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국의 국악담론]전통공연예술계, 생존의 원칙
[김승국의 국악담론]전통공연예술계, 생존의 원칙
  • 김승국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상임부회장
  • 승인 2015.02.12 14: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김승국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상임부회장/시인
얼마 전 어느 민간 전통공연예술단체의 젊은 연주가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들의 나이는 29세에서 32세 사이의 젊은이들로서, 서울의 메이저 대학 중 비교적 커리큘럼이 잘 짜여 있다고 입소문이 난 대학의 국악과를 졸업한 재원들이었다. 

그 정도의 연령이라면 결혼을 막 했거나 결혼을 준비해야할 나이로서 살림살이를 걱정해야하는 나이다. 그들이 속한 단체는 민간 전통공연예술단체 중 비교적 인지도가 높은 단체라 단원들의 월평균 수입도 그리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은 하였지만 궁금하기도 하여 평균 월수입을 물어보았는데 약 150만 원 정도라는 대답을 듣고 자못 놀랐다. 

월 150만원이라는 돈은 음악가로서 품격 있는 삶을 살아가기에는 턱없이 적은 금액이며, 그 정도의 돈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아껴 쓰고 아껴 써야 겨우 한 달을 살아갈 수 있는 최저 생활비이기 때문이다. 비교적 잘 나간다는 단체의 연주가들이 이 정도라면 다른 전통공연예술단체들의 실상은 더 열악할 것이 분명하다. 

그 단체의 연주가들의 월수입이 그 정도밖에 안 되는 데는 단원들의 수가 많은 것도 이유 중의 하나였다. 공연이 끝나면 출연비가 단체에 통으로 지급이 되는데, 그러면 출연비에서 일상 경비를 뺀 금액을 출연자 인원수로 나누어 개인별 개런티를 지급하게 되는데 단원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분배액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공연계에서는 흔히 n 분의 1이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그래서 잘 나가는 전통공연예술단체들을 들여다보면 연주자의 개런티 배분율을 높이기 위하여 최소한의 출연자 수로 최대한의 효과를 만들어내도록 기획을 한다. 또한 그런 단체들은 변화하는 사회 환경에 기민하게 적응할 줄 알고 탄탄한 기획력과 치밀한 홍보 및 마케팅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그런 단체의 연주자들은 자신의 주 전공은 물론이며, 1인 다기(多技)의 다양한 예능을 겸비하고 있고, 인접 장르에 대한 이해력과 융합능력이 탁월하여 소수의 출연자로 최대의 효과를 거두어드릴 줄 안다.  

잘 나가는 기악 연주자들은 시창과 청음에 능하고 피아노, 기타, 오카리나, 하모니카 등 서양 악기 한 두 개 정도는 연주할 줄 안다. 또한 반주 장단은 기본이고 소리(노래)와 기본 춤사위에도 능하고, 작곡과 편곡, 그리고 지휘까지 능하다. 게다가 꽹과리, 장고, 북, 징 등 기본적인 사물연주는 물론 꽹과리를 치며 구성지게 고사덕담(비나리)을 노래할 줄 안다. 가야금 연주자들은 정악, 민속악 가야금에 두루 능하고, 25현 가야금에도 능하다. 피리와 대금 연주자들은 태평소, 소금, 아쟁 등 모든 관악기 연주에 두루 능하고, 해금연주자는 중국악기 얼후(二胡) 연주에 능하고, 아쟁 연주자도 해금 연주에 능하다.      

또한 그들에게는 동종의 장르뿐만이 아니라 인접 장르 인문학, 언론계의 훌륭한 멘토 그룹이 주위에 포진하고 있거나 다양한 충고에 수용적이다. 성공적인 그들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냉엄하고 비정한 사회의 현실을 극복해낸 데에는 좋은 스승님과 멘토들과의 만남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에 나와 그런 훌륭한 분들과 인간적 관계를 새롭게 가질 수도 있지만, 생존의 전쟁 터 같은 사회에서는 좀처럼 그런 분들과 인간적 관계를 형성하기는 어렵다. 중고등학교 때도 그럴 수도 있지만 입시전쟁에 매몰되어 있는 시기라 그 또한 어렵다. 결국은 대학이다.   

대학은 직업훈련소는 아니지만 사회 환경이 어떠하며 사회가 어떠한 인재를 필요로 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주어야한다. 그래야만 학생들이 졸업 후의 냉엄하고 비정한 사회 환경에 대처할 수 있는 준비를 할 수 있다.

국악, 서양음악, 연극을 전공하고 매년 학부를 졸업하고 사회로 쏟아져 나오는 고급인력의 수는 엄청난데 비하여 안정적인 일자리는 좀처럼 찾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국악도 상황이 좋지 않지만 서양음악, 미술, 문학 분야는 더 안 좋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자생력이 강한 전통공연예술단체나 전통공연예술인들만이 살아남을 수가 있게 되었다. 자신이 속한 장르에 있어 타 전통공연예술단체 혹은 전통공연예술인들과 확연히 차별화된 특성과 수월성이 없이는 살아남을 수가 없다. 

길을 잃으면 높은 곳으로 올라가 가야할 방향을 찾으라는 말이 있다. 전통예술 전문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들과 젊은 전통공연예술인들은 사회 환경이 어떠한지, 미래의 예술 생태계가 어떻게 변화해 갈지를 정확히 파악, 예견하여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한다.

또한 성공한 단체나 성공한 예술인들의 성공 요인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분석 파악하여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나가야 한다. 남과 차별화되는 창의성과 우수한 예술적 역량은 전통공연예술인이 가져야할 필수 조건이다. 이러한 것을 명심하고 학부를 마치기 전에 피나는 자기 수련에 매진해야 한다. 

학부 4년이라는 시간은 그리 넉넉한 시간은 아니다. 그러니 죽어라고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이러한 것을 깨닫고 준비한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사회에 나와 늦게라도 이러한 것을 깨달았다면 그것도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요즘에는 생체 연령이 길어졌으니 늦게 공부를 시작해도 그리 늦은 것이 아니다.

지금은 작고하셨지만 여창 가곡의 최고봉에 오른 김월하(1918~1996) 선생은 35세에 시조를, 40세에 가곡 공부를 시작하여 1973년 55세에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예능보유자가가 되셨다. 그러니 늦었다고 포기하지 말고 노력해라. 피와 땀 없이 얻어지는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