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주 큐레이터 토크 44
이은주 큐레이터 토크 44
  • 이은주 갤러리 정미소 디렉터
  • 승인 2015.01.28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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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퍼포먼스 프로젝트 2. 하태범과 정보경의 <사인(Sign)>

   
▲ 이은주 갤러리 정미소 디렉터
지난 2013년 9월 5일부터 10월 22일까지 진행된 <퍼포믹스(Performix)1,2,3>은 시각예술가와 안무가와의 만남을 결과물로 엮어 내는 전시, 공연 형태의 프로젝트였다.

전시공연 형태의 예술, 퍼포믹스(Perfomix)는 Performance와 Exhibition에서 Perform+Ex를 딴 용어이다. 퍼포먼스(공연)와 전시가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용어로서 퍼포익스(Perform+Ex)에서 두 개의 장르가 순간 믹스된다는 사실의 중요성을 살려 퍼포믹스가 되었다.

본 프로젝트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시와 공연이라는 장르의 단독적인 색을 유지하면서 퍼포먼스(공연)가 일어나는 순간의 현상을 나타낸 것이다. 공연이 시작 되기 전 마치 극장의 무대미술처럼 이미 세팅되어 있는 전시와 그 전시장에서도 자유로운 동작을 작동시킬 공연이 하나가 될 타이밍은 바로 ‘공연이 일어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공연이 진행 될 때 시각예술 파트가 온전히 무대역할 만으로 부각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 형식의 특징이다. 퍼포믹스가 일어나는 공연이 막을 내리면서 무용가들이 객석 없는 무대-(전시장에서 일어난 해프닝이기 때문에, 하지만 객석이 있는 무대에서는 또 다른 감각이 선사될 것이다)-에서 사라지는 순간, 전시장은 오롯이 시각예술가의 개인전 형식의 장으로 탈바꿈 된다.

퍼포머(무용가)가 전시장에 입장하는 순간 퍼포믹스(전시+공연)가 완성되며, 그 이전에는 여느 개인전을 개최하는 전시장과 다를 바 없다. 즉 서로 다른 감각을 발전시켜온 미술과 무용의 사고와 의식을 융합시키되, 서로 기대서 가려지기 보다는 하나의 특성 자체가 온전히 완성되어 서로 충돌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 마치 각자의 색깔을 유지하되 하나의 톤과 흐름을 관객에게 선사시켰던 영화 <마지막 4중주>처럼 말이다.

<퍼포믹스(전시+공연) 2>는 시각예술가 하태범과 무용가 정보경의 협업으로 구성되었다. 하태범 작가의 중요한 작업 모토는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각종 자연재해, 전쟁으로 인한 인명 피해 등 인간을 둘러싼 사건사고의 보도내역 사진을 출발삼아 조각의 형태로 보도사진 속 공간을 재현하되, 모두 흰색으로 탈색시킨다.

▲ 하태범과 정보경의 SIGN_퍼포믹스

즉 인간을 둘러싼 사건을 다루되 마지막까지 관조적인 시각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모형을 제작하고 최종 결과물인 사진과 설치 작업을 마무리 한다. 때때로 설치물로 파생되는 여러 오브제로 영상을 제작하기도 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정보경은 하태범 작가와 같이 인간을 둘러싼 포괄적이면서 지극히 외연적인 사고의 심리와는 전혀 다르게 무용가 스스로의 내면세계에서 시작되는 갈증을 고민했다. 관조적인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보며 작업에 임했던 하태범 작가에게 무용가의 사고방식이 최초에는 낯설었다. 정보경 무용가의 입장에서도 자신의 무대가 어떠한 방향으로 시각화 될지 상상하지 못하는 과정을 겪기도 했다.

우선 특정 사건을 두고 외연과 내연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두 예술가의 개인적 성향 차이를 알아가는 것이 합(合)을 만드는 출발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내면을 시각화시키는 미술계와 그와는 반대로 그것을 무대에서 몸짓으로 남기되 그 행위가 허공에 떠 있다 사라지는 무용가의 표출방식의 감각이 서로 달랐다.

▲ 하태범의 영상설치

눈에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무용의 몸짓에서 혹은 사진이나 영화의 디지털 재현과 같이 전혀 몸을 움직일 때마다 다르게 움직이는 몸동작에서 어떻게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 관객을 만나야 할까? 이 두 장르와 두 개인의 충돌은 그 지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서로 다른 기호를 가지고 하나의 체계를 만들기는 쉽지 않지만 두 예술가는 분명 그 인식체계가 얽히는 과정에서 하나씩 풀어내기 위한 노력에 몰두했다.

우선 하태범 작가는 정보경의 몸짓과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획득된 내면의 심리상태의 표현 몸짓과 동작을 영상으로 꼼꼼히 담아냈다. 두 장르의 형식의 차이를 느낀 순간, 그 탈피는 시작되었으며, 서로 다르지만 그 다른 사고를 인정하되 자신 각자의 영역에서 버리지 말아야 하는 기본 명제가 더욱 완고하게 되었다.

하태범 작가는 무용가 즉, 정보경이라는 인물을 대상화하여 카메라에 담아내기 시작했으며, 무용가 정보경은 자신이 풀어낸 몸짓과 언어를 시각화해 가는 과정을 함께 했으며, 이 과정을 통해 또 다른 동작과 내면의 스토리를 생산했다.

▲ 하태범의 종이 설치

무용은 이미 동작이 실현 된 이후에 관객의 피드백을 살펴볼 수 있지만, 정보경은 자신이 무대에 오르기도 전에 스스로의 모습을 객관화 시킬 수 있는 틀을 획득하게 되었다. 한 발 더 나아가 이러한 과정에서 파생된 설치 작업들이 고스란히 그의 무대가 되었다.

미술가의 흰색 종이는 전시장을 모두 감쌌으며, 그 곳에서는 미리 촬영한 정보경의 여러 화면의 영상이 상영되었다. 새벽거리를 재현한 하태범의 작업은 흰색의 설치작업이 본인의 본질적 사유라면 그 위에 영상으로 촬영하여 투사한 이미지들은 모두 무용가 정보경의 내면을 담아낸 영상일 수도 있겠다.

이렇듯 사전에 공유된 일차적 결과물을 통해 이미 공연장의 무대가 설치된 경험을 보여주었으며, 이제 그 예술작품 속(하태범 작)에 사운드가 흐르고 무용가가 등장한다면 하나의 퍼포믹스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미술가가 재현한 새벽거리의 설치 작업은 무용가 정보경이 자신의 내면을 드러낼 수 있는 불안, 호기심, 좌절, 환희 등의 여러 복잡한 감정선을 표출할 밑거름이 되었다.

다시 똑같은 무대를 재현할 수 없는 무용과 퍼포먼스의 기록 하나가 하태범의 또 다른 작 <White-Sign>영상으로 남아 있을 뿐 우리는 전시+공연이 일어난 순간을 이젠 다시 볼 수 없다. 생산자는 절대적으로 같은 조건을 만들어 낼 수도 없지만, 관객역시 그때 그 심리상태로 되돌아 갈 수 없다.

우리는 이렇게 또 하나의 흐릿한 기억 속에서 파생되는 몇 가지 단어만 되풀이하여 그 때의 그 사고를 떠올릴 것이다. 물론 그곳에 있었던 각 개인들의 개별적인 기억방식으로 말이다. 그러니 이 글 또한 앞으로 시간이 흐르며 흐려지는 기억 속에 또 다른 파편으로 작동될 것이다.

그렇게 전시와 공연은 장르를 특성상 각각의 시각의 차이를 두고 우리의 감각과 멀어진다. 한순간의 무대에서 펼쳐지는 무용을 전시로 남겨 그 뿌옇게 사라져가는 기억의 속도를 늦추었던 경험치가 지속적으로 되살아 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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