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주 큐레이터 토크 45
이은주 큐레이터 토크 45
  • 이은주 갤러리 정미소 디렉터
  • 승인 2015.02.11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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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퍼포먼스 프로젝트 3. 박재영과 변재범의 <두개의 섬 (Double Island)>

   
▲ 이은주 갤러리 정미소 디렉터
전시와 공연 믹스형태의 예술, 퍼포믹스(Performix)의 세 번째 이야기는 시각예술가 박재영과 무용과 안무를 겸비하고 있는 변재범의 만남으로 시작되었다.

퍼포먼스(공연)와 전시가 동시에 일어나는 세 번째 퍼포믹스를 위한 출발에 두 예술가는 자신들의 공통점을 찾았다. 바로 30대의 남성 예술가라는 점이다. 각자 다른 장르에 종사하고 있는 타인에 대한 조심스러운 접근을 출발로 그들 각각은 서로 간에 융합되거나 혹은 경계 지어 질 수 있는 심리적 지점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우선 모든 예술가에도 적용될 수 있지만 이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시, 공연으로 완성될 <두개의 섬>은 서로 각자의 독립된 공간이 존재한다. 그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다른 두 개의 자아들이 충돌하고 그 결과의 중층이 어떻게 겹치게 되는지 풀어냈다. 시각 예술가는 설치작품으로, 무용가는 그 무대에 적합한 스토리를 가진 안무로 말이다.

미술과 무용의 두 양 갈래 길, 각자의 독립된 공간을 그들은 섬이라 칭했다. 그리고 그 두 개의 섬이 다르기 때문에 오는 호기심으로 서로를 조심스럽게 지켜보며, 말을 걸어보기도 하고 또 충돌 뒤에 오는 화합을 통한 공존이 힘겨워 서로에게 방해 심리를 느끼기도 한다.

▲ 박재영과 변재범의 퍼포믹스 3 두개의 섬 Double Island 하나의 공간에 서로 다른 두 존재가 공존하고 있는 레파토리 장면

시각예술가가 표현한 무대는 곧 그 작가의 설치 작업이었으며, 정미소 바닥공간의 유리와 시멘트 부분을 각각의 다른 공간으로 분류하였다. 유리를 뺀 시멘트 바닥부분을 폴리카보네이트 소재를 사용하여 독립된 공간을 제작했다. 이렇게 완성된 공간은 양쪽에서 원한다면 언제든지 내부를 노출시킬 수 있는 장치가 되었다. 폴리카보네이트 소재를 사용하여 내부에서 영상을 투사할 때 그 공간 밖의 사람은 자연스럽게 영상작업을 보게 된다.

영상작업으로 투사된 영상 이미지는 박재영 작가가 사용하는 스튜디오 공간을 촬영한 것이다. 작가는 퍼포믹스가 행해질 2013년에 작업실 공간에서 작품구상 및 제작모습을 영상으로 담았다. 그렇다면 변재범 안무가의 공간은 자연스럽게 갤러리 정미소의 유리바닥 공간으로 상정된다. 이 전시공간의 바닥면적을 활용한 두 개의 영역은 미술과 무용이라는 개별 장르의 예술가를 위한 각각의 섬이 되었다.

▲ 박재영과 변재범의 퍼포믹스 3 두개의 섬 Double Island -두개의 섬이 되어 각자의 공간에 머무르는 레파토리 장면

여러 번의 워크샵과 미팅을 통해 두 예술가는 서로 가지고 있는 물리적인 사회적 잣대와는 또 별개로 스스로의 화합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을 겪기도 했다. 그 결과 서로 다르지만 각자의 영역에서 존재하고 있다는 떨림을 재현했다. 시각 예술가는 갤러리 공간의 조건을 최대한 활용하여 두 개의 독립된 공간을 연출했다. 즉 전시, 공연장은 곧 두 개의 삶의 터가 되었다. 하나의 섬은 시각예술가의 스튜디오 또 다른 섬은 무용가의 연습공간이 되었다. 이렇게 두 개의 전혀 다른 공간이 하나가 되었다.

두 개의 섬이 하나로 상정되어 관객을 맞이하는 순간 서로 각자의 공간에서 집중해야 하는 작업에 충실하다. 그러나 이도 잠시, 이 둘은 분리되어 충돌이 극대화 된다. 스튜디오에서 미술작가는 설치작업을 주로 하는지 기계소음이 요란하다(작가의 영상). 충돌의 시작은 작가가 만든 소음의 단서로 진행되지만, 나 이외의 서로 다른 이질적인 존재, 타인이 목격되는 순간에 적용될 수 있는 분노와 불안을 표현했다(무용가의 레파토리).

▲ 박재영과 변재범의 퍼포믹스 3 두개의 섬 Double Island 각자 다른 곳을 향하지만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 레파토리 장면

이러한 이질적인 것들이 공존하고 또 때론 충돌하는 장면은 미술과 무용의 만남에서 두 작은 개인이 빚어낸 결과지만, 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닮아있다. 하나의 세상에 공존할 때, 서로 다른 것이 하나임을 인식하여 각자 마음의 위안을 얻기도 하지만 또 그 반대편에서 극도의 이질감을 동시에 느껴 그 안도감이 바로 분노가 되어 충돌의 결과를 낳기도 한다.

다르지만 같이 공존하는 세상, 하나의 독립된 섬이지만 그 독립된 두 개의 섬이 결국 하나라고 이야기 하는 듯 한 박재영과 변재범의 작업은 다시 되돌려 볼 수 없기에 큰 아쉬움이 앞선다.

공연이후 전시장은 박재영 작가의 개인전 형식으로 지속되었지만 그 무대는 완벽한 두 개의 섬이 될 수 없었다. 공연이 끝난 이후, 또 다시 공연이 없었으니 즉 무용가가 다른 하나의 섬에 다시 돌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퍼포믹스 3 역시 시간의 차이를 두고 점점 더 멀어져 갔다. 두 개가 결국 하나였다는 메시지와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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