 꿈 등을 구연시키는 중요한 매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안 했으면 무엇을 했을지 잘 모르겠다. 도서관 사서가 되지 않았을까?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으니까. 

-한국 영화계가 장기적인 침체에서 고전 중이다. 주변에 어려운 영화인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다 어렵다. 모두들 아주 힘겹게 살고 있다. 영화 스탭들 처우도 개선돼야 할 것이 많다.  어쨌든 영화인들이 좀 더 인내와 꿈을 가지고 버텼으면 좋겠다. 영화감독들은 더 분발해야 한다. 대중들이 바라는 것, 그리고 대중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을 만들면서 유연하고 비타협적인 자세가 필요할 것 같다.

-영화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사실 매순간이 힘든데 최근에는 아무래도 내 생각과는 달리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이 나와서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서울 국제청소년영화제에서는 상영됐는데, 뜨거운 반응을 보이는 관객과 웃으면서 대화를 나눌 때는 제일 행복한 것 같다.

- 앞으로의 계획은?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지금 진행 중인 것들이 순조롭게 되면 내년에는 장편을 선보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제안받은 것이 있어서 옴니버스 식으로 단편 한 편도 준비 중이다. 흥행은 최소한 투자 분을 회수할 수 있을 만큼이었으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서울문화투데이 인터뷰 양문석 기자 msy@sctoday.co.kr
                             정리 편보경 기자 jasper@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