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담] 스승의 날 앞 두고, 스승 향한 성악가 제자들 헌정공연
[미담] 스승의 날 앞 두고, 스승 향한 성악가 제자들 헌정공연
  • 이가온 기자
  • 승인 2015.05.14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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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너 신영조 선생과 한양대 제자들 '가르침의 보답' 공연으로 드린다.

교권이 추락하고 있다. 지난 달 한 고등학교 학생이 자신의 담임선생님을 폭행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이유는 교사가 학생인 자신을 기분나쁘게 해서란다. 참으로 참담한 일이다.

이런 가슴아픈 현실속에 스승의 날을 맞아 스승을 기리는 제자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제자들이 모여 스승에게 바치는 '헌정공연을 열어 가슴을 따뜻하게 만든 것이다.

그 주인공은 라벨라오페라단의 이강호 단장. 이 단장은  한양대 음대 성악과 출신으로 지난 11일  중랑구민회관에서 자신의 스승인 신영조 선생을 모시고 '가정의달 콘서트'를 개최했다.

▲ 본 공연이 끝난 후 제자들이 객석에 있는 스승, 테너 신영조 선생을 무대에 모셔  꽃다발과 케잌을 선물하고 '스승의 은혜'를 합창했다. 이후 신영조 선생이 제자들과 함께 '오솔레미오'를 함께 부르고 있다.

콘서트에는 이강호 예술감독을 비롯 이상주 테너, 정준영 테너, 심형진 바리톤, 차문수 테너, 이우진 테너, 변병철 바리톤, 황태을 테너, 김상진 테너,정성미 소프라노와 박선정 피아니스트가 출연했다.

신 선생의 제자들로 꾸려진 이날 공연은 국내에서 가장 사랑받아온 아름다운 오페라 아리아와 가곡의 향연으로 신영조 선생과 약 300명의 관객에게 낭만적인 밤을 선사했다.

본공연이 끝난 후 출연자들은 무대로 객석에 앉아 있던 그들의 스승인 신영조 선생과 그 부인을 무대로 모셨다. 이때 제자들의 최고의 선물 '스승의 은혜'를 합창하며 꽃다발과 케익을 선물했다.

이 자리에서 신영조 선생은 "삶이 바빠 이런 무대를 가질 수 없었는데 지금보니 이렇게 편안한 노래로 관객과 소통하는 연주를 못한것이 후회된다"며 자신의 무대생활을 돌아봤다.

그리고 " 관객이 무대를 많이 사랑해주고 아껴달라"는 당부의 말과 함께 "나는 지금 몹시 행복하다"라는 기쁨의 감동을 전했다.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오솔레미오'를 부르며 무대를 더욱 훈훈하게 했다.

이날 관객들도 제자들이 스승을 기리는 모습에 감동하며 격려의 힘찬 박수를 보냈다.

공연 후 한 관객은  "요사이 보기 드문 아름다운 풍경이라 감동적이었다" 며 "사제간의 이런 모습들을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신영조 선생(74세)은 한양대 음대 성악과를 졸업한 뒤 로마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서 수학했으며 독일 뮌헨 국립음악대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3년 2월 발매된 신영조 선생의 앨범 '지성의 Tenor 신영조 내마음의 노래'
브라질 리우데자네리오 국제 성악 콩쿨에서 입상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신영조선생은 독일 스투트가르트 오페라 극장의 독창자 오디션에 합격해 그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이 후 오페라 〈춘희〉,〈라보엠〉,〈로미오와 줄리엣〉등 40여 편의 오페라에 주역으로 출연했다. 또한 뉴욕 카네기홀 공연 등 총 100회가 넘는 독창회와 1천 여회의 가곡의 밤 및 연주회 무대 등을 통해 국내 최정상급의 테너 반열에 올라서게 된다.

또 그는 1회부터 3회까지 대한민국 음악제에 출연하기도 했으며, 올해의 음악가상(1983, 1996), 한국 음악상 수상(1999)을 수상했으며 지난 76년부터 95년까지 국립 오페라단 단원으로 활동했다. 95년부터 99년까지 음대 학장을 역임했다.

신영조 선생의 경력은 언뜻 보기에 화려하지만 독일 유학시절에야 빛을 발한‘대기만성’형 인생의 길을 걸어 왔다. 이남진 음악평론가는 신 교수에 대해 ‘성격과 음악에서 나타나고 있는 정직성이 매력’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대학시절을 포함해 젊었을 때는 오페라에, 연륜이 쌓여가면서부터는 독일의 고전가곡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는 신영조 선생은 탁월한 한국가곡의 전도사였다. 맑은 소리와 정확한 발음으로 젊었을 때는 잘 몰랐던 우리의 정서가 살아있고, 가사가 모국어로 되어있는 가곡이 관객들에게 음악적 느낌을 전달하는 한 사람이었으며 후배과 제자들에게 귀감이 됐다.

2001년, 뇌경색이 발견돼 투병생활을 했다. 이로 인해 이성악가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어색한 발음을 가지게 됐지만 그는 끝없는 노력으로 극복하고 무대로 돌아왔지만 5년 전 또 다시 재발해 현재는 무대를 떠났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그에게도, 삶은 좌절과 극복의 연속이었고 성공은 그 과정 속에서 끝없는 노력과 성실성으로 이뤄낸 그만의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국내 3대 테너로 꼽히는 신영조 선생님은 45년 성악가의 길을 걸어온 그가 지난 2009년 2월, 34년 동안 재직한 한양대 음대에서 정년퇴임을 했으며 현재까지 후학들에게 그의 예술혼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