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칼럼]청명심수 • 김백봉 • 춤의 아리랑
[이근수의 무용칼럼]청명심수 • 김백봉 • 춤의 아리랑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14.11.24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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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88세를 일컫는 말이 미수(米壽)다. 88의 글자가 쌀알들이 겹쳐져 있는 모양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김백봉(1927~)의 미수를 축하하기 위해 김백봉 춤 사모회 제자들이 헌정하는 공연무대가 <청명심수 김백봉 춤의 아리랑>(11.12~13, 국립극장 해오름)이다.

전설적인 월북무용가 최승희의 제자로서, 최승희의 시아주버니 안제승(故)의 아내로서, 안병주 안병헌 안귀호 등 무용가족의 어머니로서, 그리고 경희대학교 교수(1969~1992)로 재직하는 23년간 직접 길러낸 양성옥, 정은혜, 장유경, 이경옥, 전은자, 김경회, 장인숙, 임성옥 등 기라성 같은 제자들의 스승으로서 김백봉은 살아있는 한국무용계의 전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김백봉이 1976년 안무한 ‘심청’이 개막작품이다. 김백봉이 추었던 심청 역을 안병주(경희대)가 맡았고 손녀딸인 안귀호와 이음무용단이 군무진을 이룬다. 심청이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스펙터클한 장면과 인어와 도미의 유영 등 아름다운 바다 속 세계, 연꽃이 피어나며 심청이 다시 태어나는 모습 등은 지금도 공연마다 되풀이 되는 인상적인 장면들이다.

‘옥적의 곡’(김호은), ‘초립동’(안귀호), ‘감무 격’(안병헌)은 최승희 류의 옛 춤을 김백봉이 복원한 소품들이다. 요염한 선녀의 자태와 조선 초립동의 코믹한 연기, 무인들의 기백을 특징적으로 표현한 흥미로운 춤이었다.

‘선의 유동’은 김백봉의 창작무용(1958)을 전은자무용단(성균관대)이 재연했다. 흰 수건을 든 여인들이 하얀 치맛자락을 날리며 무대를 흘러가면서 추는 춤사위가 흰 포말을 일으키는 바다물결을 보는 것 같이 아름다운 춤이었다.

장인숙의 널마루무용단과 김경회 무용단이 합동 출연한 ‘광란의 제단’은 1959년 초연한 김백봉 류 무당춤이다. 5방색으로 치장한 무당들의 신들린 듯 격렬한 춤사위가 고요했던 무대를 순식간에 마당극처럼 현란하게 바꿔버린 춤이었다.

북춤(1963)과 화관무(1947), 부채춤(1954)은 각각 장유경(계명대), 정은혜(충남대), 안병주(경희대)의 독무로 보여졌다. 무용계에서 이미 일가를 이룬 명성에 걸맞게 신명나고(북춤) 기품 있고(화관무) 변화무쌍한(부채춤) 취봉 춤의 진수들이었다.

‘타의 예’는 1981년 일본 ‘타의 예(他의 藝)’ 축제에 초청되었던 김백봉류 장고춤이다. 전은자무용단이 장인숙, 안귀호 등과 함께 농악장단에 맞춰 추는 흥겨운 민속무용이다. 장고의 중심과 테두리가 장구채를 만나 음양의 조화를 이루며 내는 다양한 소리들이 무대를 누비는 여인들의 역동성과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언제 들어도 신명나는 장구소리다.

‘검무_섬광(閃光)’은 1954년 초연한 군무작품으로 강원대 김경회무용단이 출연했다. 앞서 안병헌이 보여준 ‘검무 격(格)’이 무사의 도에 초점을 맞춘 안무였다면 ‘섬광’은 다양한 무예의 기법을 화려한 여인군무로 차별화한 작품이다.

공연의 대미를 장식한 마지막 작품이 ‘청명심수(淸明心受)’와 아리랑이다. 1974년 국립극장에서 초연한 청명심수는 김백봉이 “마음의 노래요 영혼의 속삭임, 내 평생의 일기장”이라고 명명할 정도로 애착을 가졌던 창작품이다.

권금향, 안병헌, 김효순, 임성옥이 붉은색 치마저고리를 입고 제자로서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면서 스승 앞에서 춤을 춘다. 무형문화재 30호 여창가곡 이수자인 강권순이 부르는 아리랑 곡조가 울려 퍼진다. 1927년 평양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해방, 남북의 분단과 전란의 역사적 굴곡을 거치면서 88년을 살아온 김백봉의 인생을 굽이굽이 아리랑고개를 넘어가는 노래에 비유한 것이다.

객석 뒤쪽 중앙에 제자들과 함께 앉았던 김백봉이 관객들에게 인사하기 위해 무대에 오른다. 제자들의 부축을 받는 모습이 이제 정정하다고는 할 수 없는 노령이다. 70여년을 춤춰오면서 스스로 한국무용의 역사가 되었지만 그에게는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남아있다.

월남 후 60년 넘도록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 삶의 고개를 넘어가기 전에 반드시 고향땅을 밟으시고 <청명심수 김백봉 아리랑 평양공연>을 반드시 보실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