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수의 미술시장이야기]예술가는 노동자가 아니다.
[박정수의 미술시장이야기]예술가는 노동자가 아니다.
  • 박정수 미술평론가/ 정수화랑 대표
  • 승인 2015.04.15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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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수 미술평론가/ 정수화랑 대표

예술 노동자라는 말을 많이 쓴다.

노동자란 노동력을 제공한 대가로 임금을 받아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을 말한다. 노동력은 정신적 육체적 능력을 말한다. 예술가도 정신적, 육체적 능력을 사용하여 예술작품을 제작하기 때문에 노동자로 보기도 하였다.

임금은 사용자의 목적과 필요에 대한 대가로 받는 삯이다. 과거 교회나 왕의 필요에 의해 그들이 필요한 미술품을 제작하던 시대에는 노동자로서 역할을 제공하고 그것에 대한 품값으로 돈이나 여타의 품목들을 제공 받았었다.

자본주의가 팽배한 현 시점에서 자본주의에 봉사하지 않는 한 예술가는 노동자가 아니다. 특정의 필요를 생산하던 시대를 지나 사회구조에 의한 정치권력이나 자본권력에 대등한 위치에서 현재를 바라보아야 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소수 특정의 집단이나 특별한 조직에 종사하던 과거를 거쳐 현재는 보통사람이 특정의 집단으로 이해되는 시대다. 지금은 보통사람들이 예술가의 창의성을 사용하면서 임금으로서 삯을 주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지불하는 시대다.

가치는 ‘값어치’가 아니라 사물의 쓸모를 말한다. 값이라는 액수가 아니라 정신적 쓰임새를 주기 때문에 노동자가 아니다. 예술가는 보통사람의 생각 놀이감을 제작하는 이들이다. 보통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생각놀이는 일상의 평범함이나 보통스러움이 아니라 새롭고 특별한 무엇이어야 한다.

보통사람들이 수용하는 생각놀이는 새롭고 특별한 그 무엇이다. 그렇다고 예술가가 보통사람들의 기호에 맞춰서는 곤란하다. ‘예쁘다’ 혹은 ‘좋다’ 등의 일반적 반응은 기존의 익숙함이나 숙련된 편리함에서 오기 때문에 예술작품이라 한다면 ‘낯설고’ ‘어색한’ 그것을 수용시킬 줄 알아야 한다.

예술작품이 보통사람들의 정신놀이를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그들이 경험하지 않아도, 알지 못하는 그것이라도 경험하게 하여야 하고, 알 수 있게 하는 영역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예술작품이 있다. 좋은 예술과 덜 좋은 예술도 있다.

좋은 예술작품이라 한다면 최소한 보통사람의 기호나 눈높이에서 벗어나야 한다. ‘팔기위해서 작품을 제작’하지 않는다는 것과 ‘대중의 기호에 맞춰서는 안 되는’것은 예술가로서의 자존이다. 보통사람이 자신의 기호와 눈높이보다 다르거나 높은 것을 이해할 때 새로운 생각과 삶의 가치를 획득할 가능성이 다양해지고 많아지게 된다.

또한 예술 활동은 지식활동이 아니다. 예술작품은 지식의 나열이나 조합이 아니라는 의미와 상통한다. 예술은 선험적인 사유방식이나 이성적 경험, 지적 자체활동 등과 끊임없이 교류하며 자신의 고유한 영역을 확보해 가야한다.

그러면서 참된 예술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반복하면서 답을 찾아간다. 예술은 진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의심하고 그것에 상반된 또 다른 진리를 확인하기 위한 정신활동에 근거가 된다. 무엇을 인식한다는 것 자체는 예술의 범위를 축소하거나 그것에 반하는 지식의 영역이다.

사용자에게 월급은 받는 노동자가 예술작품을 제작할 수 있다. 그것은 노동자가 제작한 예술작품이지 예술노동자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정 화랑이나 기업에 소속된 전속 예술가라 할지라도 예술작품을 제작할 때 돈을 제공하는 그들의 목적에 부합하는 예술작품을 제작하지는 않는다.

돈을 제공하는 것은 예술가의 작품에 대한 판매권과 저작권과 관련되어 있을 뿐이다. 사회의 원동력인 노동의 가치를 폄훼할 일은 없지만 예술가 스스로가 노동자가 되는 일은 저어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