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기행-121]한글의 싹을 틔워줄 따스한 빛 - 국립한글박물관
[박물관기행-121]한글의 싹을 틔워줄 따스한 빛 - 국립한글박물관
  • 이정진 Museum Traveler
  • 승인 2014.11.20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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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빨리 낳아.’, ‘너 정말 어의없다.’, ‘약속을 깜빡 잃어버렸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그릇된 한글표기의 향연은 철부지 아이가 아닌 배울 만큼 배운 성인이 빚어낸 부끄러운 단편이다.

영어 스펠링 틀린 것은 민감하고 부끄러워하면서도 한글 맞춤법이 틀린 것은 대수롭지 않은 듯 넘어가는 것이 우리들의 언어일상이다. 또한 한글날이 공휴일인 것만 알았지 몇 월 며칠인지도 모르는 이들도 적지 않단 사실에 다시 한 번 쓴웃음이 지어진다. 한글의 가치의 재인식을 목적으로 국립한글박물관이 지난 2014년 10월 9일 한글날에 성대하게 문을 열었다.

▲한글 박물관 전경

‘한글’이라는 문자 콘텐츠를 주제로 구성된 한글박물관은 그야말로 한글 천국으로 그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풀어내고 있다. 이른 오전부터 단체 관람객을 맞이한 곳은 한글놀이터 전시관으로 한글을 모르는 미취학 아동부터 한글을 이제 막 시작한 아이들을 동반한 부모들에게 큰 관심이 되고 있다. 벌써부터 예약문의가 쇄도하고 있으며, 관람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단다.

한글 창제의 원리를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보고 풀어낸 한글 놀이터는 들리는 소리를 가장 정확하게 쓰고 읽을 수 있다는 한글의 장점을 살려 각종 소리를 이용한 체험 요소로 가득하다. 눈과 귀, 입, 신체 등의 다양한 감각 기관을 통해 한글의 우수성을 접하면서 자유로운 표현을 도모하는 예술 활동 또한 신선하다는 평가다.

▲한글 놀이터

현재 특별 전시로 진행되고 있는 ‘세종대왕, 한글문화시대를 열다’전은 한글 창제를 비롯한 백성을 위한 천문 과학, 농업 및 음악, 세금제도를 운용하였던 문화군주 세종대왕의 다각도의 면모를 볼 수 있는 유물들과 한글에 현대적 해석을 가미한 현대미술작품이 공존한 공간으로 세종의 정신을 계승하는 후예들의 다채로운 활동이 엿보인다.

상설 전시실의 ‘한글이 걸어온 길’은 한글 창제(1443)에서부터 한글이 겪은 혼돈과 격정의 시기를 지나 민족의 언어로 그 꽃을 피우기까지의 애락哀樂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또한, 세종의 한글 창제, 숙종의 한글 금지령, 고종의 국문선포에서 한글날의 효시가 된 가갸날 잔치 등 조선사에서의 한글이 삶을 디오라마로 만날 수 있다.

▲특별전 세종대왕 한국문화시대를 열다

한글이 주는 아름다움은 민중의 삶 속에서, 궁궐 안에서도 나타난다. 청화백자 허리 아래에 적힌 ‘시케 단지(식혜 단지)’와 소반 바닥에, 실패에 음각으로 새겨진 음절은 한글의 옛 모습을 볼 수 있어 정겹다. 편지를 많이 쓰기로 유명했던 정조대왕이 다섯 살 때 한글로 쓴 외숙모께 드리는 문안인사편지에는 ‘신던 버선이 작으니 사촌동생에게 신겨주라’는 귀여운 씀씀이가 담긴 내용이 적혀있다.

또한, 명성황후가 가족을 위해 부친 한글 편지에는 가족을 향한 마음이 애틋하게 다가온다. 이외에 훈민정음해례본訓民正音解例本, 월인석보月印釋譜, 석보상절釋譜詳節 등의 귀한 서적 사료에는 긴 세월을 건너 전해지는 한글이 가진 감동을 느끼게 한다.

▲특별전시실

일제강점기, 문화 말살정책에 희생양이 되었던 한글 금지령에도 한글은 민족의 맥이었으며 영원한 우리말이었다. 억압당하던 그 시대에도 최초의 국어사전과 대국어사전이 편찬되었으며, 지금은 빛바랜 유물로 전시되고 있어 종이가 한글을 지켜낸 일등공신이었음을 목도하게 한다.

이렇게 지켜낸 우리 정신이자 뿌리인 한글은 이제 국제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세계적인 언어학자들로부터 한글에 숨어있는 우수한 과학적 원리와 독창성을 인정받고 있다. 한글은 세계 각국에서 교육 과목으로 채택되고 있으며 정보화 사회에서도 매우 우수한 문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글의 숨어있던 본질과 잠재력이 다시 한 번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한글이 단순한 소통 수단에서 벗어나 새로운 문화의 꽃을 피워내기 위한 씨앗이라면 한글박물관은 그 싹을 틔워줄 따스한 빛이 되어 주리라고 기대한다.

한글박물관(www.hangeul.go.kr)
위치_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9/문의_ 02-2124-6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