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팝아티스트 김일동]‘동양적 팝아트’ 시공 초월한 상상력 내뿜는 블루칩 작가
[인터뷰 - 팝아티스트 김일동]‘동양적 팝아트’ 시공 초월한 상상력 내뿜는 블루칩 작가
  • 윤다함 기자
  • 승인 2015.03.31 00: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BMW·CGV 등 기업과의 아트 콜라보 통해 입지 다져

     유쾌하고 화려하다. 김일동 작가의 작품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흥미를 돋우며 궁금하게 만든다. 그저 재밌기만 한 줄 알았는데 그 기저에는 동양사상이 짙게 깔려있다. 무채색이나 수묵, 화선지 등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고 그는 말한다. 표현법이나 재료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귀여운 아이콘 형태의 <108달마도> 시리즈는 단순히 익살스러운 모습의 달마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다. 김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절대적인 가치를 상대적으로 해석하고 평가하려는 오늘날 우리네의 모습을 투영하고자 한다. 달마는 정신적 우월과 해탈의 경지에 오른 전설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달마가 서양의 대표적 브랜드들 상품들을 즐기는 모습은 웃음을 자아낸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저마다의 가치를 지니고 있고 그것은 분명 절대적임에도 세상은 행복의 기준을 상대적이라고 주입하곤 한다. 김 작가는 <108달마도> 시리즈를 통해 자신 고유의 가치관과 소중함을 다시 비추어 볼 것을 말하고 있다.

     김 작가는 아직 국내에서는 생소한 아트 콜라보레이션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며 대중들에게 기업과의 협업을 보여주고 있다. 2013년 서울모터쇼에서 BMW MINI와의 아트카 콜라보레이션을 선보였다. 기업으로서는 관람객의 눈길을 끄는 홍보이벤트를 마련할 수 있고, 김 작가에게는 자신의 작품을 알릴 수 있고 더불어 현장퍼포먼스를 통해 관객과의 소통까지도 이뤄냈던 기회였다. 이외에도 얼마전 CJ CGV와의 협업에서 <108달마도>를 입힌 무비패스와 포토티켓패스를 한정 제작하기도 했다. 특히 반응이 좋아 기업 측에서는 추가 제작했다고 한다.

대중과 기업이 주목하는 인기작가로 급부상하고 있는 김 작가를 만났다.

-지난 1월, 본지가 주최한 문화대상에서 젊은예술가상을 수상했다. 늦었지만 다시 한 번 수상 소감 및 수상 이후의 이야기들에 대해 말해 달라.
“미술계 어르신들을 소개받을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는데, 큰 선생님들을 직접 뵙고, 그분들로부터 상을 받고 또 그걸 보여드리는 자리가 내겐 처음이라 너무 감격스럽고 벅찼다. 감사드린다. SNS에 수상소식 올렸더니 많이들 ‘좋아요’ 눌러주고, 전화도 많이 오고 그랬다.”

-동양화를 전공했는데 작품에서 그 흔적은 찾기 힘들다. 현재는 팝아트 작업을 선보이고 있는데, 변화한 과정이 궁금하다.
“전공 이전부터 동양철학에 관심이 많았다. 궁금증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책도 많이 찾고 공부도 했지만 뾰족한 답은 없는 것 같더라. 그냥 자연스레 내가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한 걸 알게 됐다. 내 안의 고민들을 표현하려고 하다 보니 익숙한 방법들로 하게 됐고 동양화 전공 전에 했던 애니메이션이나 미디어 등의 표현방법으로 표출하게 되는 것 같다. 전공은 동양화일지 몰라도 나는 동양화나 서양화를 구분하는 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대학교 재학시절에 어려움은 없었나?
“커리큘럼을 따라서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그런 동양화를 따라 그리기도 하고 그랬다. 그런데 교수님께서 표현법에 제한을 두지 않으셨기에 특별히 어려움은 없었다. 내가 운이 되게 좋아 교수님께 배울 수 있었던 거라 생각한다. 모 학교는 전통을 강조하며 동서양을 뚜렷이 구분 짓는다고 들었다. 다행히 교수님은 표현법은 물론 재료 선택도 자유롭게 해주셔서 나와는 아주 잘 맞았다.”

-대학교 입학 전에 애니메이션을 했다고 했는데?
“학교에 늦게 입학했다. 29살에 입학했으니… 20대를 애니메이션과 영상을 다루며 보냈다. 당시에는 그저 그게 너무나 행복하고 마냥 좋아서 인터넷에 결과물을 올리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활동했다. 미디어 작품이나 웹툰도 했었는데, 꽤 인기도 많았었다.”

-그렇다면 갑자기 대학교를 들어간 계기는 무엇인가?
“하다 보니 창작이 쉽지가 않더라. 또한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아무래도 현실적인 부분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해오던 것과 다른 그림을 하고 싶었고, 공부도 더 하고 싶었다. 작가가 돼야겠다, 작가를 해야겠다라는 마음으로 학교를 간 건 아니었는데, 어느새 내가 작가가 돼 있더라. 학교에 가서 내 인생이 완전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어쩌다보니(?) 작가가 돼 있더라는 것인가?
“작가라면 이래야 한다는 일종의 포맷이 있지 않나. 전시를 하고, 대중들에게 선보여야할 양식이 있는데, 그런 것과 자연스레 연이 닿았던 거다. 학교에 가서도 원래 하던 습성대로 온라인에 작품을 올리곤 했었는데, 어느 날 내게 섭외가 들어온 거다. 표출하고 표현하는 게 마냥 좋아서 계속 했더니 자연스럽게 작가가 됐다는 기분이다.”

-첫 전시는 어땠나?
“솔직히 충격 받았다. 방송이나 그런 곳에서 보면 전시장에 관람객들이 가득하잖나. 그런데 전시기간 내내 50명 남짓 되는 분들이 찾아주셨던 것 같다. 듣고 보니 내가 참가한 전시만 그런 게 아니더라. 사람들은 갤러리를 찾지도 않는데 왜 다들 전시를 하고 작가를 하려고 하는지 회의가 들기도 했다. 하지만 전시 마지막 날, 작품 한 점도 팔고, 한 대학 교수님께서는 내 작품을 보고는 굉장히 좋다고 칭찬해주셔서 다시 힘을 얻어 더 관심을 갖고 작품에 임하게 됐다.”

-작가로 활동한지 5-6년가량이다. 비교적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BMW, CGV 등 유명 기업들과의 협업을 이어오는 등 주목받는 작가로 떠오르고 있다.
“학교 다닐 때부터 예술가와 기업간의 아트콜라보에 관심이 많아서 사례를 모으는 등 연구를 많이 했다. 외국에는 기업뿐만 아니라 슈퍼스타와 예술가의 만남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 태동단계이지만 해외의 사례를 봤을 때 충분히 대중적이고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연구하면서 내가 그런 사례대로 돼 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생각한대로, 연구한대로 이뤄가고 있는 거다. 다만 이런 협업은 이제야 시작 단계라 어려움이 많다. 하지만 그런 과정까지도 내겐 즐겁다.”

-어떤 점이 어려운가?
“기업은 예술가를 어떻게 수용해야할지 잘 몰라서 서로 조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아트마케팅은 아무래도 국내에서 대부분 처음이기 때문에 그런 거다. 아직 제대로 된 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아 룰도 없고 사례도 많지 않으니까… 대화를 많이 하는 수밖에 없다. 대화를 통해 서로 조율하며 기업이 원하는 바와 작가의 스타일을 잘 융합해야 한다. 작가 또한 융통성이 필요하다. 기업과의 상생을 위해서는 버릴 건 버리고 가져가야할 건 가져가야 한다. 이는 작가가 본인의 세계를 잘 인지하고 있고, 자신의 가치에 대해 객관적이어야 가능할 수 있다. 자기 뼈대가 명확하지 않으면 기업과의 조화와 융통이 불가능하고 결국은 기업의 요구에만 따라가 본인의 색깔을 잃어버릴 수 있다.”

-사회기여적인 역할도 이어오고 있다. 코인맨 시리즈를 통해 기부를 이끌어내 그 기부금은 사회에 환원된다. 코인맨에 대한 소개 및 구상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기부를 촉진시키는 거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즐길 수 있도록 구상했다. 전시의 끝에는 관람객은 박스에 직접 동전을 넣어 기부를 하게 된다. 전시 이후에 많은 분들이 이 박스를 사고 싶다고 의뢰하신다. 기부박스는 누구나 어디든지 설치할 수 있다. 보통 카페 등에서 의뢰가 많은데 박스를 설치하고 마음이 움직인 누구든지 그 박스에 기부를 할 수 있는 거다. 박스는 공장에서 제작해 실비만 받고 보내드린다. 나는 이를 ‘캠페인 아트’라고 부른다. 이제 내가 35살인데, 이 운동을 계속 이어간다면 얼마나 많은 동전이 쌓일까 궁금하다.”

<108달마도 - mcdonalds> 2009

-108달마시리즈에서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고 코카콜라를 마시는 달마의 모습이 재밌다. 작품 의도는 무엇인가?
“물질적으로만 세상을 보면 열등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유는 단순하다. 자기가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에 그런 관념이 형성돼 있기도 하다. 하지만 너무 거기에만 구속되고 집착하면 열 받고, 힘들어진다. 이런 것에 대한 생각이 늘 있었는데 이를 달마에 접목시켜봤다. 달마는 동양의 대표적인 인물 아니겠나. 그런 인물에 서양의 대표적인 브랜드를 녹여봤더니 형태가 잘 나온 것 같다. 달마는 물욕이 없는데 그런 달마가 브랜드를 즐긴다는 모습이 재밌지 않나.”

-아트토크쇼라는 새로운 형식의 공연을 통해 미술작품과 음악 감상을 함께 할 수 있는 자리를 선보이고 있다. 구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공연기획하시는 분이 우연히 내 작가노트를 보고 이걸 그대로 무대 위로 옮겨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다. 처음에는 나로 반신반의하며 시작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다들 반응이 아주 좋았다. 사람들은 모두 관계 속에서 살아가지 않나. 학교, 직장, 가정 등… 그런 일상에 빗대어 작품 이야기를 하니 잘 이해해주시더라. 작년 4월 첫 시작해 이제 6번 정도 했다. 일회성으로 끝날 수도 있었는데, 하다 보니 계속 연장된 경우다. 소규모로 30분 모셔놓고 하기도 하고 500명 관람객과 함께 하기도 한다. 하면서 더 보완되고 업그레이드 돼 가고 있다.”

-시공상상도 시리즈에서 윤두서의 자화상을 화려하게 재현한 ‘윤두서 테마파크’란 작품이 눈에 띄었다.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이 본인에게 뜻하는 바가 있나?
“윤두서의 자화상을 처음 보고는 충격에 휩싸였다. 소름끼칠 만큼 생기 넘치는 눈빛과 섬세한 수염에서 에너지가 느껴졌다. 어느 날 밤, 잠을 자려고 불을 끄고 누웠는데 윤두서의 초상이 자꾸 강렬하게 떠올랐다. 그래서 바로 작업에 들어갔는데, 나도 모르게 신나서 그리는 모습이 마치 어린 시절 테마파크에 처음 접했을 때의 모습과도 같았다. 거대한 놀이기구와 쇼들을 보며 느꼈던 신비로운 환희가 재현되는 듯했다. 이를 시작으로 시공상상도 시리즈를 제작하게 됐다. 기계는 입력해놓은 프레임으로만 움직일 수 있다. 애초에 설계가 그렇기 때문이다. 지금의 세상을 보면 사람들은 스스로 규칙과 규율을 만들어놓고 그 안에서만 움직이는 것 같다. 자기가 만들어 놓은 틀 속에 갇히는 거다. 그게 답답하니까 또 다른 규칙과 약속을 만든다. 그게 바로 문물이고 기계들이다. 역설적으로 인터넷, 컴퓨터, 핸드폰 등이 너무 잘 발달돼 있어서 더 살기가 힘들다는 뜻이다. 놀이동산 놀이기구들은 계속 똑같이 움직인다. 그리고 더 재밌는 걸 원하며 더 큰 놀이동산을 원한다. 즉, 우리가 사는 세상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올해 예정된 전시와 계획이 궁금하다.
“토크쇼를 좀 더 발전시키고 싶다.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게끔 일정과 장소를 구체적으로 체계화할 생각이다. 미술작품이 미술관을 벗어나 밖으로 나오니 오히려 사람들이 더 즐길 수 있다는 걸 직접 경험하다보니 토크쇼에 주력하고 싶다. 그리고 올해에는 미디어작품에도 힘을 쏟을 계획이다. 미디어아트 개인전도 꼭 가지려고 하는데 내가 준비되면 할 생각이다. 캠페인 아트 또한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전개하려고 하는데 아직은 비밀이다.”

-꿈은 무엇인가?
“현재 하고 있는 걸 열심히 하는 게 바로 꿈이다. 나는 이미 작가가 됐고 꿈꾸던 대로 이뤄지고 있으니 그저 즐겁다. 창작을 계속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해 이걸 계속 지속하는 게 꿈이라면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