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석의 박물관 칼럼]박물관의 사이
[윤태석의 박물관 칼럼]박물관의 사이
  • 윤태석 뮤지엄 칼럼니스트 / 문화학 박사
  • 승인 2015.01.09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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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윤태석/뮤지엄칼럼니스트/문화학 박사/한국박물관학회 이사/한국박물관교육학회 이사
박물관의 연말연시가 호저의 모순 속에 숨어 있는 사이를 생각하게 한다. 우선 희망의 신년 초, 호저의 지혜를 우리 모두가 꼭 생각해 봤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를 잘 서술하고 있는 내용을 그대로 싣고자한다. 

호저(豪猪)는 고슴도치처럼 온몸에 날카로운 바늘이 돋친 짐승입니다. 그런데 어느 추운 겨울날 산속에서 이 호저 두 마리가 만났습니다. 호저들은 몸을 덥히려고 서로에게 다가갔습니다. 하지만 가까이 가 몸을 붙이자 날카로운 바늘이 서로를 찔렀습니다. 

“아이, 따가워!” 놀란 호저는 얼른 몸을 피하고 도망쳤지요.
그러나 이번에는 매서울 추위로 몸을 떨었습니다.
“아이, 추워!” 다시 호저는 추위를 피해 서로에게 다가갔습니다.
“아이, 따가워!”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가시에 찔려 피가 납니다.
떨어지면 춥고 다가가면 찔리고 “아이, 추워!” “아이, 따가워!”를 되풀이하다가
호저는 이윽고 너무 떨어져 춥지도 않고 너무 가까워 찔리지도 않는
이상적인 거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철학자 쇼펜하우어(Schopenhauer)는 우리에게 말했지요.
“사람과 사람 사이, 그것은 호저들의 안타까운 모순 속에 숨어 있다.”고

자아의식과 집단의식, 인간의 삶은 추위 속의 호저와 같습니다.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지요. “얘야, 사이좋게 놀아라.”
그러나 우리는 ‘사이’라는 말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지금까지 자랐습니다.
현명한 호저는 찔리지도 춥지도 않은 사이를 찾아냅니다.
어머니가 말씀하신 것처럼 사이좋게 살기 위해서….
한자의 ‘集(집)’자는 새가 나무(木) 위에 모여 있는 모양을 딴 것이라고 합니다.
나무 위에, 전신줄 위에 모여 앉아 있는 새들의 모습을 보세요.
5선지 위의 음표처럼 일정한 사이를 두고 떨어져 있지요.
새들은 혼자 날아갈 때를 위하여 함께 모일 때에도 날개를 펼 만큼의 거리를 둡니다.
- 이어령의 〈길을 묻다〉 중에서 (시공미디어)

사이와 사이 사이

세월호 참사로 ‘갑’과 ‘을’의 뿌리 깊은 관계가 표면화되며, 갑의 부당한 행태를 꼬집는 ‘갑질’이 일반명사화 된 듯 편하게 들리고 있다. 호저의 모순 속에 숨어 있는 사이를 생각하게 한다. 박물관은 참 답답한 연말연시를 맞고 있다.

사립과 대학박물관·미술관은 전년도 사업 결산과 정산, 승인과 평가, 금년도 사업공고와 신청, 심사와 결과확정 등 바쁜 움직임을 통해 사이와 사이 간보기에 여념이 없다. 이렇듯 이해관계가 있는 한 갑과 을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들이 어떤 사이와 사이를 유지하며 그 안에서 해답과 지혜를 찾아 목표성과를 달성해 갈지 지켜볼 대목이다.

또한, 지난해 10월 우리나라 박물관·미술관의 대표 민간기구인 한국박물관협회의 수장이 새로 선출되었다. 같은 달 일주일 간격을 두고 사립박물관협회의 집행부도 교체를 앞두고 새로 선임되었다. 각각 두 단체의 이해당사자들은 금년 1월 출범을 앞두고 바쁜 연말을 보냈다. 

특히, 사립박물관협회는 회장당선자가 선거 시 제출한 경력사항에 문제가 있다는 제보가 있어 이사회가 사실관계를 파악하는데 주력했으나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가 어려운 양상이다. 급기야는 전 집행부와 차기 집행부간 갈등으로 번지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진실의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점입가경으로 치닫는 모양이 낯 뜨겁고 볼썽사납다. 주지하다시피 박물관 운영자는 문화먹이사슬의 최 정점에 있는 넓고 높은 안목의 소유자이다. 

이에 더해 개인의 헌신으로 인류문화유산을 수집, 보존, 관리하여 비영리 항구적인 운영을 목적으로 박물관을 설립했다는 사실은 사회적으로도 존경받아 마땅하다. 하물며, 이들 박물관인들이 모여 결성한 기구의 수장과 임원들은 한 차원 높은 신망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사실관계의 규명 못지않게 그 과정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외에도 박물관과 미술관, 관련 민간기구간에도 대동소이한 갈등의 양태는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갈등은 사이의 지혜가 엇나간 현상의 누적에서 기인함은 물론이다.

부디 하늘로 날아갈 때를 위하여 날개를 펼 만큼의 거리를 두는 새들의 지혜를 상기했으면 한다. 최소한의 사이를 유지해 결코, 서로 낭패 보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박물관에는 많은 사이가 존재한다. 유물과 유물, 유물과 관람객, 관람객과 관람객, 진열대와 관람객, 학예사와 관장, 전시장과 교육시설, 영리와 비영리, 관장과 관장 등이 그것이다. 요소요소에 적절한 사이를 잘 적용할 때 박물관의 고유기능과 건전한 활동, 발전적인 소통은 담보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호저는 포유류로 산미치광이과(old world porcupine: Hystricidae)에 속한다. 이러한 산미치광이인 호저에게도 이상적인 거리가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들이 소통할 때는 바늘이 없는 머리 부분을 맞댄다는 사실이다. 최근 우리사회의 크고 작은 현상을 보면 매우 극단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다. 반인륜을 넘어선 패륜, 부도덕의 만연에 기인한 일상화된 불법, 을에 대한 갑의 횡포 등이 그 예일 것이다. 

산미치광이보다도 못한 인간들의 세태가 참 부끄럽다. 도처의 사회가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박물관만은 사이를 잘 유지하고 지혜로운 배려를 할 줄 알아야한다. 미래의 박물관은 과거의 그것에 비해 플랫폼(platform) 기능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관람 및 체험자들에게 문호를 적극 개방하여 그들과 함께 박물관을 만들어가야 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이의 문제도 돌발적으로 나타날 개연성이 높아졌다. 

온순하고 다정한 양처럼 박물관에서 사이좋은 한해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