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섭의 여행칼럼]영화보다 감동적인 삶의 애환 부산
[정희섭의 여행칼럼]영화보다 감동적인 삶의 애환 부산
  • 정희섭 글로벌문화평론가/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겸임
  • 승인 2015.03.26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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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희섭 글로벌문화평론가/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겸임교수
난 영화광의 수준은 아니지만 영화를 보는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잊고 몰입한다. 지인들의 주관적인 영화평을 무시하고, 또는 혹자들이 왈가왈부(曰可曰否)하는 ‘정치적인 요소’마저 모두 배제하고 본다. 영화는 영화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 내 지론이다. 

관객 수 1,400만 명을 돌파한 영화 <국제시장>은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잘 보여준 수작이 아닐 수 없다. 영화 포스터에 새겨진 ‘그 때 그 시절, 굳세게 살아온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문구가 모든 것을 함축적으로 말해준다. 모두가 굳세게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적 맥락을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어떤 것을 내 능력과 기분에 따라 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먹느냐 굶느냐의 문제였고, 나아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였기에 사회구성원 모두가 절박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 전쟁을 직접 겪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부모님의 이야기를 토대로 전쟁에 대한 이미지를 재구성할 수밖에 없지만, 1970년대 한국경제가 급성장하던 때의 모습과 1980년대 초반 이산가족 찾기 운동의 감동은 생생히 기억한다.

<국제시장>의 재미와 감동이 식기 전에, 영화의 실제 배경이 된 국제시장 안의 ‘꽃분이네’를 찾아 나섰다. 작은 가방과 카메라를 들고 아무런 부담 없이 13년 만에 다시 떠나는 1박 2일의 부산여행. KTX로 2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는 부산을 왜 이렇게 오랜만에 가는 것일까. 여행을 떠나기 전 늘 한국의 고물가를 고려해서 외국 여행을 더 선호했었던 나에게 질책 아닌 질책을 던져본다.  

“들어 오이소, 드시고 가이소.” ‘사투리 보존론자’인 나는 각 지방의 사투리를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국토를 횡으로 종으로 내려가고 올라갈 때마다 달라지는 억양과 어미의 변화를 관찰하는 것이 즐겁다. 꽃분이네를 찾아가며 거리에서 길을 몇 번 물었지만 의외로 부산 사투리를 듣지 못해 의아해했는데, 막상 시장 입구에 접어드니 좌판에서 국수를 말아 파시는 아주머니의 외침에서 ‘부산 억양’을 느끼고 내심 안도한다.

▲ 꽃분이네

한 나라에서 사용하는 문자는 반드시 표준화가 되어야겠지만 사람들이 쓰는 억양마저 표준화될 필요가 있을지 묻는다. 꽃분이네 앞은 오십 여명은 되어 보이는 관광객과 취재를 나온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지만 정작 물건은 생각보다 많이 팔리지 않는다고 하니 또 하나의 아이러니가 탄생한다.    

자갈치 시장, 을숙도, 용궁사, 태종대, 해운대, 달맞이 길, 망미동 골동품 거리, 보수동 책방골목, 감천문화마을, 초량동 외국인 거리, 센텀시티, 벡스코. 하룻밤 묵고 돌아오는 짧은 여행이었지만 떠나기 전날 수첩에 적은 부산의 볼 곳 리스트는 부산에서 가장 역사적인 곳에서부터 가장 현대적인 곳까지의 도시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한두 곳도 아닌 이렇게 많은 장소를 수첩에 적은 넣은 이유가 아직도 거대도시 부산을 그저 ‘지방도시’라고 생각하는 나의 무지(無知)는 아니었는지 생각해본다.

항구도시에 서린 삶의 애환을 느끼고, 사라져가는 사투리의 정취를 음미하고, 아시아를 넘어 이제는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부산영화제의 면모를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부산을 권한다. 홍콩에 버금가는 야경, 태국 파타야보다 다채로운 토속음식, 싱가포르에 필적하는 현대적 교통시스템이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줌은 물론 영화보다 아기자기한 서민들의 일상이 잔잔한 감동을 선사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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