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옥 선생은 일찍이 국내는 물론 대만과 일본으로 유학을 통해 작품 활동은 물론 이론까지 겸비한 열정적인 작가이다.
그는 18회의 개인전과 수차례의 그룹전을 거치며 그동안 도예작가로서 명성을 차곡차곡 쌓아왔다. 특히 도예뿐만 아니라 1982년 ‘한국수필’로 등단한 중견 수필가로서 문단활동을 하며 자신의 작품에 글을 입힌 도예이야기를 풀어내며 예藝와 문文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그의 작품은 조형성이 강하다. 도자임에도 마치 조각과도 같이 느껴진다. 붓 터치를 더해 겉 질감을 살리고, 또한 철사鐵砂, 코발트, 녹유, 백유 등 각종 유약을 시유하기도 한다. 점토가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지며 공간을 이루고, 그 안에는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고자 하는 그의 자유분방함도 엿볼 수 있다.
또한 그가 추구하는 도자는 마치 추상화를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자연스러운 질감과 독특한 형태 등 매번 전시 때마다 자유로운 변주를 선보이며 그만의 예술혼을 펼쳐내고 있다. 때로는 소박한 시골 여인네의 품처럼 포근하기도 혹은 도회적인 세련미를 물씬 풍겨내 작가의 내면의 폭과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수필가로서도 꾸준히 수필집을 출간하며 활발히 활동 중인 그는 시, 소설 등 타 문학 장르에 비해 대중성 및 전문성이 뒤쳐진 수필의 오늘날 상황을 지적하며, 보다 전문적인 내용의 에세이가 대중들에게 친숙히 보급될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덧붙였다.
지난 16일까지 이브갤러리에서 초대전을 가진 그를 만났다. 그에 대한 첫인상은 처음 그의 작품을 접했던 그 감상과도 꼭 같았다. 품위 있고 정갈하면서도 올곧은 그만의 아우라가 느껴졌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
-개인전 <울림과 색깔의 합주>가 지난 16일까지 열렸다. 이번 전시의 의의에 대해서 말씀해 달라.
“올해 고희를 맞아 1986년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작품을 한데 모아 전시했다. 이때까지의 작품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고 내 작품세계를 총망라한 전시라고 할 수 있겠다.”
-현대적 감각과 전통 동양도예가 어우러져 있는 세련된 형태의 작품을 추구한다. 그 과정이 궁금하다.
“일본에서 조형학교를 입학해서 처음에는 조각을 배운 뒤에 도조를 했다. 그 후 대만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하면서 동양화기법이라든지 붓 터치 등을 배웠다. 여기저기서 이것저것 배운 게 복합적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웃음) 특히 분청을 농도로 표현하고 붓 터치로 조형성을 더하기 때문에 현대적인 느낌이 강하다.”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는데, 어떻게 도예를 시작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당시 친오빠가 미국에서 유학 중이라 부모님께서 나도 미국으로 건너가 학문계통으로 나가길 바라셨다. 그때 이대에는 도예과도 없었고, 부모님 뜻에 따라 교육과를 가게 된 거였는데, 막상 졸업 후엔 금속공예를 하시는 아버지의 권유로 일본으로 금속공예 유학을 갔다. 하지만 그 딱딱하고 차가운 물성이 나와는 맞지 않아 도예를 시작하게 됐다.”
-공예에 대한 섬세함과 불의 온도에 대한 감각 등 선친의 영향을 많이 받으셨을 것 같은데.
“금속을 공부했던 터라 그 기초가 있어서 그런지 흙을 만지는 것도 그리 다르지 않더라. 그래서 쉽게 공부할 수 있었다. 또 도자기는 불꽃이 굉장히 중요하지 않나. 불의 온도를 불꽃의 생김새로 구별할 수 있는데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도 불에 대해 잘 알고 계셨다. 그래서 내가 도자기를 구울 때면 가마를 봐주시곤 했다.”
-불도 중요하지만 도자에서 흙이 가장 주된 재료이지 않나. 어떤 흙을 사용하는지 궁금하다.
“주로 산청토와 문경토를 쓰고 있다. 본래 자황은 1100도 이상 넘어가면 찌그러져버리는 성질이 있다. 그래서 온도조절에도 민감하고 아무래도 약하기 때문에 크기에도 한계가 있다. 아버지는 흙에도 아주 능하셨는데, 나를 위해 당신만의 재료를 첨가해주셔서 자황을 강화해주셨다. 산청토를 일정 비율 첨가해 그 배합을 잘 맞춰주신 거다. 생전 만들어주신 그 흙을 계속 놔뒀다가 지금껏 사용하고 있다.”
-<세월을 이은 듯> <저마다 사연이 있듯이> 등 흑색 작품이 인상적이다.
“문경토로 해야 저런 색이 나온다. 산청토는 저 정도의 까만 농도가 나오지 않고 좀 더 연하다. 문경토에 철사를 갖고 새카만 농도를 조절하는 거다. 또한 전기가마에서도 저런 색이 나오지 않으며 석유가마에서 구워야지만 된다.”
-도자는 만들어진 자체로만이 아닌 불이라는 매개를 통해 완성된다. 그런 과정을 거치기에 작품이 원래 의도와 다르게 실패나 성공이 좌우되기도 한다.
'불꽃은 정말 신비롭다. 10개 굽는다고 하면 마음에 드는 건 1개나 겨우 나오곤 한다. 2차로 구우면 반 개정도 나오고, 만약 4번 이상 구우면 다 부서져버린다. 이러다보니 작품 많이 한다고 해도 막상 거둬들이는 건 별로 없다.(웃음) 처 작업은 흙을 발로 밟아 기포를 없애는 과정인데, 여자로서 그게 참 힘들다. 아무래도 한계가 있어서 토련기라는 기계를 사용하고 있다. 흙을 넣으면 공기를 빼주고 압축을 시켜주는 기계다. 거기에 집어넣으면 납작한 판 모양으로 나와 그걸 잘라서 작품을 만드는 거다.”
-도예가들이 가마를 떼기 전 의식을 치른다는 말을 들었다. 본인도 그러한지?
“일본의 한국계 도예가인 심수관 선생과 우리와 같은 집안이다. 청송 심씨氏인데, 그 원류를 더 올라가보면 시조할아버지께서 고려시대 때 전승하셨다. 아버지는 종손이셨고 청송에는 시조할아버지의 자취가 관광지로 자리 잡아 있다. 그래서 지금도 도자기를 구울 때마다 청송에 가서 예를 지내고 온다. 작업실에서 불꽃에 대한 참배도 따로 하고 있다. 그러면 확실히 더 좋은 빛깔이 나온다고 느껴지더라.”
-한때 도자작품이 각광받았던 때가 있었지만 현재 국내 시장은 위축된 상황이다. 도예과도 사라지고 도예작가들도 그리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안타깝다. 일본은 전통은 전통대로, 현대는 현대대로 계속 전승되며 내려오며 유지되고 있는데… 상업도자기만 봐도 요즘에는 모던하고 현대적인 수입품이 대세더라. 외국 물건에 대한 선망과 선호도 여파가 있을 거다. 또한 도자작품은 아무래도 관리가 어렵고 보관상의 어려움이 있다. 힘들고 번거로운 걸 싫어하는 요즘 사람들에게 도자작품은 점점 관심 밖이 돼 가는 것 같다. 생활패턴이 바뀌면서 선호하는 예술작품도 바뀌는 거라 생각한다.”
-작가활동 중 수필가로 등단해 지금까지도 수필문학가로 활약하고 있다.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처음에 도자기 할 때 너무 힘들었다.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았고 당시엔 내 작품이 이상하다며 인정해주지 않던 때였다. 나 나름대로 공부도 많이 하고, 죽기 살기로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 심적으로 분란했다. 그러던 중 조경희 한국수필가협회장님을 우연히 알게 됐는데, 그분께서 내게 수필을 써보길 권하셨다. 특히 국내에서 수필의 입지는 미미했고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쓰는 수필이 흔치 않던 때라 나보고 도예에세이를 써보라고 하신 거다. 그래서 내 작업과정을 글로 그대로 옮기기 시작했다. 이게 내 작업을 기록으로 남길 수도 있고, 글로 쓰면서 동시에 영감을 받기도 하고, 또 내 작품을 알릴 수도 있으니 너무 좋더라. 도예와 수필은 내게는 뗄 수 없는 하나의 작업과도 같다. 지금까지 9권의 수필집을 출간했다.”
-지금까지 18번의 개인전을 가졌다.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가 있다면?
“1981년 대만에서 박사학위 받을 때 가졌던 전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대만 판화가화랑에서 50점 가량 전시했었다. 그 전시로 학위도 받았다. 그리고 귀국 후 대학로 샘터화랑에서 초대전을 가졌는데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는 전통도예밖에 모르던 때라 내 전시보고 이상한 도자전이라며 눈길을 끌었다. 반향을 일으키며 작품이 모두 판매돼 버려서 당시 작품 중 남아있는 게 별로 없을 정도다.”
-앞으로의 전시계획은?
“77세가 되는 해 개인전을 계획하고 있다. 앞으로 7년간은 작품 준비와 구상에 매진하려고 한다. 전시를 자주자주 할 수가 없다. 작품에 변화를 주고 고민하려면 그만큼 시간이 필요하다.”
-도예작가로서, 그리고 수필가로서의 꿈은 무엇인가?
“내가 수필을 시작했을 때보다도 오늘날 수필이 많이 보급이 되긴 하지만 지금껏 수필이 너무 제한적이고 평가절하 됐던 것 같다. 전문적인 내용의 에세이라는 게 대중에게 더 익숙하게 다가가고 보급될 수 있도록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래서 이번 한국문인협회 수필가 부이사장 선거에 출마하려고 한다. 시, 소설 등에 밀리고 있는 수필의 현 상황을 타개하고 에세이의 질적 향상을 위해 힘쓰고 싶다. 그리고 수필을 비롯해 도자 역시 내가 살아있는 순간까지 끝까지 함께 갈 것들이다. 마음 한 편으로는 미술관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있긴 한데, 아직 구체적으로 구상한 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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