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연극 「노란봉투」파업노동자의 고통받는 현실 담아내
[공연리뷰]연극 「노란봉투」파업노동자의 고통받는 현실 담아내
  • 고무정 기자
  • 승인 2014.11.30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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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공연마다 전국 투쟁사업장 노동자들 방문,관객들과 소통 진행

갓난아기가 종달새처럼 달콤한 목소리가 아닌, 사람들의 신경을 거스르며 울도록 진화한 것은 생존률을 높이기 위한 이유이다. 그 울음이 듣는 이에게 청각적 불편을 주지 못한다면, 듣는 이는 그 울음을 멈추고자 아기의 욕구를 해소하려 들 가능성이 현저히 낮았을 것이고, 아기가 생존할 확률 역시 훨씬 낮았을 것이다.

이는 기업과 같은 집단 역시 마찬가지다. 기업 내부의 개개인이 불합리함을 겪고 있고, 그것이 개인적 노력으로 해소될 수 없다면, 그들은 기업의 업무를 방해하면서라도 불편을 알려야 한다.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한밤중에 울어 사람들의 잠을 방해하는 갓난아기처럼 말이다.

이러한 기업의 업무를 방해할 권리는 국가에서 헌법으로 규정되어 있다. 이를 파업권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합법적으로 보장된 권리를 국가가 ‘기업의 업무를 방해했다’ 며 제한한다면? 기업에 미친 손실만큼, 개개인에게 보상하라는 판결을 내린다면?

연극 「노란봉투」는 이러한 불합리함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전개된다. 민주화 운동과 노동투쟁, 파업과 노동절 등, 온갖 종류의 포스터가 붙은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손해배상 및 가압류’ 처분을 받은 노동자들은 울고, 웃고, 기타도 치고 싸움박질도 한다.

또한 극중 배경은 안산으로, 인물들은 세월호에 관한 문제를 함께 겪어나감으로써 작품의 대한 의미를 풍부하게 담아낸다.

▲연극 「노란봉투」

극이 진행되는 내내 등장하는 노조원들은 손해배상 가압류와 징계 해고 등, 무거운 싸움을 지속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밝고 경쾌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강호’ 라는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어김없이 그 명랑함이 일종의 페르소나에 불과했음이 드러난다. 강호는 한때 노조원이었으나 결국 회사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복직한 인물이다. 파업 중, 회사가 용역을 투입할 때 용역과 함께 노조를 향해 쇠파이프를 들었던 그는 죄책감에 못 이겨 매번 노조 사무실로 찾아오지만, 그때마다 명랑하고 밝던 사무실은 일순간에 험악하게 변한다.

사무실의 노조원들은 강호가 등장할 때마다 욕설은 물론 물건을 집어던지는 등 폭력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는 수평폭력(水平暴力, 특정한 계급이 위로부터 오는 압력과 공격을 받으면서 공격하는 주체에게로 원망을 돌리지 않고 동등한 입장에 있는 동료들을 향해 증오를 표출하는 현상) 의 전형적인 모습을 나타낸다.
그러나 극을 관람하는 관객들은 노조원들이 분노의 대상을 상정해야만 하고, 거기에 화를 내는 그들의 심정을 헤아리게 된다. 이는 극의 뛰어난 연출뿐만 아니라 소극장에서 열연하는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난 이유에서도 비롯한다.

극은 강호에게 분노하는 노조원들의 행동으로써 그들의 답답하고 어찌할 수 없는 심정과 상황을 현실감 있게 잘 나타내고 있다. 파업에 대한 대가로 5억씩, 7억씩 손해배상 가압류 판정을 받는 현실 속에서 웃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 기타를 치고 노래를 하며 웃는 노조원들의 모습은 가히 극적이다.

▲연극 「노란봉투」제작을 위한 세미나(강사 조국 교수)

“우리 은서 속에 그런 폭력성이 있는지 나는 몰랐네. 정말”

극 중 인물인 영희에겐 은서라는 이름의 딸이 있다. 은서는 사회성에 문제가 있는 아이로, 벌써 4번이나 학교를 옮겼지만 아직도 변변한 친구가 하나 없다. 어느 날인가, “친구야, 같이 놀자” 며 먼저 건넨 은서의 말에 상대는 ‘꺼져 병신새끼야’ 고 답한다. 그러자 ‘은서가 상대에게 올라 타 사정없이 때렸다’ 며, 영희는 사무실에서 한탄하듯 소식을 전한다. 은서에게 그런 폭력성이 있는지 정말 몰랐다고.

그런데 이러한 은서에 대한 이야기는 꼭 한국 사회의 노동조합에 대한 이야기 같지 않은가. 그동안 한국 사회에 만연했던 ‘파업은 불법이다’ 는 인식 하에, 노조는 시민들에게 소외되고 터부시되어 왔다. 그저 붉은 머리띠를 쓰고 민중가요를 부르며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폭력적이고 거친 모습의 노조는 시민들에게 불편한 모습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에 ‘노동자들이 파업 이후에도 오랫동안 고통 받고 있는 현실을 널리 알리고자’ 한다며 ‘시민 여러분이 손잡아 달라’ 며 이 극본을 쓴 이양구 극단해인 대표의 말을 고려하면 이러한 해석은 설득력을 얻는 듯하다. 그는 덧붙여 ‘시민과 노동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곧 시민’ 이라며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시각으로 볼 때 극중 ‘니 잘못이 아니야’ 라고 말해달라는 영희와, ‘말 같은 거 없어도 사람은 서로 친구가 될 수 있어’ 라며 영희를 달래는 노조원들의 말은 결국 자신들에게 건네는 위로로 해석된다.

극 「노란봉투」는 매 공연마다 전국 투쟁사업장의 노동자들이 방문해 관객들과 소통을 진행한다. 지난 25일 첫 공연에서는 학습지 노조의 재능교육 지부 유명자 조합원이 방문해 한국 사회에서의 노조의 현실을 토로했다. 2007년 12월 21일부터 지금까지 노조활동을 벌이고 있는 그녀는 극 「노란봉투」가 ‘노조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잘 남아내고 있다’ 며 눈물지었다. 또한 그녀는 ‘비정규직이 천만 명에 육박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며 ‘노동, 파업이 남의 일로 치부되거나 천박한 문제로 경시되어서는 안 된다.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 이라고 덧붙였다.

극 「노란봉투」는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가 제안해 막이 오른 극이기도 하다.

내달 14일까지 혜화동 1번지 연극실험실.

문의: 02-922-0826 전석 1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