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섭의 비평프리즘]단색화 유감(有感)
[윤진섭의 비평프리즘]단색화 유감(有感)
  • 윤진섭 미술평론가/시드니대학교 미술대학 명예교수
  • 승인 2014.12.29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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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진섭/미술평론가/시드니대학교 미술대학 명예교수
단색화가 있다. 최근 언론을 통해 잘 알려진 것처럼, 70년대 한국 모더니즘의 전성기를 구가한 특정의 회화 경향을 지칭하는 용어다. 그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군부통치의 엄혹한 분위기에서 태어났다. 거리에는 온통 매캐한 최루탄 냄새가 진동을 하고, 경찰에 쫒기는 학생들이 불안에 가득 찬 눈길로 피신처를 찾던 시절이었다.

시인 김지하가 ‘오적(五賊)’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는가 하면, 청계천의 피복노동자 전태일이 분신으로 짧은 생을 마감한, 춥고 어두운 시절이었다. 그런 살벌한 분위기속에서도 노래가 있었고 낭만이 있었다. 젊은이들은 포장마차의 희미한 카바이트 불빛 아래서 소주를 들이키며 가슴속의 울분을 토해냈다. 그럴 때면 한 잔 술에 거나하게 취한 누군가가 송창식의 ‘고래사냥’을 목청껏 부르곤 했다. 그것은 거의 울부짖음에 가까운 몸짓이었다.

세월이 지나면 사람은 망각 속에서 살기 마련이다. 그 망각이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요즈음 단색화의 원로라는 분들의 행태가 그렇다. 언론에 대고 공공연히 ‘단색화는 70년대 군사정권에 대한 저항의 몸짓’이었다는 요지의 발언을 한다. 단색화가 ‘침묵의 언어’이니 한편으로 생각하면 전혀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다.

이우환의 말대로 표현을 할 수 없었던 시대에 최소한의 언어로 저항을 했다고 할 수도 있다. 단색화의 요체가 바로 극심한 자기 행위의 반복적 부정에 있지 않는가. 이우환의 글에 보면 그 이유는 명확치 않지만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요원들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는 대목이 나온다.

나는 언론이 주도하고 있는 최근의 단색화 열풍을 보며 깊은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크게 봐서 국내외 옥션의 거래 실적과 일부 화랑들의 단색화 기획전과 관련돼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본질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문제는 이렇다. 재작년, 내가 초빙 큐레이터의 자격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국의 단색화’전을 기획할 당시만 하더라도 단색화(나에 관한 한, 단색화(Dansaekhwa)의 기원은 2000년도의 광주비엔날레 특별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희박했다. 그런데 이 전시를 계기로 ‘Dansaekhwa'란 용어가 국내외 미술관계자들의 인구에 급속히 회자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작년부터 국제화랑을 비롯한 몇몇 정상급 화랑들이 가세하면서 마침내 해외의 유명화랑들마저 같은 명칭의 기획전을 여는 사태에 이르렀다. 그거야 반가운 일이지만, 문제는 사태가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흘러간다는 데 있다.

비평이나 미술사와 같은 학술적 접근보다는, 작품의 가치를 오로지 돈으로 환산하는 상업적 행위는 단색화를 세계미술사 속에 편입시키려 했던 애초의 목표를 좌초시킬 위험이 있다. 일부 성급한 언론은 벌써부터 내년의 단색화 시장 총액이 천 억에서 삼천 억 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성급한 애널리스트의 발언을 인용하며 단색화 바람을 부추기고 있다.

그러나 정작 언론에 회자되는 단색화 작가들은 박서보, 윤형근, 이우환, 정상화, 정창섭, 하종현 등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는 국립현대미술관 주최 ‘한국의 단색화’전 초대작가 31명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숫자이다. 단색화 작가들이 어디 이들 뿐인가? 화랑들은 작가 발굴의 기능은 제대로 하지 않고 속된 말로 잘 익은 감만 따먹고 있는 형국이다. 그것도 판매의 대상이 70-80년대의 작품에만 국한되고 있다.

이쯤에서 뭔가 제동이 걸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서구의 한 정상급 미술관의 책임자가 단색화전을 열고 싶다는 의견을 표명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이런 식으로 나가다가는 과연 그런 날이 올지 적잖이 우려스럽다.

물론, 단색화의 작품이 화랑을 통해 해외의 미술관이나 컬렉션에 소장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렇게 저변을 확대하여 해외의 많은 미술애호가들이 화랑이나 미술관에 걸린 한국의 단색화 작품을 감상한다면 그것은 분명 국내 화랑들의 공로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모처럼 맞은 단색화 열풍을 계기로 형성된 거품이라면, 우리는 이제 그 거품이 꺼졌을 때 닥칠 후폭풍을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목하 인구에 회자되는 단색화 인기작가들은 이제 좀 더 차분히 자신의 작품세계를 돌아보고 미래에 대해 성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단색화로 축적한 부를 사회에 환원할 줄 아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지혜도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서구의 미니멀리즘 작가들이 70년대 이후 작업의 방향을 전향적으로 바꾼 것은 자신들이 추구하던 예술의 개념이 시효가 다 됐다는 냉철한 미술사적 자기 성찰에서 비롯됐다. 로버트 모리스가 대지로 나간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이다.

이와는 달리 대부분의 70년대 한국의 단색화 작가들은 40년 간 오로지 단색화 한 우물만 팠다. 수신이니 인격수양이니 뜬 구름 잡는 이야기나 하면서 현실과는 동떨어진 내면의 세계로 침잠해 들어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떤 작가는 단색화 특유의 자기 부정이 없어지면서 매끈하게 다듬어진 공예품 같은 작품을 양산하고 있다.

또 다른 어떤 작가는 과거의 단색화 작품을 청산한다고 공언하고는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같은 경향의 작품을 제작, 전시하고 있다. 과연 새롭게 시도하고 있는 작업이 어떤 모습을 띠고 나타날지 지켜볼 참이다. 공언(公言)이 공언(空言)이 되지 않길 간절히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