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석의 뮤지엄칼럼]박물관에 불필요한 자료 처분하라
[윤태석의 뮤지엄칼럼]박물관에 불필요한 자료 처분하라
  • 윤태석 뮤지엄칼럼니스트/문화학 박사
  • 승인 2014.10.29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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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윤태석/뮤지엄칼럼니스트문화학 박사/한국박물관학회 이사/한국박물관교육학회 이사
박물관에서 소장 자료(유물)를 처분하는 일은 참 어려운 일 중 하나다. 박물관의 3대 조건 중에서 자료가 핵심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득보다는 책임을 져야할 일들이 염려되기 때문에 선뜻 나서기가 꺼려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정된 공간과 시설, 정체성과의 부합정도 등을 따져볼 때 적절하지 않은 자료까지 무작정 껴안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현명한 처분방법을 자체적이든 외부에서든 마련하여 박물관을 건전하고 건강하게 체질 개선 할 수 있는 적극적인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얼마 전 지방의 모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관장의 박물관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 수장고, 사무실, 관장집무실 등 전시장 외의 공간만을 일부러 관심 있게 관찰한 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보이는 컬렉터들의 성격이 이 박물관 구석구석에도 묻어있음을 보고 관장의 취향과 수집방향을 다소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빈틈없을 정도로 놓아지고 내걸린 소장품 중 상당수는 박물관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들이 많았다.

왜 이런 자료들까지 소장하게 되었는지를 묻자, 박물관을 생각하기 전에 무작정 수집했던 것들이 적지 않으며 박물관을 연 후에도 여행을 하거나 할 때 박물관과 직접 관계가 없다하더라도 자꾸 손이가 모으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기증자가 막무가내로 놓고 간 것들도 꽤 있다고 했다. 박물관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들만 다시정리해도 박물관 몇 개는 만들 수 있겠네요? 하자 지금도 벅차고 힘든데 또~? 연신 손사래를 쳐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실 건데요? 하니 기증이나 처분을 하고 싶은데 적당한 명분과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단다. 그냥 남을 주자니 자식 같아 선뜻 내키지 않고, 경매 등에 내 놓자니 박물관장이 물건 팔아먹는다는 소릴 들을 것 같고......, 진퇴양난이라서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는 상당수 박물관도 대동소이한 현상이 아닌가 추정된다. 소장 자료가 빈약해 자주 언론에 회자되는 기초자치 단체 설립 공립을 제외하면 말이다.

소장 자료는 공개를 통해 그 활용도가 높아진다. 따라서 박물관과의 정체성이 맞지 않는다면 쉬이 공개할 수도 없어 활용도가 떨어짐은 물론이다. 자료 처분의 명분과 방법이 신속하게 논의되어야할 이유이다.
소장품의 올바른 처분은 박물관에 많은 기회와 운영의 효율성을 가져다준다.

첫째,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둘째, 운영비를 줄여준다. 자료를 관리하는 것은 경제적인 부담이 수반되어야한다. 항온항습, 도난방지 등 박물관의 기본적인 설비 및 운영비는 물론 관련 인력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셋째, 처분으로 조성된 자금으로 박물관에 꼭 필요한 자료를 수집할 수 있어 박물관의 내실을 기할 수 있다. 넷째, 자료보존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자료가 많으면 관리가 쉽지 않고 이러다 보면 방치되어 손·망실의 위험에 노출되게 된다. 필자가 방문한 박물관 역시 이러한 현상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꼭 필요한 사람에게 보내졌을 때 이는 자연스럽게 해결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해당박물관의 정체성을 보다 분명히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소장품 수집방향과 정책은 매우 객관적이며 냉정하게 계획되어야 한다. 그러나 관장의 주관적 판단은 독단적인 전시로 이어져 정체성에 벗어난 자료가 억지로 진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합리적인 처분은 정체성 부각의 선행조건 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처분정책은 어떻게 계획되어야할까? 우선「국제박물관위원회(ICOM) 윤리강령」이나 국립중앙박물관 또는 국립현대미술관 등 유물 관리규정이 비교적 잘 구비된 박물관의 사례를 참조하여 자체 규정을 마련해야한다. 규정의 마련은 독단적으로 할 것이 아니라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위원회를 구성함이 보다 합리적이다.

다음으로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이하 박미법) 상 등록 자료를 냉정하게 재분석하여 불필요한 자료는 등록에서 빼 변경등록을 하는 절차를 거쳐야한다. 등록 자료에서 벗어난 자료는 적어도 법적 제약에서 자유롭기 위함으로 이 과정은 매우 중요한 절차임을 명심해야한다. 다음으로 가치에 따라 수준에 맞는 경매나 바자회 등에 내 놓아 처분하는 절차를 거칠 수 있다. 상기와 같은 것들은 박물관 자체에서 할 수 있는 것이나 숙고하고 또 숙고하는 과정이 요구됨을 명심하여야 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해주기 위한 정부와 관련 단체의 노력도 필요하다. 우선, 문화체육관광부와 같은 정부의 주무부처는 박물관 자료의 처분을 지나친 윤리적 잣대로만 볼 것이 아니라 현실을 이해하고 적극적인 인식의 전환에 앞장서 표준 규정을 만들고 이를 능동적으로 배포하고 홍보하여야한다. 이는 한국박물관협회와 같은 민간 기구에도 적용되는 것으로 외부환경 조성을 통해 박물관의 내실화를 유도해 주어야 한다.

특히, 삶의 질 향상과 박물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박물관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현실에서 박물관 설립에 관심 있는 단체나 개인 역시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적극 활용하는 것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불필요한 자료는 물론 정체성에 부합하더라도 적지 않은 잉여 유물을 가지고 있는 박물관과 이들을 연결해준다면 소장품확보에 대한 큰 고민을 쉽게 해결해 주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는 우선 자료가 부실해 사회 문제되고 있는 기초자치 단체 공립부터 혜택을 받을 수 있어 방안마련을 시급히 고려해야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기증과 기부활성화를 적극 유도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소득공제 비율을 확대하는 등 제도적인 뒷받침도 해주어야 한다. 한국박물관협회는 이에 해당하는 관이 적극 나설 수 있도록 홍보하고 바자회 등 이벤트를 적극적으로 개최하여 활성화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한편, 국립 박물관이나 광역자치단체 설립 공립 박물관의 잉여 자료 양여나 위탁은「문화재 보호법」이나 박미법에서 그 적법성과 방법을 명시하고 있어 참고하면 된다.

주지하다시피 박물관은 항구적, 비영리기관임을 자처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운영의 효율성을 구축했을 때 보다 가능한 목표이다. 따라서 박물관 내외부의 환경개선을 위해 당장 가능한 조치부터 단행함은 당연하다. 소장품에 대한 합리적, 합법적 처분 책은 이를 앞당길 수 있음을 재인식했으면 한다.


문화학 박사
한국박물관학회 이사
한국박물관교육학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