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희망'을 갖자
인사동 '희망'을 갖자
  • 권대섭 대기자
  • 승인 2008.11.18 13:54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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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솟는 임대료 전통문화신음, 건물주 횡포막을 특단대책 필요

볼거리 많은 공간으로 정평난 인사동. 하지만 어느 틈엔가 전통 문화가 밀려나고 상업주의가 판치는 공간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싸구려 상품을 진열하는 가게들이 늘면서, 문화 상품을 취급하던 가게들이 밀려났다. 그 틈을 장사만 잘 되는 업종들이 차지했다. 문화의 거리라는 평가가 무색하게, 간판은 무례하고 도로관리 방식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우리나라 유일의 문화지구로 명성높은 인사동이 속으로 부터 무너져 온 것이다. 상업주의 자본논리에 밀려

어지러운 간판들이 가득찬 인사동 거리풍경

정체성 논란이 일어난지 이미 오래지만, 여전히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고 있다.

8일 오후 인사동 한켠 골목길에서 만난 모텔 관리인은 걱정스런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임대료가 월 수천만원이니 건물주만 돈벌고 상인들은 죽을 맛입니다". 인사동을 오랫동안 지키며 살고 있다는 이 관리인은 건물주들의 횡포가 심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인사동 점주는 현대판 노예' 탄식

인사동 안쪽 골목에서 20년째 찻집과 도자기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ㅅ 점의 김태자(가명, 51세) 대표는 "찾아오는 친구들마다 어떻게 버티냐"고 묻는다며 "외국인 손님들이 찾아오면 창피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16평의 공간을 보증금 3천만원에 월 190만원의 임대료로 운영 중이라는 김씨는 경기가 아무리 나빠도 집세를 내리는 법이 없다며 인사동의 점주들을 '현대판 노예'라고까지 표현했다.

최근 수년간 10배까지 뛰어오른 임대료를 감당하느라 대로변의 전통 공예품점이나 골동품점들은 어쩔 수 없이 원가가 싼 중국산, 동남아산 등 수천원짜리 싸구려 공산품을 펼쳐놓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싸구려 공산품을 기념품으로 알고 사는 이들은 식견높은 외국인 문화관광객이 아니라 안목없는 우리 나라 젊은이들 뿐이라는 게 김 씨의 전언이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버티면 다행이다. 지난 10여년간 이미 많은 수의 고미술점과 골동품점, 화랑들이 문을 닫거나 인근 북촌, 사간동, 평창동 등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ㄱ 골동품점의 주인 이 모 씨도 한탄을 연발한다. 그는 "인사동이 젊은이들의 유흥과 쇼핑놀이 장소로 바뀌어 버렸다"며 "돗대기 시장이 된 인사동의 잡화점과 사람들의 물결만을 세계인 앞에 내놓기는 부끄럽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씨는 인사동의 건물을 사들인 강남의 부자들이 옆집에서 임대료 올리는 것을 슬그머니 지켜보다가 뒤따라 몇 배의 임대료를 제시하기 일쑤라고 전했다.

예컨대 인사동 은행가의 기업은행 부근에 있던 전통차 도구점의 경우 리모델링 전에는 보증금 2천만원에 월 1백만원으로 운영하며 인사동 정체성 지키기에 일조해 왔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건물주가 리모델링을 한다더니 보증금 1억원에 월 4백만원을 제시하더라는 것이다.

전통찻집과 차 도구점은 사라지고 그 자리엔 인사동 문화 이미지와 거리가 먼 가게들이 들어섰다. 최근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는 게 이씨의 걱정이다. 건물주들의 임대료 따라올리기가 도미노처럼 번져, 한 바퀴 돌아 다시 올리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사동을 즐겨찾는다는 시민 박성모(47) 씨는 "인사동 문화지구를 지키기 위해서는 과다한 임대료를 억제하는 특단의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도로 간판 관리 좀 더 섬세해야

인사동 쌈지길 골목에서 한정식집을 운영하는 신 모 씨는 좀 더 다른 각도에서 인사동을 걱정했다. 신씨는 인사동을 장식한 수많은 간판을 규격화해 일관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씨는 "얼마전 스페인 NGO 단체에서 일한다는 한 관광객이 '음식점들의 간판이 너무 무례하게 손님들을 위협하는 느낌'이라는 이야기를 해 얼굴이 화끈거렸다"고 전했다. 집집마다 손님들을 끌기 위해 경쟁적으로 간판을 만들어 단 것이 역효과를 낸다는 지적이다.

인사동 도로관리에 대한 목소리도 들렸다. 천염염색 옷가게에서 일하고 있는 한 점원은 "외국의 여자손님이 고급 하이힐을 신고 왔다가 도로 벽돌틈에 굽이 끼여 뒷굽이 떨어져 난처해 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고 전했다. 덕분에 인근의 구두수선점만 장사가 잘 된다는 것이다.이 점원은 인사동 전체의 분위기 변질도 문제지만, 여행 중 발생한 사소한 불편사항이 자칫 나쁜 입소문을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며 인사동을 걱정했다.

인사동 본 모습 되찾아야

인사동의 변질을 가져온 결정적 계기로 흔히 97년 4월부터 시행한 '차없는 거리'를 든다. 99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방문으로 인한 홍보와 입소문도 한 원인으로 꼽힌다. 전통문화보존과 지역발전을 위해 결행한 정책이 개발바람을 부추겼고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임대료 상승을 불러 오히려 전통있는 분위기를 훼손하는 역효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렇다고 차없는 거리를 시행한 자체를 저평가할 일은 아니다. 사람들이 모여들게 한 점은 성공적 업적으로 평가될 만하다. 다만 수많은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데 성공한 인사동에 대한 예상되는 부작용 예측과 대응이 늦었다는 지적이다. 특히 비싼 임대료는 문제다.

건물주들로서는 인사동이 투자처임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인사동이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핵심 상권으로 떠오르게 되는 이면에 오랫동안 인사동 고유의 분위기를 만들어온 상인들과 아기자기한 전통문화 점포들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너무 높은 임대료는 이러한 문화와 분위기 자체를 좀먹는 자기 살 깎어먹기임을 건물주들 스스로 깨달아야 할 것이다. 건물주들과 상인들의 단체협약이나 당국의 적절한 지도가 수반된다면 장기적으로 인사동 문화 가꾸기에 득이 되리라는 목소리는 그래서 유효하다.

종로구의회 안재홍 재무건설위원장은 "현재의 조례나 법으로는 인사동의 건물을 규제할 수 없는 실정"이라며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숙고해서 인사동을 인사동답게 살리도록 해야할 것"이라고 말해 인사동의 정체성을 살릴 대책이 필요하다는데 인식을 함께 했다.

아름다운 인사동, 우리 민족의 정서를 잘 보여주는 인사동인 만큼 일반 '목좋은 상권'과는 다른 자체적 공생방법과 문화마인드 가꾸기로 발전하기를 많은 시민들은 기대하고 있다.
복잡한 난제들이 얽힌 인사동이 본 모습을 다시 찾아 우리 전통문화의 보루가 되어주기를 시민들은 희망어린 눈으로 보고 있다.

             서울문화투데이  권대섭 대기자 kds@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