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국립국악원무용단의 2014 신작 <사제동행>
[이근수의 무용평론]국립국악원무용단의 2014 신작 <사제동행>
  • 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명예교수
  • 승인 2014.10.29 11: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명예교수
“스승을 귀하게 여기지 아니하고 제자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지식이 많다 하더라도 이는 크게 미혹된 것이다.(不貴其師 不愛其資 須知大迷)”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말이다. 그리고 국립국악원 무용단(한명옥)의 2014년 신작 ‘사제동행’(師弟同行; 9.25~26, 국립국악원 예악당)의 주제어이기도 하다.

사제동행은 7개 작품으로 구성된다. 궁중무용 1개(학연화대합설무), 민속춤 4개(설장구춤, 승무, 동래학춤, 살풀이춤)와 창작춤 2개(국수호류 장한가, 김매자 춤 그 신명)이다. 스승이 무대 뒤에서 지도하고 제자만 무대에 오르거나 스승과 제자가 함께 출연하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사제동행이란 기획의도를 살려내고 작품이 바뀌는 중간마다 박성호와 백미진이 출연하여 스승과 제자 역을 연기하는 연극적 형식도 갖추었다.

무용단장 취임 후 ‘사도사색(四道四色)’, ‘이야기와 정재(呈才)’ 등 신선한 기획을 통해 구태의연했던 전통춤공연형식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계속해온 한명옥이 이번엔 춤과 연극의 융합무대를 선택한 셈이다.

‘양도일류 설장구춤’이 개막공연이다. 박은하가 제자 14명과 장구를 메고 함께 출연한다. 스승이 장구를 치면 제자가 장구소리로 호응한다. 소리를 통한 스승과 제자간의 대화가 이어지는 흥겨운 춤이다. ‘학연화대합설무’는 이홍구(중요무형문화재 40호 합설무 예능보유자)가 지도를 맡고 백색과 녹색 두 마리 학으로 김영신과 이주리가 출연한다. 무대 뒤에 오색 병풍이 쳐 있고 악사들이 앞에 자리 잡았다.

무대를 가로지르며 춤추던 학 두 마리의 날개가 좌우에 놓인 커다란 두 송이 홍련을 살짝 건드리니 꽃 봉우리 활짝 열리고 그 안에서 여인 둘이 태어난다. 이들이 함께 어울리는 아름다운 무대가 꾸며진다.

다음은 중요무형문화재 27호로 지정된 ‘한영숙류 승무(僧舞)’다. 지난여름 뜻하지 않은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예능보유자인 정재만의 승무를 제자들이 살려내는 헌정의 무대다. 7개의 북이 늘어서 있고 깊이 눌러쓴 고깔에 붉은 어깨띠, 푸른 안감을 내비치는 흰 장삼을 입은 7명 승려가 출연한다. 대부분은 예능 이수자들이다.

승무는 불교적인 춤이면서도 세속적인 느낌이 강하다. 해탈을 꿈꾸면서도 세속의 번뇌를 완전히 씻어버리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느리거나 빠른 장단, 북소리, 누웠다 앉았다 일어서는 동작들이 다양하게 펼쳐지면서 온 몸의 마디마디를 모두 움직여야하는 춤이 승무다. 태어남과 성장, 노년의 삶을 거쳐 죽음에 이르기까지 삶의 여정이 춤사위를 구성한다.

고인이 된 정재만(1948~2014)의 66년 짧은 삶이 이 춤 하나에 응축된 느낌이다. “바람이 스치는 것은 순간/그 감촉과 향기는 오래 남으리”, “춤은 곧 삶이다.”라고 제자들에 남긴 그의 어록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동래학춤’은 흰 두루마기에 갓을 쓴 선비들이 마치 논두렁의 학이 먹잇감을 찾듯 천천히 무대를 돌며 춤추는 여유로운 춤이다. 이성훈이 지도를 하고 제자들 여섯과 함께 출연했다. 중요무형문화재 97호로 지정된 ‘이매방류 살풀이춤’은 국악원무용단 예술감독인 한명옥이 지도하고 최병재 양선희 장민하 등 3명의 이수자를 포함한 7명이 출연했다. 흰색 치마저고리에 흰 수건을 들고 추는 7명의 춤꾼들이 살풀이의 정조를 우아하게 표현한 춤이었다.

남성독무인 한량무를 현대화하여 국수호가 제자들과 함께 출연한 ‘장한가(국수호류 한량무)’에 이어 공연된 ‘춤, 그 신명’은 30년의 연륜을 거치면서 이제 창무회를 대표하는 레퍼토리가 되어버린 창작 춤이다. 객석 통로를 따라 무용수들이 등단하고 사물놀이가 중심이 된 ‘음악집단 이야’의 타악 반주에 맞춰 우리나라 농촌 아낙네와 남정들의 신명을 표현한다.

신명이란 단순히 기쁨에서만 우러나는 것은 아니다. 희로애락의 복합적인 감정이 놀이판을 만날 때 순간적으로 솟구쳐 오르는 희열의 상태가 신명의 본질일 것이다. 신명난 춤이 반드시 거칠고 요란한 춤사위를 수반하는 것도 아니다. 김매자가 지도를 맡고 창무회원 들이 추는 춤은 때로는 슬로우비디오를 보는 것 같은 느린 춤사위 가운데서도 춤 속에 몰입된 무용수들의 신명을 느낄 수 있는 사제동행의 하이라이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