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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열린 제22회 전국전통공연예술경연대회 대상을 수상했다. 수상 소감 부탁한다.
“소리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큰 상을 받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기 마련이다. 나 또한 그랬고, 기회가 왔을 때 최선을 다한다고 했는데, 막상 대회 무대에서는 연습하던 것만큼도 못했다. 그래서인지 내가 수상했다고 했을 때 정말 실감이 나질 않았다. 그렇게나 원하던 상을 타니 정신이 멍했다. 한편으로는 그동안의 고충이 가슴에서 벅차게 밀려나와 눈물도 나온 것 같다. 앞으로 더욱 더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으로 보답하려고 한다.”
-대통령상 수상 후 송순섭 심사위원이 심사평에서 아주 극찬을 했다. 눈과 귀가 굉장히 예리하신 분인데, 그런 분께서 극찬을 해주시니 기분이 어땠나?
“솔직히 그 당시 너무 경황이 없어서 선생님께서 심사평을 그리 잘해주신지 잘 몰랐다. 따로 연락드렸을 때 하시는 말씀이 전국적으로 대통령상이 너무 많다며, 이걸로 안주하지 말고 시작이라 생각하고 도약할 수 있는 계기로 삼으라고 해주셨다. 정확한 장단과 발음을 구사해야한다고 배워왔고, 선생님들께서도 평가를 하실 때 그런 부분들을 눈여겨보실 거라 생각한다. 옳게 구사하기 위해 노력했기에 송순섭 선생님께서 그런 부분을 알아주신 것 같다. 송순섭 선생님은 후배를 위해 쓴 소리를 아끼지 않는 분으로 알고 있는데, 극찬을 해주셨다니 이 자리를 통해 정말 너무도 감사하다고 다시 한 번 말씀드리고 싶다.”
-솔직히 대상에 대한 기대를 하고 갔는지 궁금하다.(웃음)
“예선에 오를 때만 해도 얼마나 긴장했는지 모른다. 다 뻔히 아는 선생님들이신데 그 분들 앞에서 출전자로서 해야 될 몫, 기대치를 충족시켜드려야 한다는 압박이 심했다. 그렇게나 많이 불렀던 곡인데도 무대에 오르니 가사가 떠오르지 않을 정도였다. 내가 어떻게 하고 내려왔는지도 몰랐는데, 예선이 붙고 나니 본선에 대한 기대가 없진 않더라. 본선에서는 예선보다 덜 떨렸고, 내 기량만큼 뽑아내진 못했지만 그래도 연습하던 것만큼은 했던 것 같다. 대통령상은 하늘이 도와야 주시는 거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내가 한다고 해서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모든 게 이뤄져야 주어지는 상 같다.”
-특별히 전국전통예술경연대회를 출전한 이유가 있나?
“여러 대회들이 많지만 내가 공연에 묶여있기 때문에 나가고 싶은 대회를 마음대로 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공연과 겹치더라도 꼭 나가겠다고 하면 배려해주시지만, 그래도 프로단체에 속해있는 책임감을 져버릴 순 없었다. 상반기에는 바빠서 나갈 수가 없었고 하반기에 나갈 대회를 알아보고 있던 때에 이 대회를 알게 됐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오히려 서울에 있는 대회인데 그 전까지는 나갈 생각을 못하고 있었던 거다.”
-종합대상(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소리뿐만 아니라 춤 등 타 전통부문 참가자와 겨뤄 받은 상인데, 의미가 큰 만큼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다.
“종합대회는 처음 출전해본 거였다. 판소리는 판소리만 겨루면 되는데, 판소리끼리 겨루고, 다시 각 장르별로 또 겨뤄야하니 심리적인 압박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그걸 티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저 묵묵히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특히 본선까지 올라왔을 때는 ‘여기까지 왔는데 밀어붙여봐야지’라는 마음으로 임했다. 결과야 어찌됐든 최선을 다 하면 행복하다는 마음이었는데, 수상까지 이어져서 너무도 놀랐다.”
-상금 1천만 원은 어떻게 사용했는지 궁금한데…(웃음)
“함부로 쓸 수 없는 금쪽같은 상금이었다. 지금껏 날 위해 고생해주신 여러 선생님들을 위해 의미 있게 사용하려고 노력했다. 지금 공연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 예민한 분위기 탓에 아직 창극단 식구들에게는 대접을 못했는데, 공연 끝나고 떡이라도 돌리려고 한다. 그리고 이 대회를 주관하신 한국전통예술진흥회의 김판철 이사장님을 적극적으로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이 상이 빛나야 나 또한 빛날 수 있는 것이고, 이 대회에서 더 많은 인재들이 배출돼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후배들이 좋은 상을 탈 수 있게끔 밑거름이 되는 선배가 되고 싶다.”
-국립창극단이 최근 들어 파격행보를 보이며 작품에 큰 변화를 꾀하고 있다. 기존 소리의 틀을 무너뜨리는 것으로, 소리꾼에게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김성녀 감독님이 오신 후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감독님께서는 전통을 깨 부시자는 게 아니다. 전통만 고수하지 말고, 고루하다는 이미지의 전통과 창극을 이 시대에 맞게 각색하고 바꿔보자는 거였다. 그래서 일단은 흥미를 끌어내 다가가자는 의도를 갖고 그렇게 하신 거다. 감독님 오시고 처음에는 걱정하는 이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내부적 갈등이 왜 없었겠나. 하지만 감독님께서는 당신이 평생 창극단 감독할 것도 아닌데, 있을 동안만큼은 자기를 믿고 따라와 달라고 말씀하셨다. 나도 의구심이나 회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시대의 흐름을 부정할 수는 없더라. 골방에 앉아 전통이 언제 빛을 보나 생각만 말고 내실을 가꾸며 틀을 깨는 모습을 보여줘야 전통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반전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콩나물도 빨갛게 무치기도 하고, 하얗게 먹기도 하지 않나. 내 중심정신을 빨갛게 무쳤다고, 또는 하얗게 무쳤다고 중심까지 바뀌는 것은 아니다. 내 중심이 올곧게 서있다면 문제없다고 본다. 또한 기존과 비교해 원체 다채로운 작품들을 올리다보니 배우들의 다양한 모습, 숨겨진 재능들을 보여줄 기회가 많아진 것은 참으로 좋다.”
-실제로도 전석 매진 등 결과도 좋다. 이를 예상했었나?
“<변강쇠 점찍고 옹녀> 하면서 알게 된 건데, 관객들이 우리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좋아해주시고 웃어주시더라는 거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관객이 더 많이 열려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이란 느낌이 통하면 전달된다는 뜻이다. 무대를 싸구려로 만들거나 고급으로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배우에게 달려있다. 우린 국립으로서의 그 타이틀을 지키며 위상이 손상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하면 될 듯하다.”
-판소리는 여전히 대중에게 어렵기만 하다. 판소리가 대중에게 사랑받기 위해선 어떤 게 필요할까?
“묵묵히 나의 길을 지키고 있을 때 관객들이 알아준다. 또한 오늘날 관객들은 다양한 문화를 즐기지 않나. 우리가 <변강쇠 점찍고 옹녀>란 작품을 올렸을 때, 국립창극단이 왜 저렇게 됐냐며 손가락질 하는 관객도 있었지만, 창극이란 것에 대해 전혀 모르고, 소리가 뭔지도 모르고 있던 관객들이 이렇게 재밌는 게 있었냐며 창극공연을 다시 찾아주시곤 한다. 그런 게 반복되다보면 진중한 전통공연을 올려서 보여드려도 관객들께서 알아주실 거라 생각한다.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고 할 게 아니라 중심을 지키며 필요한 것을 흡수하며 나아가면 된다. 문화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 아니겠나. 원류는 가져가되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바뀔 필요는 있다.”
-예정된 공연이나 계획이 있다면 알려 달라.
“현재 창극단 외에 따로 하는 건 없지만 앞으로는 다양한 활동을 하려고 한다. 이 상을 받은 것에 대한 책임도 있고, 또 소리꾼으로서의 꿈이기도 한 완창을 해보고 싶다. 지금껏 완창은 내가 도전해보지 않은 영역이었다. 흥보가부터 시작할 계획이다.”
-꿈은 무엇인가?
“이제 ‘나윤영’이란 존재를 세상에 알렸으니… 나라는 사람이 한 획을 그을 정도는 아니더라도 꼭 필요한 존재였다고 기억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후배들에게는 내가 걸어왔던 어려운 길 보다는 보다 더 수월한 길로 인도해주고 싶은 선배로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