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스마일 화가’ 이목을]“이제야 비로소 진정한 화가 꿈꾼다”… ‘온전한 나만의 그림’ 신작 선보일 예정
[인터뷰 - ‘스마일 화가’ 이목을]“이제야 비로소 진정한 화가 꿈꾼다”… ‘온전한 나만의 그림’ 신작 선보일 예정
  • 인터뷰 이은영 편집국장 / 글 윤다함 기자
  • 승인 2015.02.23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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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국내 산천 여행 풍경 담아내 “시력 남아있을 때 보고 싶었다”

나무도마 위에 사과와 대추 등을 극사실적으로 그리며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그림을 그려왔던 이목을 화백은 이제 ‘스마일 화가’로 더 익숙하다. ‘스마일’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로 그 스마일이 맞다. 눈 두개와 살짝 올라간 입 하나만 그리면 저절로 웃는 얼굴이 완성된다.

경북 영천 출생 / 영남대 졸업 / 초대개인전 40여 회 / 미술교과서 수록 : 미진사 중학교과서 및 교학사 고등학교과서

극사실주의 화가에서 이보다 더 단순할 수 없는 스마일을 그리게 된 것은 그저 이 화백의 마음의 변화 때문이 아니었다. 어렸을 적 이미 왼쪽 눈은 실명 판정을 받은 그가 의사로부터 이렇게 계속 그림을 그리게 되면 남은 오른쪽 눈마저 실명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받은 것이다. 초점이 맞지 않는 한쪽 눈으로 계속 그림을 그리다보니 눈에 가는 부담이 엄청났던 거다.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라는 말이 있듯 시력상실은 단순히 붓을 놓게 하는 것뿐만은 아니었을 테다.

하지만 이 화백은 오히려 이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누구나 쉽게 그릴 수 있는 스마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게 굉장히 단순한 형상이지만 실은 남을 억지로라도 웃게 해주는 거거든요. 그로 인해 나 또한 웃게 되고요.”
이 화백은 힘든 것과 좋은 것은 결국 똑같은 거라고 말한다. 즐거움과 행복은 잠깐이지만,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힘든 과정이 오히려 진정한 즐거움과 행복이란다.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마다 기대되고 설레어요. 그건 내가 뭔가 할 일이 생겼다는 뜻이고, 이건 언젠가는 다 지나갈 일이라는 것을 아니까요.”

스마일은 이 화백만의 ‘긍정 바이러스’를 세상에 널리 퍼뜨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시력상실은 그에게 시련이 아닌 또 다른 변화를 모색할 추진력이 돼 줬다. 올해에는 스마일과 더불어 자연과 동화된 듯한 새로운 그림을 공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지난달 본지가 주최한 <문화대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이 화백을 만났다.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최우수상 수상을 축하드린다. 수상 소감 부탁드린다.
“잘한 것도 없는데 상을 받으니 괜히 쭈뼛쭈뼛 부끄럽다. 주변에서는 한턱내라며 성화다.(웃음) 부끄럽지 않는 삶이 살아가라는 뜻으로 주신 상으로 알고, 모든 것에 감사하고 모든 이에게 누가 되지 않는 거르고 거른 정제된 삶을 살아가고 싶다.”

-지난해 <청춘만담>이란 책을 출간했다. 어떤 계기로 내게 된 책이었나? 소개 부탁한다.
“그전부터 출간제의를 종종 받곤 했는데 내 생각과는 좀 맞지 않아 일이 성사되지 않았다. 내가 강조한 것은 ‘가볍게’ 내고 싶다는 거였다. 인문학이 어려우면 읽기 힘들다. 특히 내가 평소에 쓰는 글을 엮어서 낸다면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기는 힘들 것 같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형식으로 책을 내게 됐다. 사회 초년생 스물여섯 살 아가씨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풀어가는 인생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아가씨가 내게 청춘의 고민을 대변하며 여러 질문을 담은 편지를 보내면, 내가 진중하면서도 유쾌하게 답하는 대화형식의 편지 에세이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이야기부터 예술, 철학까지 대화 주제의 폭이 넓다. 뭔가 거창한 걸 얘기하고자 한 건 아니고 순간순간 내 생각을 편하게 던지려고 했다. 그림과 책 모두 내가 사람들을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하는 것이라 생각해왔다. 이번 책이 세상이란 나무가 잘 자라나는데 도움이 되는 거름이 됐으면 한다.”

-어렸을 때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화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꿈을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했나?
“초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돈을 벌기 위해 나서야했다. 잠도 거의 못자고 새벽마다 일을 하러 나갔다. 먹고 살 돈도 없는데 교과서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가장 중요한 건 현실임을 깨달았던 것 같다. 현실이 이상을 만들어준다는 걸 난 잘 알고 있었다. 중학교 때 내 인생계획을 한 번 짜봤는데, 순간 인생이 그리 길지 않으며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고등학교 때 돈을 벌기 위해 실업계 야간부에 입학했다. 오로지 돈이 제일 우선이었다. 돈이 없으면 꿈도 없어지니까… 야간에는 수업에 들어가니 주간에는 학교 사환으로 일했다. 돈도 벌고 공부도 안 해도 되고 좋았다.(웃음) 사람이 배고프면 말짱 소용없더라. 늘 먹고 사는 게 가장 큰 문제였고, 그 다음이 화가였다. 그래도 꿈을 버린 적은 없었다. 그 꿈마저 없었더라면 난 되는대로 대충 살았을 것 같다.”

-먹고사는데 바빠 그림 그릴 시간이 부족하진 않았나?
“고등학교 때 미술부에 들어가긴 했는데, 나는 먹고사는데 급급하니까 그림만 붙들고 있는 분위기와는 맞지 않았다. 밥 굶은 돈 차곡차곡 모아 한 번씩 벽화 봉사활동에 나가곤 했다. 그것 갖고는 늘 부족했는데, 그간 없던 미술수업이 고3 때 생겨 얼마나 꿈결 같았는지 모른다. 특히 당시 미술선생님으로부터 내가 영향을 많이 받았다. 지금까지도 찾아뵙고 있는 분이다.”

-고등학교 미술선생님은 어떤 분이셨는지 궁금하다.
“선생님은 내 가슴 속에 늘 존재하는 분이시다. 내게 영향을 준 유일한 분이자, 유일한 내 스승님이시다. 언제인가 주간에 학교에서 연탄불 갈며 일하고 있으려니 선생님께서 내게 오라고 손짓을 하시는 거다. 순간 뭔 죄를 진 것 마냥 숨이 턱 막히며 심장이 벌렁벌렁했다. 선생님께서 내게 단 한마디 말씀하셨는데, 그 말이 지금까지도 내 머리 속에 울리는 것 같다. ‘그림 그려.’… 짧지만 굉장히 강렬한 말이지 않나. 당시 친한 친구들 여럿과 모여 내가 이런 말을 들었는데 이게 무슨 뜻이냐며 풀이에 나섰다. 친구들 결론이 또 참 재밌는데 이게 대학가라는 뜻 같다고 하더라. 대학 가려고 사환을 그만두고 낮에는 그림에 매달리고 저녁에는 일하고, 새벽에는 공부했다. 이런 게 운명인 것 같다. 선생님의 그 한 마디가 지금 내가 이렇게 살 수 있는 단초가 됐다는 것, 참으로 멋지지 않나. 그 와중에 선생님 말씀을 그렇게 해석해준 친구들도 고맙다.(웃음) 지금껏 대학 갈 생각은 해본적도 없는 나였는데, 선생님의 그 말씀 한 마디에 안 하던 공부를 해서 대학에 들어가게 된 거다.”

-짧은 시간 안에 공부와 그림을 모두 잡기가 어려웠을 텐데, 선생님께서 큰 힘이 돼 주셨을 것 같다.
“선생님은 날 가르쳐주신 것도 없다. 그저 내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아무 말 없이 바라봐주셨다. 선생님께서 날 위해 교내 미술대회를 만들어주시기도 했다.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미술대회가 웬 말인가. 내게 상을 주려고 만드신 거였다. 당시 나는 변변한 연필도 물감도 없었는데, 대회에서 1등해 부상으로 받은 게 일제 물감, 팔레트, 연필 한 다스였다. 내게 그보다 더 귀한 게 없었다. 아까워서 뜯지도 못하고 입시 때 쓰려고 아껴놨던 기억이 있다.”

-프로작가가 된 제자를 보고 선생님 반응은 어떠셨나?
“찾아뵈면 선생님은 아무 말씀도 안 하신다. 하지만 전혀 지루하지도 않고 그저 행복하다.”

-그렇다면 대학시절에는 어떤 학생이었나?
“학교 다닐 때 미술과목 외에 경영, 마케팅, 법, 자연과학, 국문학 등의 과목들을 주로 들었다. 오히려 미술수업은 점수도 잘 나오지 않는 편이었다. 내 그림도 학생 그림같지가 않고 어둡고 너무 사색적이라며 교수들이 날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실제로 한 미술이론 강의 시험 때 백지를 제출한 적도 있었는데, 그렇게도 내가 싫어했고 하고 싶지도 않았던 거다. 당시 교수는 나 같은 학생은 처음이라며 D를 줬던 게 기억난다.(웃음)”

-미술교과서에 작품이 실린 것을 봤다.
“예전에 그렸던 극사실주의 그림 두 편이 교과서 두 개에 실렸다. 중학교과서에는 사과 그림이, 고등학교과서에는 대추 그림이. 두 곳에 나오기 힘든데 또 그렇게 됐다. 평생 교과서 없이 살아서 그 한 풀어주려고 교과서에 내줬는가보다 한다.(웃음) 특별한 의미를 두는 건 아니지만 자식들이 날 존경해주는 것 같아서 뿌듯했다.”

▲작업실에서 이목을 작가.

-본래는 진짜보다도 더 진짜 같은 극사실주의에 몰두했었다. 그러다가 이보다 더 단순할 수 없는 '스마일'로 전향했다. 시력악화로 인해 단순화된 그림으로 넘어간 거라고 들었다.
“사람들은 내가 변했다고 하지만 난 변한 게 아니다. 내가 핑계 삼아 그림을 작파할 수도 있었지만 스마일을 통해 그림을 놓지 않고 계속 그릴 수 있게 된 거다. 일종의 보너스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다른 그림으로 가려고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스마일하고는 완전히 다른 그림일 거다. 다시 말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완전히 다를지 몰라도 내제된 의미는 내게 똑같다. 앞선 극사실주의나 스마일이나 앞으로 공개될 그림들 모두 내 이야기 안에서는 모두 똑같다.”

-스마일의 얼굴이 참 다양하다.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 다르게 생겼다.
“사람 얼굴이 다 다른 것처럼 웃는 모습 또한 다르게 나올 수밖에 없다. 내 스마일들은 모두 나와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이다. 혹은 미래에 만날 사람의 얼굴일 수도 있겠다. 일단 바탕을 먼저 칠하는데, 그림 바탕색에 맞춰서 웃는 얼굴이 떠오르는 거다. 아주 단순하고도 쉬운 그림이지만 함부로 그릴 수도 없는 게 스마일이다.”

-변화된 다음 작품이 궁금하다. 살짝 알려 달라.
“그나마 눈이 보일 때 많이 봐 놓고 싶어서 6개월 정도 우리나라 산천 여행을 다녔다. 실은 이런 생각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가져왔다. 그때의 생각을 이제야 실행하고 있는 거다. 내가 만약 눈이 아예 안 보이게 된다면 그때의 그림은 바로 어렸을 때 꿈꿨던 바로 그 그림일 것이다. 자연과 동화가 된 그런 그림이다. 일부러 지금까지 절제를 하며 내보이지 않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릴 때가 왔다. 이제야 진정한 화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목을 작가의 양평 작업실 전경. 그리스 산토리니섬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독특한 건물외관이 이 작가의 개성을 고스란히 드러내 준다.

-진정한 화가란 무엇인가?
“지금까지의 내 그림들은 완전히 자의적이었다기보다는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맞춰왔다. 왜 내가 그림을 그리게 됐는지에 대한 물음의 답이었기 때문이다. 즉, 나만을 위해서 이렇게 그림을 그리는 능력이 주어진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거다. 하지만 진정한 화가는 남 생각 안 하고 어떤 장르나 틀에도 얽매이지 않고 오롯이 나 혼자 자위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누구에게도 안 보여줘도 되는 온전한 나만의 그림말이다. 배고프다며 세상 탓하는 작가들을 볼 때면 그들에게 왜 그림을 그리느냐고 묻고 싶다. 결국은 남을 보여주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는 건데,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세상에 맞춰야하는 거다. 그래야 작품도 팔리고 세상과 소통도 할 수 있지 않겠나. 진짜 예술을 하는 거라면 남이 알아주든 말든 상관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구정을 앞두고 있다. 구정을 쇠야 진짜 한 해가 다 간 것 같다. 지난 한 해를 어떻게 보내셨는지, 또 올해 계획이 궁금하다.
“‘스마일’을 통해 많은 활동을 했다. 특히 작년에는 방송에도 많이 나오는 등 내 얘기를 들으려고 하는 기회가 많이 마련됐던 것 같다. 전시 또한 국회, 교도소, 시골 등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질 예정이다. 아직 내 생각으로만 있는 건데, 광화문 등에서 ‘스마일캠페인’을 전개하고 싶다. 일종의 축제처럼 시민들이 참가해 스마일을 그리고 그걸 전시해서 ‘스마일 벽’을 만드는 거다. 내가 그리는 게 진짜 스마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함께 그림으로써 진정한 스마일의 의미를 실현할 수 있는 것 아니겠나. 이 외에도 홈쇼핑온라인쇼핑몰 등과 콜라보를 해 ‘스마일’이 입혀진 여러 아이템들이 곧 판매된다. 신작은 오는 5월 서울오픈아트페어에서 공개하려고 한다. 그 전에 좀 색다른 방식의 개인전을 통해 선공개를 하고 싶기도 하다. 기업과 예술의 만남을 주제로 현재 모 기업, 모 호텔 등과 얘기가 오가는 중인데, 갤러리가 아닌 곳에서 개인전을 갖고 싶기 때문이다. 또는 양평 내 작업실에서 개인전을 여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