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칼럼] 강동아트센터 김성한의 춤 ‘인간 단테-구원의 기획자’
[이근수의 무용칼럼] 강동아트센터 김성한의 춤 ‘인간 단테-구원의 기획자’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14.12.29 10: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Nature(자연)는 인간의 손길이 닿기 전의 태생적 모습이다. 자연에 노동이 가해지면  Culture(문화)가 시작되고 미적 감각이 문화와 결합할 때 Art(예술)가 탄생한다. 태어난 대로의 사람이 Nature(자연)라면 춤추는 자아를 발견했을 때 몸은 예술가며 무용가로 변신한다.

김성한은 이를 세컨드 네이쳐(Second Nature)라고 명명한다. 8년의 프랑스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후 안애순 무용단에서 잠시 활동하던 그는 2005년 ‘세컨드네이처 댄스컴퍼니’를 창립한다. ‘인간 단테-구원의 기획자’(12.5~6, 강동아트센터 대극장 한강)는 올해 강동아트센터(이창기) 상주단체로 선정된 무용단이 최초로 선보인 신작이다. 

작품은 모티브를 단테의 신곡((La Divina Commedia)에서 가져왔다. 구토(2010), 보이체크(2012), 이방인(2013) 등 앞 작품들에서 보여준 대로 문학작품은 김성한에게 가장 친숙한 소재다. 이 작품에서는 신곡의 줄거리를 따라가며 묘사하지 않는다. 대신에 그는 신곡 작가인 단테의 시각에 초점을 맞춘다. 지옥과 연옥, 천국을 묘사한 단테가 지금 살아있다면 현세를 어떻게 그려낼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는 물론이고 각자의 마음속에도 지옥과 연옥, 천국이 존재한다. 연옥이 있기에 천국의 기회와 함께 지옥의 위험이 공존한다는 작품의 주제는 창의적이다. 고전의 줄거리를 복원하지 않고 단테의 눈을 빌려 현실을 진단하고 현대인의 내면을 관찰하고자 한 발상도 신선하다. 이러한 연출자의 의도가 관객들에게는 어떻게 전달될 수 있을까.

불길이 넘실대는 벽을 타고 오르려는 사람들의 갈망을 보여주는 데서 공연이 시작된다. 첨예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일 것이다. 무대 위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어딘가 기형이고 불완전한 군상들이다. 술 취한 듯 흐느적거리는 동작들에서는 이 시대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절망도 읽혀진다.

무대 한가운데서 마주 선 두 남자(흑의와 백의)는 지옥과 천국 혹은 명과 암을 상징하는 듯하다. 대칭적으로 움직이는 두 사람의 주변을 무용수들이 둘러싼다. 팔다리를 크게 돌리는 남녀무용수들의 굵은 춤사위가 섬세하기보다는 거칠다.

모두가 공개오디션을 통해 이 작품을 위해 새로 선발된 단원들이다. 무대 뒤에 사다리가 있다. 천국으로 통하는 문이기도 하고 지옥으로 떨어지는 경계이기도 할 것이다. 공중에 매달려 회전하는 등불은 사람들이 바라보는 희망이다. 잡아보려 애쓰지만 쉽지만은 않다.

박제된 사람들의 형상이 마네킹처럼 단상에 도열해 있다. 한가운데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의 눈이 떠지고 팔다리가 조금씩 움직이는가 하더니 좌우에 도열한 마네킹들도 뒤따라 살아나기 시작한다. 개성을 상실한 채 기계의 부품처럼 변해가는 현대인에 대한 우울한 풍자이며, 상실된 인간성의 회복이야말로 천국의 계단이라는 작가의 메시지일 것이다.

텍스트가 비교적 선명한데 비해 무대를 통한 전달력은 빈약하다. 시종일관 계속되는 어두운 조명과 단조롭게 반복되는 타악 위주의 음향효과는 답답한 느낌이다. 변화가 없기로는 의상도 마찬가지다. 무용공연의 3요소가 무용가와 무대와 관객이라면 춤에서 성공했으면서도 음악, 의상, 조명, 영상 등 시청각 요소들의 도움을 받지 못함으로써 관객의 공감을 상실한 점은 아쉽다. 

예술성과 대중성의 적절한 조화는 현대예술이 짊어진 불가피한 숙제다. 세컨드네이처댄스컴퍼니가 독립무용단으로서 활동할 때의 작품 성격과 강동아트센터 상주단체로서 선정된 후의 기능이 동일할 수는 없다. 구청에 소속되어 재정적 지원을 받는 단체는 주민들의 예술적 욕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현학적 주제에 기초한 재미없는 작품보다 주요 관객층의 눈높이를 의식한 관객친화적인 공연이 필요하지 않을까. 지역공연장으로서는 드물게 무용분야를 특성화하고 있는 강동아트센터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는 크다. 이를 충족시켜나갈 수 있는 길이 찾아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