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비상대책위, 한예진 국립오페라단장 사퇴 이끌어내
오페라비상대책위, 한예진 국립오페라단장 사퇴 이끌어내
  • 이은영 기자
  • 승인 2015.03.12 15: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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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의 승리, 혁명의 꽃 피워, 내가 죽으면 우리가 산다”, 다음 단장 인선 때까지 끝까지 감시의 눈 거두지 않아야

현 정부 들어 문화계 주요 인사 낙하산 문제로 갈등을 빚어온 가운데 특히 저항이 거셌던 한예진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임명은 결국 취임 53일 만에 사퇴로 이어졌다. 이는 그동안 문화예술계 ‘낙하산 인사’에 대항한 몇몇 움직임 속에서 얻어낸 유일하다할 성과다.

그간 문화예술계 낙하산 인사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특히 현 정부 들어 더욱 빈번해진 인사문제는 급기야 국립오페라단 한예진 감독 임명을 접한 오페라계가 전격적으로 시위에 나서면서 언론에서도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본지<서울문화투데이>는 지난 1월 28일자(147호,5면)와 2월 18일자(148,149합본호, 5면)에 걸쳐 국립오페라단 한예진 전 감독의 ‘낙하산’ 임명을 둘러싼 오페라계의 반발과 움직임을 취재 보도해 온 가운데 이달 2일 한예진 전 감독이 전격사퇴 함으로써 국립오페라단  감독 문제는 일단락됐다.

그간 본지는 한 전 감독이 사퇴에 이르기까지 결정적인 역할을 한 오페라비상대책위(이하 비대위)의 활동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중점적이고 지속적으로 다뤄왔다. 이번 호에서는 한 전 감독 사퇴와 이제는 한 전 감독의 사퇴로 ‘용도폐기’된 비대위의 해단간담회와 그간 활동과 소회를 게재한다. -편집자 주-

“소주한자 하자!”며 지난 4일 열린 이하 비대위 해단식 및을 겸한 기자간담회는 그동안 고생한 비대위 관계자를 비롯해 기자단을 초청한 자리는 조촐한 잔치집 분위기였다. 적당한 긴장과 설렘, 두근거림, 가벼운 흥이 어우러진 왁자지껄한 분위기. 오페라 ‘세빌리야의 이발사’가 오버랩 됐다.

▲ 오페라 비대위 해단식 장면

비대위는 이번 한예진 국립오페라단 전 감독 퇴진 결과를 가져온 자신들의 시위를 ‘오페라계의 새로운 역사를 쓴 것’으로 자평하고 불가능의 가능을 이룬 것에 대해 스스로에 감격하고 대견해 했다. 이들은 시위에 나서면서도 실제로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를 가져올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비대위는 <해단선언문>을 통해 “불가능하리라 여겨졌던 일이었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움직였기에 얻어낸 결과다. 이것은 오페라계를 넘어 사회의 정의가 살아있고, 편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작은 문화 혁명”이라며 명명하고 “이번 작은 혁명이 새로운 시작이 되고, 오페라 도약의 기틀이 되리라 믿는다.”고 밝혔다.

또한 “본연의 자리인 오페라계의 일원이 되어 새로운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선임을 지켜 볼 것”이라며 “보편타당한 적절하고 투명한 인사가 되길 희망하며, 최소 51%가 공감할만한 인사가 되길 기대한다.”고 일갈했다.

이와 함께 “개인의 이익과 영달보다는 전체의 이익과 발전을 위해 일할 수 있는 능력 있고 소통 가능한 인사가 후보가 되고 그 중에서 존경할 만한 인물이 선정되는 확고하고 투명한 인사시스템을 만들기를 바란다. 그런 믿음을 주는 국민의 신뢰와 공감을 받는 정부단체로 문화체육관광부의 역할을 기대한다.”고 주문했다.

비대위원들은 이날 그동안의 소회를 밝히며 앞으로의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그 중 비장함과 진중함과 더불어 좌중의 폭소를 유발하는 여러 발언들과 오페라계답게 가곡과 아리아로 자리를 이어갔다. 아울러 그동안 함께 동고동락한 비대위원을 비롯해 직간접적으로 힘을 모아준 음악계 동료와 언론에 대한 노고와 감사를 잊지 않았다.

탁계석 한국예술비평가협회장은 이번 사태에 대해 한국오페라 역사에서 우리는 결코 겪어서는 안 될 일을 겪었다고 비장한 어투로 운을 뗀 후 “이번 일을 계기로 국립오페라 예술감독의 중차대한 역할에 다시 한 번 인식할 수 있었고, 고통을 통해 우리(오페라계)는 새로운 발전 가능한 새로운 방향에 대한 모티브를 찾았다.”고 이번 비대위 활동의 의미를 되짚었다.

그는 특히 이번 비대위 활동을 ‘의병’에 비유하며 “역사상 의병이 성공한 예는 찾아보기 어려운데 이번 ‘오페라혁명 동지’들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문화혁명의 꽃을 피웠다“며 한껏 치하했다.

또한 그는 “우리는 해산을 하면서 새로운 오페라 지평과 세계를 향해서 마음을 고쳐 잡고 뜨거운 마음과 순수한 열정으로 우리 오페라가 세계의 중심이 되는 그날까지 각오를 다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광화문에서 펼쳐진 비대위 1인 시위

그동안 광화문에서 퍼포먼스형 1인 시위를 펼치는 등 적극적으로 비대위 활동을 해 온 장수동 서울오페라단장은 “마침 고속도로를 가는데 문체부 담당자의 (오페라감독 문제)전화를 받게 됐다.”며 “이후 정신없이 통화하고 가다 경찰에 단속돼, 난생처음 7만원 벌금을 물게 됐다. 이거 누가 보상해 줄 거냐? 이거 해결될 때까지 또 시위해야 하는 거냐?”고 너스레를 떨어 좌중을 한바탕 웃음으로 몰아넣었다.

박현준 비상대책위원장은 “우리가 작은 혁명을 이뤘다”며 “시간이 흐른 뒤 후배들에게 회자되는 그런 선배이자, 그런 운동이 되길 바란다. 이번 시위를 통해서 ‘내가 죽으면 우리가 산다’”라며 이순신 장군의 어록 ‘생즉사生卽死 사즉생死卽生’을 차용해 참석자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이어 그는 “‘대한민국의 정의가 살아있구나, 언론이 살아있구나’를 이번 기회를 통해 느끼게 됐다” 며 “그러나 여기서 끝날 문제는 아니다. 언제든 또 어떤 자격미달의 ‘낙하산’이 그 자리를 꿰차고 앉을지 감시의 눈을 거둬서는 안 된다.” 며 해단 이후에도 이와 같은 사태가 또 발생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해단식을 끝으로 이들은 이제 사랑하는 음악과 무대가 있는 현장으로 돌아갈 것이다. 다시 불의와 부당함에 맞서 거리로 내몰리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간 엄동설한의 추위를 뚫고 활동한 이들의 시작과 끝을 대략 정리해 본다.

지난 1월 2일 문체부가 한예진 전 감독을 국립오페라단장 및 예술감독으로 임명하자 오페라계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7개월여를 비워둔 단장자리에 ‘자격미달’ 인사가 단장으로 오자 그동안 숨죽이며 단장인사를 지켜보던 이들은 한편의 ‘격정적인 무대’를 꾸렸다. 이들은 곧바로 오페라단 비대위를 구성하고 1월 14일 대학로예술가의집에서 긴급기자회견을 가진 이후 ‘한예진 퇴진’을 위한 본격적인 행동에 나선 것이다.

예술의전당 앞에서 오페라퍼포먼스를 비롯해 광화문 등지에서 1인 시위와 길거리 갈라콘서트를 여는 등 시민들에게 국립오페라단장 임명의 문제점과 부당성 알리는 동시에 인사권을 가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예진 감독에게 퇴진 압박을 가했다. 안으로는 한예진 감독의 ‘업무정지가처분신청’을 내고 문체부 장관을 직무유기로 고발을 하기로 결정했다.(문체부장관 고발 건은 이후 문체부 담당자와 만나 유보함)

이후 이들은 지난 2월 16일 문체부가 있는 세종시 정부청사에 내려가 청사 앞에서 대대적인 시위를 벌이고, 문체부 관계자와 만나 사태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답변을 얻어 내고 나서야 시위는 잠시 잠잠해졌다. 이후 소강상태를 거치는 사이, 지난달 24일 한예진 감독의 자진사퇴가 이뤄지면서 비대위는 승리의 환호성을 울렸다.

오페라비대위는 이번 ‘한예진 사태’를 통해 그동안 개인적 활동에만 치중해 왔던 자신들의 활동반경을 되돌아보고, 부당함에 맞서고 정의를 세우는 일에는 앞으로도 계속 힘을 모아갈 것을 다짐했다.

그러나 한예진 감독이 사퇴했다고 국립오페라단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앞으로 누가 또 그 자리에 오게 될 것인지 끝까지 지켜봐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