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외상값 안갚으신 분~, 냉큼 박물관으로!
30년 전 외상값 안갚으신 분~, 냉큼 박물관으로!
  • 편보경 기자
  • 승인 2009.07.28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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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골 대머리집’ 외상장부 발견, 서울역사박물관서 선뵈

▲ 대머리집 외상장부 이미지
30년전 광화문의 명소 ‘사직골 대머리집’의 외상장부가 발견돼 화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서울역사박물관(관장 강홍빈)이 오는 30일 이 외상장부를 공개한다. 

오는 30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개막예정인 ‘광화문 年歌연가 ; 시계를 되돌리다’ 전은 8월 1일 광화문광장 준공에 맞춰 기획된 것으로 서울이 조선왕조의 수도가 된 이래 그 중심 가로(街路)였던 광화문 일대에서 600여년 동안 펼쳐졌던 역사와 문화, 국가와 시민의 길항관계, 물리적 공간의 변화, 그리고 그 속에 녹아든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다루게 된다.

이 전시에서 선보이게 될 광화문 사직골 대머리집의 외상장부는 모두 3권으로 당시 이 집 단골의 한 사람이었던 극작가 조성현(趙成賢)가 대머리집 주인 이종근씨로부터 전해 받아 지금까지 보관해오고 있던 것이다.

서울역사박물관은 당시 광화문 뒷골목 풍경과 사직골 대머리집을 재현하고, 이 외상장부를 토대로 영상물을 제작해 당시 넉넉한 인심과 무한한 신뢰가 배어 있는 ‘외상술문화’를 살펴보게 한다.

사직골 대머리집의 옥호(屋號)는 ‘명월옥(明月屋)’이나 ‘대머리집’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대머리집이 영업을 시작한 것은 1910년 이전으로 추정되며, 먼저 김영덕(金永德)씨가 50년 동안 식당을 운영하고, 그의 사위되는 이종근(李宗根, 당시 56세)씨가 대를 이어 받아 약 20년 동안 식당을 운영했다. ('선데이 서울', 제11권 39호, 통권515호, 1978.10.1 발행).

이 대머리집은 이종근씨 이후 더 이상 대를 이를 사람이 없어 1978년 10월 15일 70년 여 년의 역사의 막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대머리 집의 외상장부 중 한 권은 식당에서 외상내역을 기록한 장부이며, 두 권은 수금을 위해 들고 다닐 수 있도록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작성시기는 1950년대말부터 1962년 사이이다. 작성방법은 가는 펜으로 먼저 기관명을 쓴 다음, 사람 이름을 쓰고, 그 아래로 사람별로 외상금액을 쓰고 외상을 갚은 경우 ‘×’표시를 하였다.

수록된 기관은 총 71개 기관으로 경제기획원, 문교부, 서울시청 등 ▲공공기관 25개소, 동아일보, 서울신문, 조선일보, 동양방송, 문화방송 등 ▲언론기관 22개소, 고려대학교, 서울대학교, 연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등 ▲학교 16개소, 조흥은행 등 금융기관과 ▲기타 4개소이다. 장부에 수록된 사람은 약 300명, 연인원으로 약 700~800명 정도 된다.

이중 이름만 들어도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정계, 학계, 문인, 기자, 방송인 등사회저명인사들도 많은데, 당시 광화문에 신문ㆍ방송사가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대머리집이 언론계의 사랑방 노릇을 톡톡히 했음을 보여준다.

술값은 대부분 1천환에서 3천환이며 1천환 이하도 많다. 1만환이 넘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혼자 먹었다기 보다는 회식을 하였거나 여러 사람이 함께 먹고, 한 사람 이름으로 외상을 단 것으로 보인다.

기타 재미있는 내용으로는 외상값을 할부로 갚게 한 점(총액 밑에 부분변제금액을 날짜와 함께 기재), 미수금이 있거나 뚜렷한 직장이 없어도 외상을 줬다는 점, 이름 대신 ‘필운동 건달’, ‘대합조개 좋아하는 人’과 같이 이름 대신 손님의 인상착의나 습관을 기재하기도 하였다는 점이다.

외상장부 내역을 추적하면 개인이 직장을 옮긴 경로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도 재미있다.  (예  공석하 씨 : 국도신문→ 민족일보→ 경향신문)

한편 6ㆍ70년대 광화문 뒷골목 청진동, 당주동, 도렴동, 사직동 일대에는 크고 작은 술집들이 많았다. 이곳 술집들의 연원은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시대 육조거리의 배후지역은 술집과 기방, 도박장 등이 밀집한 유흥가였다. 이 술집들은 일제강점기, 해방이후는 물론이고 80년대  도심재개발이 본격화되기 전까지 광화문의 명소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술집들의 단골손님은 공무원, 기자, 문인, 방송인, 은행원, 교수, 교사, 부근 사무실에 근무하는 샐러리맨 등이었으며, 이곳은 곧 이들의 사랑방이요, 정보교환소였다. 당시 꽤 소문난 술집으로는 청진동에 청일집, 열차집, 대림집 등이 있었으며, 당주동, 사직동에는 고향집, 대머리집 등이 있었다.

'광화문 年歌연가 ; 시계를 되돌리다’ 전은 오는 9월 20일까지 계속된다.

서울문화투데이 편보경 기자 jasper@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