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일랑 이종상 화백] 중국벽화- ⑤ 당대 벽화
[특별기고-일랑 이종상 화백] 중국벽화- ⑤ 당대 벽화
  • 일랑 이종상 화백/대한민국예술원 회원
  • 승인 2014.11.23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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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벽화의 사적 고찰과 신벽화의 재료 및 기법에 대한 연구-11
▲일랑 이종상 화백

(지난 호에 이어)

⑤ 당대 벽화

초당 후기에 Gupta-India양식이 들어와 도'釋'(석)유의 삼교일치 사상이 진전되어 사원, 도관 건축이 성행함에 따라 벽화 제작은 절정기에 달했다.

돈황 막고굴 벽화에서 산수화를 도입시켰고 불보살을 자연에 조화시키려는 새로운 불교 벽화 양식을 낳았다. fresco기법으로 문인화풍의 산수화를 그린 왕유에 의해 이사훈 금석훈영법으로 두터운 채색과 장식적인 양식으로 tempera기법의 벽화르 제작한 것으로 간주된다. 구성면에서는 완전히 중국적인계백당묵의 전통성이 보이며, 백묘화법도 벽화는 물론, 일반 견화에서도 즐겨 썼으며 채색법이 발달하고 음영법이 완전히 소화되어 중국적인 것으로 표출되었다.

㉮ 초당기의 벽화 : 측천조(후반기)에 Gupta-India벽화 양식이 유입되어 위지을승은 閻派(염파)의 벽화와 아울러 유도주의와 서역 불교문화주의와 대립을 보았다. 장안 자은사, 광택사, 망극상, 봉은사「降魔變相」(강마변상)은 강한 주체성과 그의 진실성이 보이는 작품이라고 전한다.

돈황 cave 220의 유마변상도를 보면 담색조의 밝은 색을 쓰고 세선이 필速이 있고 강한 필력이 보이며 왕을 크게 그리고 대신을 그 양쪽에 작게 배치하였으며 왕은 면관을 씌어 위엄 있는 자태를 보여주는 것이 제왕도를 그린 염립본의 필치가 아닌가 생각한다.

cave 322의 설법도는 전형적인 수하설법도로서 중앙에 정면 불좌상을 그렸고 양편에 3명씩 보살을 배치했는데 손과 안부의 선은 극도로 細?(세수)한 선을 사용한 데 비해 옷주름은 선과 주철로 농담을 넣어 음영을 표현하려 한 것이 특징이다. 천장 벽화로 초당의 전형적인 기법을 보여주는 돈황 329굴 普賢菩薩圖(보현보살도)는 화염문과 오문이 장식적으로 화면 전체를 채우고 있으며 양편에 주철색으로 말과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을 그렸고 비천상에서 운문유수묘의 초당 형식이 뚜렷이 보이고 있다.

㉯ 盛唐期(성당기)의 벽화 : 장안, 낙양의 사관 벽화가 오도자를 중심으로 절정에 이르렀는데 그는 서역, 육조 장승요 화풍을 토대로 정확한 윤곽선에 의한 유사묘적 연면초서풍의 독특한 벽화 양식을 발전시켰다. 돈황 103굴 남벽에 「화성유품도」는 험준한 산악이 묘사되어 있고 색조는 주ㆍ백록ㆍ군청ㆍ호분 등이 밝게 칠해지며 선묘가 정확하고 산세에 준법이 보인다.

제217굴 북벽에 서방정토변도는 투시법에 의한 사원도를 배경으로 하고 주, 백록을 주색으로 사용하고 장식적 당초문으로 윤곽을 잡고 하늘엔 서운을 나타내며 노을이 진 거처럼 지평선 쪽은 주황, 상부는 백록색으로 농담 처리를하여 새로운 사실적 표현주의를 보여준다. 왕유는 복생수경도와 장안 자은사 동원에 백묘 벽화와 수경휴(瘦敬休)저택에 산수 벽화를 남겼다고 한다.

㉰ 중당기의 벽화 ; 중당의 사관석도화 작가는 수월관음 양식의 창시자로 ?麗?肥體(농려풍비체)를 완성한 주방(仲朗)이 있고 궁전작가로 장안사를 비롯해서 수많은 사관 벽화를 주방과 쌍벽을 이루는 솜씨로 제작했다는 이진이 사탑기에 전한다. 그의 제작 수법은 철선묘로써 성당기 돈황 320굴 벽화의 불상 안면보다도 더욱 세밀하게 요철 표현을 하고 肥瘦가 없고 강경한 묘선에 의한 대상 파악의 적확성을 보인 것 같다.

성당기 수법이 강하게 나타난 돈황 148굴(775년)의 보살상의 본존좌불의 원광에는 주사 윤곽으로 직곡선의 조화를 주고 배경은 극도로 단순화된 연화가 장식적으로 배치되었고 연화의 색채 표현은 상당히 현대적이라 할 수 있다. 159굴의 토번왕출행도(8~9C)는 백벽에 백록을 농담 처리하고 선묘에서도 농담법을 사용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 만당기 벽화 : 말기의 혼란으로 사원 벽화가 성하게 되었는데 특히 조공곡, 온기, 덕제 3대는 대성자사를 중심으로 한 많은 벽화들을 남겼으며 그밖에 범경, 진호, 팽견좌전, 석관휴 등 벽화의 명수였다. 돈황 9굴 牢度叉鬪聖圖(뇌도차투성도)에서는 이미 서역적 양식은 완전히 소화되고 중국 전통성이 강하게 표현되며 정측면을 자유로이 다룬 극적 인물묘사와 농담색 회화법이 완숙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56굴 장의조출행도(865년경)는 선이 두터운 안료에 묻혀 버리고 노출된 선 역시 농담이 나타나며 말의 표현이 정확한 데 비해 인물과 안면 처리는 미흡한 점이 많다. 구도에서 희밀법이 보이며 갈색이 많은 변화가 있고 백록은 서서히 화면에서 퇴화해 감을 알 수 있다.

⑥ 오대의 벽화
만당의 작가들이 많이 몰려 든 강남과 촉 지방에 벽화 제작이 성행하였고 개봉, 낙양 등지에서 사원 벽화가 제작되었으나 모두 유실되고 현존하지 못하다. 다만 당대 벽화가인 석실휴(만당,전촉)가 꿈에 본 롱미대목, 호모범상 등의 라한을 강남의 수묵묘법을 정비해서 여러 형태로 그렸다고 하며 출의(후촉) 일파는 당기 벽화 양식을 촉에 전하였다고 하며 후세 미인도의 시상인 주문구(남당)도 비수가 극심한 세경선묘법의 벽화를 제작했다고 전한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