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국립창극단 나윤영 명창]“진정한 소리꾼 거듭나고자 정진하겠다” 흥보가 완창 계획 밝혀
[인터뷰 - 국립창극단 나윤영 명창]“진정한 소리꾼 거듭나고자 정진하겠다” 흥보가 완창 계획 밝혀
  • 인터뷰 이은영 편집국장/정리 윤다함 기자
  • 승인 2014.11.21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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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전통공연예술경연대회 종합대상 대통령상 수상 ‘흠 잡을 것 하나 없다’ 극찬

     지난달 7일과 8일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세종대왕기념관 야외 공연장에서 열린 제22회 전국전통공연예술경연대회의 종합대상 대통령상은 명인부 나윤영 국립창극단원이 차지하며, 상금 1천만 원을 수상했다.

     명인부 47명, 일반부 66명 등 총 113명이 참가한 이번 대회에서 종합대상을 수상한 나윤영 국립창극단원은 송순섭 심사위원장(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적벽가 보유자)으로부터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 발표할 때 옳은 음을 밝혀라 옳은 소리를 내라고 했다. 특히 판소리는 가사와 소리전달이 분명해야 하는데, 종합대상수상자 소리를 들어보니 세종대왕기념관에서 해서 더욱 신경을 쓴 것인지 흠 잡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그는 15살 때 성운선 명창으로부터 소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무용선생님이었던 이모를 따라 국악원을 갔다가 우연히 옆방에서 다른 학생을 지도 중이었던 성 명창을 처음 만났다. 성 명창의 지도대로 따라하지 못하는 학생을 보고 그는 자기도 모르게 답답한 마음에 소리를 불렀는데, 그 모습을 성 명창이 알아본 것이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소리였지만 뭣도 모르고 입으로만 나불댔던 시절이라고 나 명창은 그때를 회상한다.

     그렇게 유년 시절을 보내다가 대사습학생대회에서 수상을 하면 대학가기가 수월하다는 말을 듣고 조소녀 명창 밑에서 본격적으로 소리를 배우기 시작하는데, 그렇게 나가게 된 1986년 전주대사습전국학생대회에서 장원을 차지한다. 장원 수상 덕분에 전주우석대학교 4년 장학생으로 대학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대학 졸업 후 바로 국립창극단에 입단해 좋은 선생님들 밑에서 좋은 무대 많이 오를 수 있었지만 초지일관이 힘들었다고 자평하는 나 명창. “결혼하고 아이 낳고 하다 보니 아무래도 꾀도 부리게 되고 그러더라고요. 그러다가 제가 마흔 되던 해에, 조소녀 선생님께서 그러셨어요. ‘너 언제 사람 될 거냐며’…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미쳐서 임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제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었어요. 더 이상은 이렇게 나태하게 지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죠.”

     진정한 소리꾼으로 거듭나고자 더 깊은 공부가 필요하다고 절감한 그는 안숙선 명창으로부터 춘향전과 흥보가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숨은 공으로는 ‘친 언니와도 같은’ 사람이 하나 더 있다고 덧붙이는 그이다. “제 멘토 유수정 선배님이세요. 언니가 만정계열이기도 하고, 내 고민 말하고 상담하며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안숙선 선생님께 배우기에는 선생님께서 워낙 바쁘시고 해서 언니께 어렵사리 부탁한 건데, 흔쾌히 응해준 언니가 너무도 고맙죠.”

     이렇듯 이번 수상을 하기까지 스승님들과 선배님들의 관심과 사랑이 버팀목이었다고 강조하는 그이다. 이달 20일 관객과 만날 <다른 춘향> 공연 연습에 여념이 없는 그를 국립극장 해와달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1969년 전북 군산 출생 △전주 우석대학 4년 장학생 입학·졸업, 동국대학교 불교예술문화대학원 수료 △1991년 국립창극단 입단 △1986년 전주대사습전국학생대회 장원, 1996년 목포 판소리경연대회 일반부 장원, 2014년 전국전통공연예술경연대회 종합대상 대통령상 수상 △주요작품 : 이생규장전(1993 최랑 역), 임방울전(1993 산호 역), 심흥춘의 춘향전(1996 춘향 역), 배비장전(1996 월선 역), 우루왕(2000 무녀 역), 봄의 향기(2001 춘향 역) 외 다수 △성우선, 조소녀, 오정숙, 김경숙, 안숙선 명창 사사

-지난달 열린 제22회 전국전통공연예술경연대회 대상을 수상했다. 수상 소감 부탁한다.
“소리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큰 상을 받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기 마련이다. 나 또한 그랬고, 기회가 왔을 때 최선을 다한다고 했는데, 막상 대회 무대에서는 연습하던 것만큼도 못했다. 그래서인지 내가 수상했다고 했을 때 정말 실감이 나질 않았다. 그렇게나 원하던 상을 타니 정신이 멍했다. 한편으로는 그동안의 고충이 가슴에서 벅차게 밀려나와 눈물도 나온 것 같다. 앞으로 더욱 더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으로 보답하려고 한다.” 

-대통령상 수상 후 송순섭 심사위원이 심사평에서 아주 극찬을 했다. 눈과 귀가 굉장히 예리하신 분인데, 그런 분께서 극찬을 해주시니 기분이 어땠나?
“솔직히 그 당시 너무 경황이 없어서 선생님께서 심사평을 그리 잘해주신지 잘 몰랐다. 따로 연락드렸을 때 하시는 말씀이 전국적으로 대통령상이 너무 많다며, 이걸로 안주하지 말고 시작이라 생각하고 도약할 수 있는 계기로 삼으라고 해주셨다. 정확한 장단과 발음을 구사해야한다고 배워왔고, 선생님들께서도 평가를 하실 때 그런 부분들을 눈여겨보실 거라 생각한다. 옳게 구사하기 위해 노력했기에 송순섭 선생님께서 그런 부분을 알아주신 것 같다. 송순섭 선생님은 후배를 위해 쓴 소리를 아끼지 않는 분으로 알고 있는데, 극찬을 해주셨다니 이 자리를 통해 정말 너무도 감사하다고 다시 한 번 말씀드리고 싶다.”

-솔직히 대상에 대한 기대를 하고 갔는지 궁금하다.(웃음)
“예선에 오를 때만 해도 얼마나 긴장했는지 모른다. 다 뻔히 아는 선생님들이신데 그 분들 앞에서 출전자로서 해야 될 몫, 기대치를 충족시켜드려야 한다는 압박이 심했다. 그렇게나 많이 불렀던 곡인데도 무대에 오르니 가사가 떠오르지 않을 정도였다. 내가 어떻게 하고 내려왔는지도 몰랐는데, 예선이 붙고 나니 본선에 대한 기대가 없진 않더라. 본선에서는 예선보다 덜 떨렸고, 내 기량만큼 뽑아내진 못했지만 그래도 연습하던 것만큼은 했던 것 같다. 대통령상은 하늘이 도와야 주시는 거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내가 한다고 해서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모든 게 이뤄져야 주어지는 상 같다.”

-특별히 전국전통예술경연대회를 출전한 이유가 있나?
“여러 대회들이 많지만 내가 공연에 묶여있기 때문에 나가고 싶은 대회를 마음대로 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공연과 겹치더라도 꼭 나가겠다고 하면 배려해주시지만, 그래도 프로단체에 속해있는 책임감을 져버릴 순 없었다. 상반기에는 바빠서 나갈 수가 없었고 하반기에 나갈 대회를 알아보고 있던 때에 이 대회를 알게 됐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오히려 서울에 있는 대회인데 그 전까지는 나갈 생각을 못하고 있었던 거다.”

-종합대상(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소리뿐만 아니라 춤 등 타 전통부문 참가자와 겨뤄 받은 상인데, 의미가 큰 만큼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다.
“종합대회는 처음 출전해본 거였다. 판소리는 판소리만 겨루면 되는데, 판소리끼리 겨루고, 다시 각 장르별로 또 겨뤄야하니 심리적인 압박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그걸 티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저 묵묵히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특히 본선까지 올라왔을 때는 ‘여기까지 왔는데 밀어붙여봐야지’라는 마음으로 임했다. 결과야 어찌됐든 최선을 다 하면 행복하다는 마음이었는데, 수상까지 이어져서 너무도 놀랐다.”

-상금 1천만 원은 어떻게 사용했는지 궁금한데…(웃음)
“함부로 쓸 수 없는 금쪽같은 상금이었다. 지금껏 날 위해 고생해주신 여러 선생님들을 위해 의미 있게 사용하려고 노력했다. 지금 공연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 예민한 분위기 탓에 아직 창극단 식구들에게는 대접을 못했는데, 공연 끝나고 떡이라도 돌리려고 한다. 그리고 이 대회를 주관하신 한국전통예술진흥회의 김판철 이사장님을 적극적으로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이 상이 빛나야 나 또한 빛날 수 있는 것이고, 이 대회에서 더 많은 인재들이 배출돼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후배들이 좋은 상을 탈 수 있게끔 밑거름이 되는 선배가 되고 싶다.”

-국립창극단이 최근 들어 파격행보를 보이며 작품에 큰 변화를 꾀하고 있다. 기존 소리의 틀을 무너뜨리는 것으로, 소리꾼에게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김성녀 감독님이 오신 후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감독님께서는 전통을 깨 부시자는 게 아니다. 전통만 고수하지 말고, 고루하다는 이미지의 전통과 창극을 이 시대에 맞게 각색하고 바꿔보자는 거였다. 그래서 일단은 흥미를 끌어내 다가가자는 의도를 갖고 그렇게 하신 거다. 감독님 오시고 처음에는 걱정하는 이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내부적 갈등이 왜 없었겠나. 하지만 감독님께서는 당신이 평생 창극단 감독할 것도 아닌데, 있을 동안만큼은 자기를 믿고 따라와 달라고 말씀하셨다. 나도 의구심이나 회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시대의 흐름을 부정할 수는 없더라. 골방에 앉아 전통이 언제 빛을 보나 생각만 말고 내실을 가꾸며 틀을 깨는 모습을 보여줘야 전통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반전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콩나물도 빨갛게 무치기도 하고, 하얗게 먹기도 하지 않나. 내 중심정신을 빨갛게 무쳤다고, 또는 하얗게 무쳤다고 중심까지 바뀌는 것은 아니다. 내 중심이 올곧게 서있다면 문제없다고 본다. 또한 기존과 비교해 원체 다채로운 작품들을 올리다보니 배우들의 다양한 모습, 숨겨진 재능들을 보여줄 기회가 많아진 것은 참으로 좋다.”

-실제로도 전석 매진 등 결과도 좋다. 이를 예상했었나?
“<변강쇠 점찍고 옹녀> 하면서 알게 된 건데, 관객들이 우리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좋아해주시고 웃어주시더라는 거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관객이 더 많이 열려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이란 느낌이 통하면 전달된다는 뜻이다. 무대를 싸구려로 만들거나 고급으로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배우에게 달려있다. 우린 국립으로서의 그 타이틀을 지키며 위상이 손상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하면 될 듯하다.”

-판소리는 여전히 대중에게 어렵기만 하다. 판소리가 대중에게 사랑받기 위해선 어떤 게 필요할까?
“묵묵히 나의 길을 지키고 있을 때 관객들이 알아준다. 또한 오늘날 관객들은 다양한 문화를 즐기지 않나. 우리가 <변강쇠 점찍고 옹녀>란 작품을 올렸을 때, 국립창극단이 왜 저렇게 됐냐며 손가락질 하는 관객도 있었지만, 창극이란 것에 대해 전혀 모르고, 소리가 뭔지도 모르고 있던 관객들이 이렇게 재밌는 게 있었냐며 창극공연을 다시 찾아주시곤 한다. 그런 게 반복되다보면 진중한 전통공연을 올려서 보여드려도 관객들께서 알아주실 거라 생각한다.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고 할 게 아니라 중심을 지키며 필요한 것을 흡수하며 나아가면 된다. 문화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 아니겠나. 원류는 가져가되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바뀔 필요는 있다.”

-예정된 공연이나 계획이 있다면 알려 달라.
“현재 창극단 외에 따로 하는 건 없지만 앞으로는 다양한 활동을 하려고 한다. 이 상을 받은 것에 대한 책임도 있고, 또 소리꾼으로서의 꿈이기도 한 완창을 해보고 싶다. 지금껏 완창은 내가 도전해보지 않은 영역이었다. 흥보가부터 시작할 계획이다.”

-꿈은 무엇인가?
“이제 ‘나윤영’이란 존재를 세상에 알렸으니… 나라는 사람이 한 획을 그을 정도는 아니더라도 꼭 필요한 존재였다고 기억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후배들에게는 내가 걸어왔던 어려운 길 보다는 보다 더 수월한 길로 인도해주고 싶은 선배로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