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칼럼]슈만 그리고 꿈 1
[Music 칼럼]슈만 그리고 꿈 1
  • 정현구 국제문화개발연구원 부원장/
  • 승인 2014.10.21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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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구 국제문화개발연구원 부원장/ 코리아 네오 심포니오케스트라 음악감독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 1810~1856)은 문학과 음악적 예술성을 겸비한 청년이었다. 그는 10년에 걸쳐 ‘음악신보’를 발행하며 많은 평론을 발표했다. 뿐만 아니라 음악적으로는 카니발, 시인의 사랑, 미르테의 꽃 등 유명한 곡들을 남겼다.

슈만은 19세기 낭만주의 음악을 이끈 작곡가로 작품도 인생도 퍽이나 낭만적인 사람이었다.

낭만주의(Romanticism)란 18세기 말부터 시작된 문예사조의 하나로, 17세기 프랑스에서 확립되어 18세기 유럽문화를 이끌었던 고전주의에 대한 반발로 시작되었다. 낭만주의의 발생은 경제적으로는 산업혁명으로 인한 급격한 사회변화, 정치적으로는 프랑스 혁명 이후의 사회적 혼란 등이 배경이 되었다. 이성에 바탕을 두고 형식미와 정제미를 추구하던 귀족 중심의 고전주의적 문예사조로는 18세기 말의 급변하는 시대를 담아내기 역부족이었던 것이었다.

낭만주의는 이전의 고전주의가 추구하던 규칙, 간명함, 세련미 등을 거부하고 다소 투박하다 할지라도 인간의 감성이 원하는 것을 추구해 인간성의 진실을 찾으려고 시도했다. 그러기에 낭만주의는 머리로 아는 것보다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 진정한 예술이라고 생각했고, 고전주의가 추구하던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에서 탈피하여 자국의 역사와 이야기, 문화, 예술적 성향 등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낭만주의 예술은 어느 정도는 국민주의적 성격을 지니며, 이성보다는 감동 위주였기 때문에 현실에서 일어나기 어려운 세계를 추구하기도 하였다. 우리가 종종 현실적으로 보기 어려운 연애나 이야기에 '낭만적이다' 라고 하는 것도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낭만주의는 고전주의와 달리 작품을 설명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고전주의 예술작품들은 그것을 수용하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교양 있는 사람들이었기에 작품에 다른 수식이 붙는 것을 유치하다고 생각했지만, 19세기 낭만주의자들의 예술작품은 예술 자체가 인간의 가슴에 호소하는 것이었던 데다가, 수용자 층도 이전시대 귀족들이 아닌 산업혁명 이후 돈을 번 부르주아 계층이나 일부 노동자 계층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들은 누대에 걸쳐 자연스럽게 교양을 쌓아온 귀족들과는 달랐기에 예술작품을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해주기를 원했고, 그 결과 낭만주의 예술은 작품에 제목을 달고 작품에 대한 설명이나 작품을 보충하는 이야기를 담기도 했다.

이렇듯 예술 전반을 지배한 낭만주의 문예사조 속에서 예술가들은 작품에서뿐 아니라 실제 자신의 삶에서도 낭만적 성향을 추구해나갔다. 그 가운데 슈만은 그의 작품과 삶의 많은 부분에서 낭만주의 예술가로서의 삶을 실천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1830년 여름, 스무 살의 로베르트 슈만은 어머니에게 한 통의 편지를 쓴다. “법 안에서 가난하고 불행하기보다는, 예술 안에서 가난하고 행복하고 싶습니다.” 이런 문장으로 끝맺은 그 편지를 분수령으로, 슈만은 모친의 권유에 의한 법학도의 삶을 접고 자신의 충동에 따른 음악가의 길을 걷게 된다. 처음에 그는 라이프치히의 유명한 피아노 선생 프리드리히 비크의 문하로 들어가 ‘피아노의 파가니니’가 되겠다는 꿈을 불태웠다.

그러나 그 꿈은 불의의 손가락 부상으로 인해 좌절되고 대신 그는 작곡가 겸 평론가로서 ‘낭만주의 음악운동’의 선봉에 서서 맹렬한 투쟁을 전개해 나갔다.

그는 이전의 교향곡 위주의 형식미를 갖춘 작곡 형태에서 벗어나 마음이 가는 대로 많은 곡을 써갔고, 슈베르트 이후 수많은 독일 가곡을 작곡해, 낭만주의 음악가로서의 면모를 확실히 했다. 또한 그의 삶 역시 매우 낭만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혹독하게 훈육되어야만 최고의 연주가가 될 수 있다는 고정관념에 도전했고, 평범한 부르주아로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음악을 위해 버렸으며, 사랑하는 여자를 얻기 위해 장인과 법적 투쟁을 하는 등 이성보다는 가슴이 원하는 인생을 실천적으로 살아갔던 사람이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