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예진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결국 자진 사퇴
한예진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결국 자진 사퇴
  • 박세나 기자
  • 승인 2015.02.25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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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 논란 속 "정신적 피로감, 좌절감 커", 지난달 2일 임명 53일 만에

   
▲ 한예진 국립오페라단 신임 예술감독
'자격 논란'에 휩싸여 '낙하산 인사' 의혹을 받아왔던 한예진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이 결국 사의를 표명했다.

이달 3일 기자 간담회 때만 해도 "갓 태어난 아이니 지켜봐 달라"며 사퇴 의사를 보이지 않던 한 감독은 24일 보도자료를 통해 "일신상의 사유로 다 내려놓고 이만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2일 임명이 되고 난 이후 53일 만이다.

이어 "여러 논란 속에 도전적인 의욕보다 좌절감이 크게 앞서 더 이상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며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마음의 상처와 정신적인 피로감이 커 연연할 수도 없게 된 것"이라고 전했다.

또 짧은 기간 진폭이 큰 경험을 했다며 "무엇보다 뜻을 펼쳐볼 기회조차 없이 언론을 통해 비치는 모습에 가족들이 상처받고, 개인 과거 일까지 들춰 여러 얘기까지 만들어져 가족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자리에 꼭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한 감독은 오페라단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자신을 임명한 김종덕 문체부 장관에게 "일신상의 사유로 떠나게 돼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전했다.

이어 "젊음과 신선함 오페라에 대한 진취적인 생각으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해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 처음엔 자신감이 충만했으나, 경험과 경륜이 부족하다는 외부의 우려 사이에 간극은 너무 컸다"고 덧붙였다.

앞서 한 감독은 지난 3일 국립오페라단 올해 사업 발표 기자회견 자리에서 학연, 지연을 끊고 탕평 캐스팅을 통해 실력과 기량만으로 유능한 인재를 두루 발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보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벽은 높았고 정말 많이 부족했음을 절감한다. 음악계 원로들의 지혜를 구하는 데도 부족함이 많았다. 오페라를 사랑하는 많은 분들의 마음을 얻는 공감과 소통도 크게 미치지 못했다"고 했다.

한 감독은 3월 공연을 앞두고 사퇴하는 게 무책임하게 비칠 수 있어 많은 고심을 했다며 "오히려 빨리 결단을 내리는 게 국립오페라단을 위하는 길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동안 저를 믿고 격려해주시고, 오페라단 운영에 많은 조언을 주신 분들께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점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격 미달이라는 비난과 자신의 발전을 좀 더 지켜봐 주지 않은 점에 대해서는 서운함을 내비쳤다. "시위까지도 불사하며 비난하셨던 분들이 음악계 전체를 대변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분들도 한국 오페라를 사랑하고 발전시키려는 마음을 표현했다고 본다"며 "이젠 그분들도 제자리로 돌아가 주셨으면 한다"고 전했다.

한 감독의 임명에 대해 오페라계 인사들은 경륜 부족 등의 이유를 들어 임명 철회를 요구하는 한국오페라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해 긴급토론회 개최 및 집회, 1인 릴레이 시위 등의 활동을 해온 바 있다.

또한 한 감독은 "자료 배포와 의사소통 과정에서 실수였음을 거듭 분명히 말씀드린다"며 "그 실수 또한 저의 책임이다. 이제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대로 무대로 돌아가겠다"고 허위 경력 기재 의혹에 대해 부인했다.

문체부는 한 감독의 임명 보도자료에 상명대 산학협력단 특임교수 경력을 실제보다 11년 많게 기록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에 문체부는 자료에 표기된 2003년은 한 감독이 제출한 이력서 기록인 2013년의 오타라고 해명했고 한 감독 또한 담당자의 실수라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 한 감독이 상명대 특임교수를 맡은 시기는 2014년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더욱 불거졌다. 이에 대해 한 감독은 처음 이력서 제출 시 담당 실무자의 오기였다고 주장, 경력에 1년 더하는 것이 본인에게 전혀 실익이 없다며 허위 기재에 대해 강력히 부인했으나 경력 증명서 제출 여부에 대해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변한 바 있다.

이날 밝힌 한 감독의 사의 표명에 대해서 문체부 관계자는 "한 감독이 부서측으로 먼저 사표 제출이나 사퇴 의사를 밝히지 않고 언론에 보도자료를 발송해 사의를 표명했을 뿐이므로 추후 사표를 내면 수리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오페라비대위 소속 장수동 한국소극장오페라연합회 이사장은 이번 사태에 대해 "한예진 감독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정부의 인사 시스템에 관한 문제였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동안 문체부의 인사 채용에 문제가 많았다. 그러나 이번 한 감독의 임명은 너무나도 억지 인사였기에 들고일어날 수밖에 없었다"며 "국립오페라단은 특수예술법인이다. 일반 민간단체도 이사회를 통해 논의 후 임명 절차를 진행하는데 지금 그 내부 이사회가 제 기능을 할 수 없다는 것"이라며 현재 정부의 인사 시스템 자체에 개선이 필요함을 밝혔다.

또 "쓰레기 차 피하려다 똥차가 오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염려도 있다"며 "지방에 시장, 군수, 지사 등이 바뀌면 그 지역 단체장도 바뀌는 상황이 비일비재한 현시점 이러한 문화 발전에 역행하는 인사 제도는 하루빨리 개선돼야 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끝으로 그는 "오페라비대위는 한시적 조직이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능력이 검증된 예술 단체장을 뽑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인사 시스템을 구축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