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게 언제적 물건이야?”
“세상에, 이게 언제적 물건이야?”
  • 편보경 기자
  • 승인 2009.07.24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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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북촌생활사박물관, 손때묻어 추억이 더욱 새록새록한 우리네 옛 물건들


북촌생활사박물관에 가면 손때 묻은 물건들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어릴 적 기억으로 할머니댁에서나 봤음직한 물건들이다. 6~7년 전, 서울시에서 북촌의 한옥 보존을 장려하는 정책을 시행하면서 낡은 한옥에 대한 보수 비용을 지원했고, 너도나도 누옥을 헐어 새 집으로 바꾸는 일에 동참했다. 그 과정에서 북촌 옛사람들의 생활 물건들이 무더기로 쏟아져나와 쓰레기차에 실려가게 되었다. 이를 안타까워한, 지금은 북촌생활사박물관의 관장으로 있는 이경애(57)씨가 멸실될 위기에 처했던 이 ‘쓰레기들’을 구해 어엿한 박물관으로 꾸몄다. 박물관에는 어떤 고물들이 있는지 살펴보고 이경애 관장이 ‘북촌 고물쟁이’가 된 사연도 들어보았다.

북촌생활사박물관은 건너편에 총리공관과 청와대가 바라보이는 전망 좋은 삼청동의 하늘재길에 위치해 있다. 박물관은 생활사 박물관인 만큼 체험 학습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박물관은 옥외전시관과 3개의 실내전시관으로 구성돼 있다. 옥외전시관은 텃밭이 있는 일반가정집의 외부 공간을 모두 전시장으로 활용, 벽면과 쪽마루는 물론 흙 마당과 장독대, 텃밭까지 북촌사람들의 손때 묻은 물건들로 꾸며 북촌의 옛 정취를 되살려 놓았다.

실내전시장1에는 보석이 된 간장종지를 비롯, 식생활 관련 옛 물건과 문화예술 관련 옛 물건들이 전시돼 있다. 헌 찬장과 장롱, 궤 등을 전시대로 활용하는 등 실내를 구성하는 물건 하나하나가 모두 북촌의 귀한 보물들이다.

북촌의 부녀자들이 대를 이어 사용해 온 희귀 주방용품들과 천우사라디오, 조선소년단용 호루라기 등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 그리운 옛 물건들을 만나볼 수 있으며, 이 모든 물건들을 관람자가 직접 손으로 만져볼 수 있도록 전시실 전 구역을 개방해 놓은 것이 특징이다.

실내전시장2에는 시간의 결이 오롯하게 새겨진 북촌의 옛 생활 물건들이 전시돼 있다. 종가에서 대를 이어 사용해 온 위패함과 만보오길방 등의 고서(古書)류, 앉은뱅이책상과 문구류 등이 있고, 너무 오래되어 소나무 결이 도드라진 두레상과 백 살도 더 넘은 떡판이 예스럽고 소박한 멋을 뽐내고 있다.

실내전시장3에는 아가이불을 비롯한 목화솜비단금침과 광목침구류, 손때 묻은 바느질용품, 옛 때때옷과 돌복, 고리짝 등 북촌의 규방과 다락에 몇 대를 걸쳐 꽁꽁 숨어 있던 비밀스럽고 예쁜 보물건들을 만나볼 수 있다.

보료와 방석 위에는 잠깐 앉아볼 수도 있고, 진열대로 쓰고 있는 장롱의 서랍들을 열어 그 안에 있는 수장품들까지 덤으로 감상할 수 있어 어릴 적 장롱을 뒤지던 향수에 젖게 한다.

체험실은 북촌의 옛 물건들을 직접 사용해볼 수 있는 체험공간이다. 맷돌질과 다듬이질, 키질, 체 거르기, 방아 찧기 등의 체험과 추저울ㆍ홉되ㆍ반되ㆍ통말되ㆍ귀틀말되ㆍ평미레ㆍ둥구미ㆍ박바가지 등 옛 도량형기 등이 있어 계량 체험 및 24절기에 맞춘 민속 체험프로그램 이 연중 운영되고 있다.

현재 여름방학 특별기획으로 ‘북촌 콩쥐 따라해보기’가 진행 중인데, 오는 10월 31일까지 계속된다. 절구ㆍ체ㆍ맷돌 등을 직접 둘러보고 아이들이 물건을 체험해보며 콩쥐와 같은 일상을 보내보는 것이다.

북촌생활사박물관의 체험학습의 특징이라면 관장이 직접 시중에 찾아볼 수 없는 명품 유기농 식재료로 지은 식사까지 먹어볼 수 있다는 것인데, 어린이들과 엄마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올해 늦겨울에는 전통차 담그기 체험, 겨울방학에는 동지 팥죽 끓이기, 생활 달력 만들기 등이 계속해서 진행될 예정이다.

‘북촌 고물쟁이’. 이경애 관장이 이 별명을 얻게 된 것은 대략 6년 전이다.

그는 본래부터 북촌 골목 산책을 좋아해 원서동에서 가회동을 거쳐 삼청동에 이르기까지, 미로처럼 이어졌다 끊어지는 북촌의 골목길 중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였다.

북촌 골목 산책을 유일한 취미생활로 살아오던 그녀는 어느 날부터 손때 꼬질꼬질한 북촌 생활물건 쓰레기들의 진면목을 보기 시작했다.

“버려지는 물건에 대해 남다르게 마음이 쓰이는, 좀 유별나달 수 있는 성정 때문일 것입니다. 고물쓰레기가 귀중한 보물로 보였다고나 할까요.(웃음)

그래서 서울시에 박물관을 만들라는 제안을 했는데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고, 그래서 저라도 이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습니다. 되살려 쓸 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을 그대로 버려지게 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본격적으로 시작을 하고부터는 ‘골목 산책 중의 보물 줍기’가 아니라, 고물을 수집하기 위해 리어카를 끌고 다니면서 북촌골목을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매일 쏟아지는 고물들을 주워 모았고, 몇 날 며칠 그것들을 씻고 털고 때 빼고 광 내어 새 물건 만드는 일에 매달렸다. 그래서 그는 개인 박물관을 운영하는 관장 중에서 자신이 가장 바쁠 것이라고 장담했다.

“북촌 고물쟁이, 저는 사람들이 이 별명으로 불러주는 것을 진심으로 좋아합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불러주는 것은 북촌 골목에 대해서건, 북촌 고물에 대해서건, 제가 이제 거의 달인 수준에 이르렀음을 공인해주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죠.

제가 6년여 동안 북촌 골목을 누비고 다니며 주워 모은 보물들, 그것은 단순한 고물만이 아닙니다. 착한 북촌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삶의 증거물이며, 급변과 질곡의 우리 근현대사가 남겨 놓은 귀중한 흔적이며, 또한 그 시대를 살아온 우리 모두의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박물관 관장을 하기 전 직업은 기자였다. 한 굴지의 신문사에서 근무하다 결혼과 함께 그만두었고, 공백을 거친 이후 주간신문사에 입사했는데 명색 ‘글쟁이’로 대부분의 밥벌이를 해결해 왔단다. 덕분에 아주 많이 굶었다고 우스갯소리도 했다. 한때는 밥장사까지도 했다고.

불교에 조예가 깊어 그동안 출판한 불교 관련 서적이 꽤 된다. 또 작년엔 교통방송의 아침 프로에 게스트로 나가 '아이랑 함께 소풍처럼 다녀올 수 있는 서울의 예쁜 절집들'을 소개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 지금도 낮에는 북촌 고물쟁이로 쉴새없이 일을 하고 밤에는 원고를 쓴다. 지금처럼 체험학습이 인기를 끌면서 박물관 유지를 할 수 있을 만큼이 되기 전까지는 원고를 써서 생기는 부수입이 고스란히 박물관 운영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고물들을 수집해 예술가들에게 오브제로 팔기도 했어요. 하지만 제가 박물관을 운영하면서 북촌 고물쟁이로 알려지게 되자 할머니들이 저에게 물건을 가져다 주시기도 했죠. 그래서 저는 용돈 드린다고 생각하고 3000원, 5000원씩 쥐어 드렸죠.

그렇게 돈을 엄청 썼어요. 총 비용이 한 달에 천만 원 정도 들어가니까 도저히 버틸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원래 신세 지는 것을 너무 싫어하는데 어쩔 수 없이 신용회복위원회의 도움을 받게 됐습니다.”

“10년 동안을 정말 제 힘만으로 버텨왔지요. 심지어 실내 전시를 위한 아크릴판 붙이는 것 까지 제가 다 했습니다. 보통사람은 못 붙인다고 해서 코웃음 치고는 제가 해보려고 하는데 접착제가 줄줄 새더군요. 하룻밤 연습해서 제가 또 했습니다. 그렇게 하니까 손이 하루라도 예쁠 날이 없이 많이 다쳐요.”

힘든 와중에서도 그녀가 박물관 관장으로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어떤 때일까? 그녀는 선반에서 아주 부피를 작게 할 수 있는 접이식 주석 도시락을 눈을 반짝이며 보여준다.

“일본에서 공부하신 한 어르신이 가지고 다니시던 도시락인데 조카한테 넘겨져서 저에게까지 전해졌어요. 알루미늄이 나오기 전에 제작된 도시락 같은데 부피를 작게 해서 직장인들이 가지고 다니던 것인가 봐요. 이런 물건들을 소장하게 될 때 참 의미가 있죠.

서울문화투데이 편보경 기자 jasper@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