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상상 차가움의 이성’, 세계춘화박물관/강화성박물관
‘뜨거운 상상 차가움의 이성’, 세계춘화박물관/강화성박물관
  • 강화춘
  • 승인 2015.04.15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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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의 명소 마니산 등산로 입구(화도면 상방리 마니산로)를 막 지나치는가 싶은 곳에, 곧이어 자세히 보면 낯설기까지 한 대형 현수막이 걸린 그리 크지 않은 3층 화강석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가끔 마니산을 찾아오는 외지인들에게는 매우 이색적인 건물로 낯설기까지 하다.

박물관전경

이전에 없던 이 건물에 걸린 현수막에는 에로틱하다 못해 낯 뜨거운 그림이 새겨져 있어 주변농가 분위기를 감안할 때 큰 괴리감마저 준다. 이곳이 바로 시인이며 전각가인 오지열 선생이 지난 2011년 1월에 문을 연 세계춘화박물관/강화성박물관이다.

보통 사람들은 성인이라고 해도 이 곳에 들어오기가 망설여진다. 섹스는 불경스럽다는 생각이 우선 그렇고 결코 저렴하지 않은 관람료(성인 7,000원)가 또 그렇게 만든다. 입구에서 좌우를 살피다 묘한 호기심에 이끌려 들어가기로 결정을 하고 1층 전시장에 막상 들어서면 한눈에 들어오는 엄청난 양의 전시물에 또 한 번 크게 놀라게 된다.

1층 전시장

통로가 비좁을 정도로 서있는 진열장에 빼곡히 자리한 다양한 유물과 그것도 부족해 사방 벽면을 가득 채운 춘화 및 관련 자료의 양에 우선 입이 떡 벌어진다. 관람료가 결코 비싼 게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설립자의 정신상태가 궁금해지기까지 한다.

다음으로 우리가 상상했던 그 이상의 것들을 보여주고 있는 춘화들의 기기묘묘한 장면(?)은 차마 직시할 수 없게 만들뿐더러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게 한다.

이 박물관에는 1층과 2층에 거쳐 160여 개 국에서 수집된 7,400여점의 춘화가 전시돼 있으며 수장고에 1,000점이 더 수장되어있다. 한마디로 춘화로 특화된 성(性)종합박물관인 샘이다.

그러나 춘화가 갖는 특징과 함께 지역이 꽤 오지인인지라 학예사를 채용할 수 없어 아직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상 등록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2층 전시장

오 관장은 서울의 유명사립대학에서 평생을 봉직하다 정년을 한 후 이곳으로 들어와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강화는 오 관장의 고향도 아닐뿐더러 연고도 없다. 그가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러한 박물관을 기획했던 단초를 제공한 것은 친한 친구에 의해서였다.

평소 시인으로 또 전각가로 활동하면서 그는 수석을 수집해왔다. 이를 중심으로 수석박물관을 하기위해 이곳에 들어와 박물관을 짓고 있을 무렵 “여기에 수석을 전시하면 누가 찾아오겠냐? 일본에 가보니 섹스박물관이 엄청 잘되던데…. 관람객도 많고...” 오지열의 근황이 궁금해 찾아온 친구의 일성이었던 것이다.

순간 뇌리에서 현실과 이상이 강력하게 부딪힘을 느꼈다. “그래 맞아 네 말이 맞다.” 옳다구나 싶었다. 수석(1층 전시실)과 성관련 자료(2층 전시실)를 같이 전시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수석도 볼 수 있겠지…. 이후로 성관련 자료를 집중적으로 수집하게 되었다. 인사동, 장한평, 신설동 풍물시장, 전국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매, 관련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컬렉터 등 발품을 팔고 또 설득을 하고......, 전국을 누비고 누볐다. 

관람객과 오지열 관장

틈나는 대로 해외에도 나가 자료를 수집했다. 오 관장의 열정은 여기에 머물지 않았다. 우리나라 주재 180개국의 대사관에 편지를 보내 섹스관련 자료를 협조해 줄 것을 요청하는 낯 뜨겁고 건방진 일을 벌이기도 했다.

이런 노력과 방법으로 모은 것이 지금 소장하고 있는 8,400여점의 세계 각국의 춘화이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수집한 자료를 막상 전시하게 되자 박물관은 엉뚱한 쪽으로 흘러갔다. 성관련 자료를 모으면 모을수록 자극적이고 호기심어린 세계가 오 관장을 사로잡았고 결국 수석은 자취를 감추고 성관련 자료가 주를 이루는 박물관이 되게 된 것이다.

이 박물관에서 흥미로운 코너는 2층에 자리 잡고 있는 국가별 춘화이다. 나라별로 또 문화권별로 조금씩 다른 칼라를 갖고 있는 춘화는 인간의 본성과 민족의 밑바닥을 알 수 있게 해 흥미롭다. 관람객에게 단연 인기를 끌고 있는 부문은 한중일 코너일 것이다.

우리가 동양문화권이며 한중일은 어떠한 것이든 상호 연관성을 배제할 수 없기에 더욱 그러할 것이다. 한국의 춘화는 은근하며 격이 있으나 관음적(觀淫的)이다. 이에 반해 중국의 그것은 유쾌한 측면이 강하며, 일본이 삼국 중 단연 최고로 야하다. 반면 서구를 대표하는 유럽의 춘화는 충격 그 자체라고 오 관장은 주장한다. 춘화 박물관장이 다년간의 연구를 통해 귀결한 전문적인 평가여서 쉬이 넘길 수는 없는 결론인 듯싶다.

오지열 관장

한편 우리나라는 유교 문화라고 하는 긴 전통 속에서 사람들의 숨통을 열어주는 통로로 포르노가 등장하기도 했지만, 조선시대 양갓집 규수는 부모에 의해 시집갈 때 혼수에 넣어 가지고가 성교육 교재로 은밀하게 널리 퍼졌다는 사실에서 춘화의 교육적 기능까지 생각하게 한다. 춘화가 오늘날에도 교육적 기능이 적지 않음을 알게 하는 대목이다. 

강화성박물관은 더 확장을 꿈꾸고 있다. 전시장도 비좁지만, 야외공간도 확보하고자 애를 쓰고 있다. 또, 등록을 위해서는 여건도 갖추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 박물관이 민망하고 숨기기에 급급한 성을 또 다른 가치의 인식으로 바꾸어놓는 계기를 주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세계춘화박물관/강화성박물관(http://www.ghsexmuseum.com/) 참조
위치_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상방리 마니산로 657-6
문의_032-937-9300

이정진 Museum Traveler(wumolonger@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