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수의 미술시장이야기]예술은 정신기술이다.
[박정수의 미술시장이야기]예술은 정신기술이다.
  • 박정수 미술평론가/ 정수화랑 대표
  • 승인 2014.11.19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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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미술평론가/ 정수화랑 대표
해외여행을 다녀오신 분들의 여행 스케치 전시가 종종 개최된다. 외국의 낯선 문화를 타국인으로써 느끼는 감정이나 문화접변에 의한 변화를 그려내는 것은 별로 없다.

멀리 풍광 좋은 곳 다녀왔다는 자랑질 형식의 기행그림이 대다수다. 개인이 개인적으로 자신이 다녀온 곳 그림으로 그려서 전시하는 것에 뭐라 첨언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명망 있는 분들의 그러한 전시이기 때문에 문제가 많다. 그들이 그려내는 작품들은 인터넷으로 다 볼 수 있는 풍경일 뿐이다. 여기에서 또 하나의 문제는 일반인들의 감정에는 그림 그리는 것 자체를 예술로 보는 이들이 많다. 화가는 죽어야 값이 오르고 화가는 가난하게 사는 이들이라 믿는다.

예술에 있어서 기술이란 보이는 것을 잘 그리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무엇을 보이게 하는 표현방법이다.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지만 존재하는 미지의 경험과 도래할 미래의 사용가치를 획득하여야 예술이 된다. 예술가는 예인이 아니다. 김연아는 스포츠 선수다. 리듬 체조하는 손연재는 예술가가 아니다. 세상에는 예술가와 예인과 보통사람이 어울려 산다. 예술가는 무엇인가를 만들고, 예인은 무엇인가를 표현하는 주인공이 되고 보통사람은 이를 감성으로 받아들인다.

아침 드라마에 열광하는 아줌마는 없다. 시끄러운 청소기 소음을 무시하면서도 극의 흐름을 알고, 막장이라고 하는 의미를 잘 받아들이다. 그러면서 남들과 이야기할 때는 계면쩍어하면서 아침드라마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즐기는 것과 말하는 것은 다르다. 예술은 이러한 것들을 조율한다.

아침드라마가 막장인 이유는 시청률이 아니라 제작비용에 따른 최선이다. 20여명의 출연진으로 120회 이상을 끌어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그러면서 여기에 주인공인 드라마 극본을 쓰는 이나 감독은 나타나지 않는다.

악인과 선인의 선택에 있어서 이를 구성하고 만드는 이가 보통사람으로 보이면 드라마의 신성성을 사라지고 만다. 그래서 예술가의 예술작품은 알라딘 램프의 지니다. 슥삭 문지르면 펑하고 나타나야한다. 보통사람이거나 주변인으로 보이면 작품의 가치가 반감된다. 일반인들이 바라보는 경외심과 신비감은 지속 되어야 한다. 그래서 미디어의 속성을 가장 잘 아는 이들의 부류에 속하는 드라마 작가는 언론에 이름만 노출될 뿐이다.

정신기술을 발휘하는 이들은 작품제작과정이 노출되어서는 안된다. 이 또한 신비감이다. 며느리도 모르는 작업과정 이어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와 방식이 일치 하는 경우 표현방식을 위한 기술은 자체가 예술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젝슨폴록의 드리핑(Dripping)기법이 그것이다. 작품을 제작하면서 물감을 흘리는 행위자체가 우연을 조장한다. 젝슨폴록은 의도적이지 않는 결과에 대한 행위의 의도성을 통해 만들어지는 비정형성을 추구한다.

내용으로 보자면 초현실주의의 자동화 기법(automatism)의 연장선상이었다. 추상표현주의가 특정의 기술을 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행위의 기술자체가 예술에 종속될 수 있었음이다.

정신의 기술은 손기술이나 몸기술과는 다르다. 손기술이나 몸기술은 보통사람들의 소통과 공유에 있지만 정신기술은 별도의 독특한 장르에 있다. 예술은 정신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