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춤추는 한지 인형-신명숙 춤 50년이 남긴 과제
[이근수의 무용평론]춤추는 한지 인형-신명숙 춤 50년이 남긴 과제
  • 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14.11.20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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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 명예교수
“내가 죽는다 해도 나의 작품을 후세에 남길 방법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이런 생각을 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미국의 유명한 현대무용가인 마사 그레이엄(Martha Graham)이 타계하기 직전 발간된 자서전에 남긴 말이다.

춤의 원형을 무보로 남길 수 있고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이용하여 공연 전부를 비디오에 담아 언제나 볼 수는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으로 춤 공연의 현장성을 되살리기는 어렵다. 마사 그레이엄의 탄식은 지금도 유효한 것이다. 신명숙이 춤인생 50년을 기념하여 보여준 ‘한지인형으로 춤추다’ 전시(2014.11.4~11, 갤러리 이즈) 역시 무대에서 사라져갈 수밖에 없는 춤사위를 원형대로 보존하기 위해 무용가가 선택한 색다른 시도라 할 수 있다.

인사동에 위치한 갤러리 이즈의 3층 전시장에는 20명이 넘는 전통춤꾼 들이 닥종이 한지로 만들어진 인형형태로 늘어서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쪽 벽면엔 전통춤을 추는 무용가의 영상이 군무진을 배경으로 비쳐진다. 살풀이, 태평무, 장고춤, 밀양검무, 화관무, 무당춤, 농악과 소고춤에 바라춤을 추는 스님도 있다.

려한 색감의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채 음악에 맞춰 무대에서 뛰놀면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던 춤사위 그대로다. 얼굴모습은 제각각이다. 화관무는 김백봉을 닮았고 태평무의 남무(男舞)는 얼마 전에 타계한 정재만의 생전 모습이다. 춤을 처음 접하게 된 때부터 자신을 지도해준 스승들과 무용계에서 함께 춤춰온 지인들 얼굴을 재현하려했다고 한다. 살풀이와 장고춤은 자신의 모습이다.

리틀엔젤스단원으로부터 시작된 신명숙의 춤길이 종이작업으로 연결된 것이 우연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20대 후반의 젊은 무용가로서 춤타래 무용단에서 활동하면서 한국의 무용계에 한창 겁 없는 발돋움을 계속하던 때 신명숙은 중국유학길에 올랐다. 무용계의 현실에 안주하던 다른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처신이었다.

베이징에 있는 중앙민족대학에서 소수민족무용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할 때의 논문 제목은 ‘중국 나시족 동바 무보 연구’ 였다. 동바무보는 중국서남부 운남성과 사천성에 뿌리박고 살아온 소수민족인 나시족이 그들의 전통춤을 상형문자와 동바문을 사용하여 기록해놓은 무보(舞譜)이다. 무대 위에서 추어지는 춤의 원형을 종이에 그려진 무보에서 발견한 것이 신명숙과 종이와의 첫 번 째 만남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귀국 후인 2002년 한국무용기록학회 부회장으로 있으면서 종이에 기록된 춤을 무대 위에 살려내는 신명숙(대진대 교수)의 춤을 보면서 우리 민속춤인 지신밟기나 강강수월래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가졌던 기억이 난다.

종이인형작업은 종이와의 두 번 째 만남일 것이다. 그녀가 만드는 종이인형은 바로 춤추는 무용가의 정지된 춤사위라고 말할 수 있다. 먼저 철사를 구부려 뼈대를 만든다. 한지를 켜켜이 발라 팔다리와 몸체를 형성한 후 천연염색으로 물들인 종이옷을 입힌다. 손에는 수건이나 장고 등 소도구가 들려진다. 머리모양을 다듬고 얼굴에 화장을 입힌다. 이런 과정을 거쳐 완성된 궁중무와 전승무의 다양한 춤사위들이 무대를 닮은 세트 위에 담겨져 있다. 이 형상들에 실을 연결하면 인형극이 되고 전기를 꽂으면 키네틱(kinetic) 조각이 될 것이다.

‘춤은 사라지기에 영원하다’란 말은 불란서 철학자 알랭 바디유가 남긴 명언이다. 종이 위에 무보로 기록된 춤이 무대에서 되살아나듯 무대 위의 춤은 종이로 만들어져 유한한 무용가의 생명을 영원 속으로 이끌어 갈수 있을 것이다. 지천명 춤 나이를 기념하여 기획된 ‘한지인형으로 춤추다’ 공연전시를 보며 무대에서 내려온 무용가가 꿈꾸는 제2의 춤시대를 상상해본다.

정지함 속에 운동성을 느낄 수 있고 침묵으로 메시지를 전달해주며 살아 있는 표정으로 관람객의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종이인형의 창조는 이제 그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숙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