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석의 박물관 칼럼]박물관 변화, 콩나물시루에 물 주듯
[윤태석의 박물관 칼럼]박물관 변화, 콩나물시루에 물 주듯
  • 윤태석 뮤지엄 칼럼니스트 / 문화학 박사
  • 승인 2015.03.12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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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태석 뮤지엄칼럼니스트/문화학 박사/한국박물관학회 이사/한국박물관교육학회 이사
  을미원단, 박물관 단상

설이 지나자 실질적인 을미년이 시작된 듯 분주한 분위기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로 부터는 사립박물관·미술관(이하 박물관)과 사립대학박물관에 새 학예인력인건비 일부가 지원되어, 경칩 지난 봄 마냥 박물관에 활기를 더하고 있다.

공립박물관을 대상으로 한 소장자료 등록사업(Database) 역시 공립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사업임과 더불어 그 동안 관리의 사각지대에서 관심을 애타게 기다려왔던 박물관에게 역시 큰 힘을 주고 있다.

그러나 첫 사업인데다 중앙과 지방정부예산이 매칭으로 추진되는 만큼 금년 예산 편성을 해 놓지 못한 상당수의 박물관들에는 그림의 떡과 같다. 또한, 국고를 한국박물관협회를 통한 민간경상보조로 진행되어 민간에서 예산을 받는 공립의 입장에서 회계 상 처리가 쉽지 않는 등으로 인해 혼선도 야기되고 있다.  

이외에도 ‘길위의 인문학’사업,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사업 등과 서울시 및 경기도, 영월, 용인 등 각 자치단체별 지원사업 역시 박물관의 발전적 변화를 예고하며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한편, 박물관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과는 거리는 멀지만 박물관을 거점으로 하고 있는 정부의 ‘문화가 있는 날’ 사업은 2년 차를 맞아 보다 적극적으로 일간지에 대대적인 광고까지 하는 등 국민들에게 문화향유의 기회를 주고자 적극적인 정책을 펴고 있어 보인다.

이러한 크고 작은 직간접적인 사업들은 지엽적으로는 일희일비, 박물관을 비교적 짧은 시간에 움직이게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은 장기적으로 볼 때 매우 더디게나마 박물관을 변화케 하는 매개가 될 것이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메세나 활동을 통해 문화·체육 분야에 지원을 하고 있는 기업인들을 초청해 문화체육 분야 후원 활성화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는 1994년 한국메세나협회가 설립된 이후, 문화예술의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지원을 해 오고 있는 기업들을 격려하고, 문화융성과 창조경제의 원동력인 문화예술에 대한 지속적인 후원을 요청했다.

그동안 한국메세나협회와 경제계에서는 문화예술 후원활동을 통해 예술영재 발굴, 소외계층의 문화예술 향유 및 문화 인프라 구축 등을 추진해 왔다. 1994부터 2013년까지 20년간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액은 2조 6950억 원이라고 청와대는 밝혔다.

또한 박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문화예술이 창의성의 토대가 되며, 기업의 문화예술 후원활동이 우리 사회의 문화적 역량을 높이고 문화융성을 이루는 데 중요하다고 평가해 왔다.

이와 관련하여 정부에서는 2014년 ‘문화예술후원 활성화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모범적인 메세나 활동을 펼친 기업을 ‘문화예술후원우수기관’으로 인증하는 제도를 도입한 바 있다. 또한 향후 지속적으로 문화예술 후원 활성화를 위한 방안을 마련해 나아갈 계획이라고 청와대는 자체 보도 자료를 통해 밝힌 바 있다.
 
자라지 않는 콩나물?

정부든 민간영역이든 문화 분야에 대한 지원과 후원은 매우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임에 분명하다. 특히 요즘처럼 장기경제침체와 불안한 사회분위기에서는 문화가 삶의 가치를 재인식 시켜줄 수 있다는 차원에서 보다 가치 있게 평가될 수 있다.

또한, 무엇인가를 생산해 내는 공장과 달리 박물관을 비롯한 문화기반시설에서의 생산물은 정신을 살찌우게는 하되 쉽게 잡히거나 보이지 않은 무형의 것으로 존재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따라서 문화가 매개가 되는 생산물 즉, 정신을 통해 그 생산성을 확인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뿐 만 아니라 변화의 과정과 결과역시 매우 장시간을 요해서만이 확인될 수 있다. 그 어느 분야보다도 인내를 수반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이유이다.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듯이
콩나물시루에 물을 줍니다.
물은 그냥 모두 흘러내립니다.
(-중략-)
그런데 보세요.
콩나물은 어느새 저렇게 자랐습니다.
물이 모두 흘러내린 줄만 알았는데
콩나물은 보이지 않는 사이에 무성하게 자랐습니다.
(-중략-)
- 초대 문화부장관 이어령[천년을 만드는 엄마] 中에서 -

박물관을 비롯한 문화 인프라는 콩나물에 물을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우후의 죽순처럼 콩나물을 잘 자라게는 할 수 있다. 그러나 문화를 통한 인간정신의 변화는 콩나물처럼 속성일 수는 결코 없다. 정신의 변화는 콩나물을 직접 먹는 게(섭취) 아니라 향유함에서 나오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박물관을 비롯한 문화기반시설 역시 시설의 개선에 앞서 철학과 가치관의 발전적 변화가 근본적임을 재인식했으면 한다.

콩나물_별 영양분 없는 맹물이 무슨 변화를 줄까? 그러나 같은 양으로 일정한 기간 지속되는 관심은 콩나물을 자라게 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임을 우리는 안다. 콩나물과 같이 문화분야의 지원과 후원 역시 지속성이 전제되어야하며, 그 변화에 대해서도 인내심을 갖고 느긋하게 봐 줄줄 아는 아량이 생겨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