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장수동 서울오페라앙상블 예술감독]“한국오페라 세계화에 교두보 되겠다”
[인터뷰/장수동 서울오페라앙상블 예술감독]“한국오페라 세계화에 교두보 되겠다”
  • 이은영 기자
  • 승인 2015.05.14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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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2일~24일까지 예술의 전당서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초청작 <모세> 올려

오페라를 소극장에서 보는 일은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일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것을 사명으로 살아왔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누군가의 상상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장수동 서울오페라앙상블 대표 및 예술감독(한국소극장오페라연합이사장)의 상상 속에서는 소극장 오페라 공연의 대중화는 이미 일어난 일이다.

장수동 감독은 국립오페라단 조연출을 시작으로 이태리 라스칼라극장 아카데미아에서 오페라연출을 전공하고 문예진흥원 해외파견예술인으로 선정돼 헝가리 국립오페라극장, 미국 뉴욕 브룩클린 아카데미 오브 뮤직(BAM)에서 무대연출을 수학했다. 그는 그랜드오페라 <마농레스코>를 비롯 <카르멘> <세빌리아의이발사> <라트라비아타> <펠레아스와멜리장드> <모세> <카발레리아루스티카나> <나비부인> <아이다> 등을 연출했고, 창작오페라 <안중근> <백범 김구 <이순신> <춘향전> <황진이> <청라언덕> <줄리아의 순교> <사랑의 변주곡> 등 창작 및 국내 초연작 100여편을 무대에 올렸다.

특히 5월 광주를 소재로 한 <서울라보엠>은 미국 CNN방송에 소개될 정도로 반향을 일으켰다. 도시소외계층의 애환을 다룬<팔리아치-도시의 삐에로>아 스트라빈스키의 <어느 병사의 이야기> 벤자민크류거의 <섬진강> 등을 통해 사회문제를 환기했다.

이와 함께 서양오페라를 ‘우리 얼굴로 내보이기 위한’ 아시아 버전의 <리골레토>를 연출했으며 또 다른 그의 꿈 ‘오페라의 한국화’, 더 나아가 ‘한국오페라의 세계화의 교두보’를 만들기 위한 노력에 열정을 쏟고 있다.

지난 2013년에는 베르디 탄생 200주년을 맞아 기념콘서트를 성악가들을 대거 출연시켜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성대하게 열었다. 이는 현대 오페라의 기틀을 마련한 베르디에  경의를 표하는 무대로서 오페라인으로서 누군가는 해야할 사명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이렇 듯 수많은 작품 연출을 대부분 소극장 연출과 함께 이뤄냈다. 그가 소극장오페라 운동에 천착하는 것은 오페라 실력을 탄탄히 다지기 위해 꼭 필요한 관문이라는 것에서 이유를 찾는다. 그는 70년대 우리나라 소극장 문화의 싹을 틔운 ‘공간사랑’(현재는 아라리오 뮤지엄 소극장으로 재 개관)을 통해 돌아가신 오현명 선생을 비롯 심우성, 김대환, 강태환, 강준혁, 강영걸, 박성현 등 장르를 불문하고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예술인들과 동고동락하며 창작자의 기반을 다졌다.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희곡으로 등단한 작가이기도 한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어른들에게 불려 다니며 이일 저일 공연판에서 손을 거든다. 오태석 선생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서울예전에서 연극을 공부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클래식 음악과 연극의 기본이 되는 춤과 영화를 통한 사진예술을 두루 섭렵했다. 오페라를 만들 토대를 닦은 셈이다. 그가 소극장 오페라에 그 가치를 두는 것은 자신의 성장의 발판이 된 그 생생한 ‘현장’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제1회 대한민국 오페라 대상 연출상과 제24회 기독교문화대상 시상식 오페라 부문을 수상, 서울국제챔버오페라페스티벌 축제위원장 과 대한민국오페라축제 축제위원을 역임 했고, 현재 한국소극장오페라연합 이사장인 장 감독의 꿈은 나비효과처럼 동양의 대한민국에서 날개짓으로 지구반대편 오페라의 본고장까지 역으로 장대한 영향을 끼칠 그 날을 위해 쉴 새가 없다.

100편이 넘는 오페라를 연출한 그는 누가 뭐래도 오늘 날 대한민국 오페라의 산증인이자 전문가다.

그런 만큼 현재 대한민국 오페라계에 대해 할 말이 많은 것은 당연할 수 밖에 없다. 올해 제6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5월8일~31일)에 초청 받아 오는 22일~24일까지 예술의 전당에 올려 질 작품 <모세>로 한참 바쁜 그를 만났다. 예술의 전당 인근 한 레스토랑에서 그의 오페라에 대한 열정과 헌신의 역사에 이어 한국오페라계 현실에 대한 그의 우려깊은 목소리를 들었다.

▲서울오페라앙상블 장수동 대표 및 감독
우리 오페라계에 필요한 것은 '성장'이 아닌 '성숙'

-이번 오페라 축제에 <모세>를 올리는데 이번 작품을 통해 현 시대의 화해와 희망을 노래하고 싶다 했다. 연출 의도가 어떻게 드러날지 궁금하다.<모세>는 지난 2009년 그랜드 오페라로 오페라사상 최초로 대한민국오페라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검증된 작품이다. 21C는 불확실한 지구촌의 미래와 현재 우리 눈 앞에 일어나는 많은 사건사고가 우리를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지금 우리 현실이 참으로 암담하고 희망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럴때 나는 오페라로 무엇을 해야 할까 라는 고민을 했다. 그 중 많은 지도자들 가운데 미래의 예언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 모세의 놀라운 리더십을 통해 동시대의 구원을 노래하자는 취지로 다시 한번 연출에 임했다. 오페라 ‘모세’는 유대 민족의 출애굽 과정을 새롭게 해석한 현대판 출애굽으로 인종, 종교, 지역간의 갈등을 모세의 섬김과 희생의 리더십으로 풀어냈다. 고대 이스라엘인들의 출애굽 과정을 5000년 고난의 역사 속에서 민족혼을 지켜 온 한국의 모습과 오버랩시켜 21세기 희망을 노래하고자 현대판 출애굽기 속의 모세의 리더십을 무대화하는 것에 촛점을 맞췄다.
특히, <모세>의 하이라이트이기도 한 홍해가 갈라지는 장면에선 세월호를 애도하기 위한 노란 배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배는 무대 위 오브제로 어둠 속에서 계속 있어 왔는데 마지막 부분에서 그 모습이 드러난다. 이번 작품에서 굉장히 심혈을 기울인 장면이다

오랫동안 전 서울대 김인혜 교수와 작업을 해왔던데 이번에도 여자주인공 아나이데 역을 맡겼다. 물의를 일으켰던 사람인데 솔직히 부담감은 없는지?
김인혜 교수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뭇매를 맞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김 교수의 음악적 역량은 나무랄 곳이 없다. 8,90년 대 쥴리어드 음악대학원 박사학위를 마치고 한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는 극히 드물었다. 그때 그 시절 김 교수가 우리음악계 발전의 징검다리 역할을 해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 완벽한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김 교수의 음악적 파트너로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오늘날 오페라 활성활 운동은 무관심이 아니라 무기력, 대극장 오페라 위한 파이프라인이 소극장오페라

현재 많은 활동 중 ‘한국오페라 소극장 운동’을 주도 하고 있다. 왜 오페라가 대극장이 아닌 소극장에서 많이 올려져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소극장에서 오페라가 이루어지면 관객들은 배우들의 눈빛, 미간주름의 움직임, 배우의 침도 맞을 만큼 가까이에서 감동을 느낀다. 또 예산의 부담을 덜어 새로운 신작에 도전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소극장이다. 거기에 성악을 공부한 신인배우들을 배출해 자기화 되는 훈련의 과정이 꼭 필요하다. 그렇게 하기 적합한 장소는 바로 소극장이다. 많은 예산이 투입돼 볼거리 위주로 만든 대극장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실제 외국의 사례를 살펴보면 다 조그마한 극장에서 오페라가 발전했다. 오페라의 역사가 곧 극장의 역사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과거 무조건 초연작은 대극장인 세종문화회관에서 했다. 그래서 외국에서 들어온 작품을 올릴 때 노래는 네 박자인데 극장이 크다보니 그 네 박을 한 박자로 가야한다. 걸음마도 못하는 사람이 뛴 셈이다. 처음부터 누가 조수미 정명훈처럼 될 수 있나! 초보인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곳, 지휘자 연출자 노래하는 가수들을 양성할 수 있는 파이프라인의 역할을 해주는 곳, 그곳이 바로 소극장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내가 느낄 때 지금 오페라 활성화 운동은 무관심이 아니라 무기력 같다. 오페라 활성화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라도 오페라 소극장무대는 번창돼야 한다. 그래야 오페라 대중화도 가능한 일이다.                      

▲ 오페라 '모세' 공연 모습

우리 작품 잘 만들어 중국오페라 시장 적극 공략해야

장춘 동방대극원에서 장일남 작곡의 오페라 ‘춘향전’을 공연해 ‘중국에서의 입지를 굳혔다’는 한 매체 보도를 봤다. 중국 문화의 ‘과격한 상업화’양상을 우려했는데 이부분에 대한 설명을 조금 더 듣고 싶다.
장춘이란 곳은 중국의 자동차 시장과 또 공장들이 내수 시장을 노리를 유명한 장소이다. 또 그곳에서 북한사람들이 ‘홍루몽’이란 중국의 이야기를 가지고 공연을 한 곳이기도 하다.  어쨌든 우리 한국의 예술적 시스템은 많은 투자로 인해 중국보다 조금 앞선 것이 사실이다. 이런 좋은 시스템 속에서 계속해서 서양 오페라를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따르면 아시아의 오페라 극장은 서양 오페라단의 좋은 시장일 뿐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 이태리, 프랑스, 독일 등 외국의 성악가들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비추어 한국문화를 알리는 좋은 시간이 될 것 같아 자진해서 가겠다고 했고, 중국문화부에서 원격으로 조정해 중국투자를 받아 우리를 보내주었다.

중국 문화부 인사들은 대부분이 선진국에서 공부를 하고 온 굉장한 엘리트다. 상해 교향악단을 가보면 유명 오페라단이 다 와서 공부를 한 곳이다. 그들의 프라이드는 굉장히 높고 중국인들에게 '오페라'란 개념은 굉장히 광범위하다. '뮬란' 등 중국인을 주인공으로 한 창작 뮤지컬과 브로드웨이계의 뮤지컬, 이밖에 베이징 오페라(경극), 월극, 곤극 등 전통 가극까지 오페라의 범주는 광대하다. 또 그들은 공산주의를 주제로 한 창작 오페라를 1년에 두 번씩 꼭 올린다. 국가 대극원 외에도 상하이, 광저우, 항저우 시안에도 오페라극장 격인 대극원이 최근 5년 새 잇따라 지어져 극장수가 많아졌다. 그래서 우리도 해야 한다. 이렇게 좋은 환경이 있는데! 또 이 작품으로  중국뿐만 아니라 프랑스 파리 일본 동경 가서도 공연을 했었다. 오페라 ‘춘향전’을 잘 손질하고 다듬으면 한국을 대표하는 오페라가 될 수 있다. 그러니 만들어야 한다.

또 감독님은 ‘한국의 오페라를 중국에 심은 사람’으로 통한다. 그럼 본격적으로 중국 진출을 계획하고 있는 것인가?
오히려 그 반대다. 중국 사람들이 우리 한국에 와서 노래 할 수 있게 만들고 싶다. 중국 사람들도 실제 그러고 싶어 한다. 소프라노 임세경은 이탈리아 베로나 축제에서 아이다를 맡았다. 그런데 12번의 공연중 1번 을 한다. 만약 임세경이 중국인이였다면 중국인들은 관광버스 준비해서 단체로 가서 봐주고 엄청 퍼줬을 것이다. 그런 중국인들을 우리가 잘 써먹어야 한다. 화장품만 팔지 말고!! 솔직히 한류란 말도 우리가 쓰면 안 된다. 한류를 연구하는 학과도 많으니 구체적으로 조직적으로 공연화, 작품화해야 한다. 나는 그 문화현상에 음악이 좋은 수단으로 사용됐으면 좋겠다. 중국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어떤 그룹을 만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국립오페라단장, 인사시스템 갖춰 공개 채용해야 

최근 국립오페라단 한예진 단장의 자진사퇴로 공백 상태를 맞고 있는데, 물론 그 사퇴를 이끌어 내기까지 장 감독도 큰 힘을 보탰다. 이후 국립오페라단 문제 해결을 위해 예술감독과 단장을 분리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특히나 국립기관은 예술과 행정은 분리돼야 한다. 단장은 경영을 맡고, 예술감독은 음악적 수준을 높이는 역할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음악가가 아니어도 행정을 맡을 사람이 ‘단장 겸 행정감독’을 맡으면 되고 오페라 전문가가 ‘예술 감독’을 맡아 좋은 작품을 지속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공연장 창고에 바느질을 하는 기구가 있으면 뭐 하나, 있는지도 몰라 쓰이질 않는데....바느질 해본 사람이 의상 디자이너로 나오는 것은 정말 당연한 것 아닌가? 거기서 사람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말 인색하다. 메트로폴리탄 극장주를 했던 사람 중 하나는 유태인 목수출신으로 극장목수로 오랫동안 일을 해왔으니 노조도 잠재울 수 있고 또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거기에다 열심히 일하니 계속 그 사람을 극장주로 찾는다. 자신이 몸담아 왔던 영역에서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또 국립오페라단의 단장과 예술 감독의 직책이 분리된 적이 없고 그를 받침 할 조례가 없다고 하지만 그냥 만들면 된다. 그거 하나만 만들어지면 국립오페라단에서 창작오페라, 가족오페라 다 만들 수 있다. 지금은 예산은 받았는데 급하니깐 이름만 바꿔서 만들었다고 올려놓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오페라에 대한 마스터 플랜 가진 사람이 예술감독이 돼야 한다. 

▲오페라 앙상블 장수동 감독 인터뷰 모습

그렇다면 단장과 예술 감독의 선출방법에 있어서는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 
당연히 선출에 있어서도 투명한 절차를 거쳐 선임돼야 한다. 새로 인사위원회를 구성하기 보다는 현재의 구성돼있는 이사회가 단장, 예술 감독의 선임 절차에 대해 자문, 추천, 검증 등을 담당하도록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이런 합리적인 임명 시스템 요구에도 문체부는 요지부동이다. 국민의 혈세인 나랏돈으로 운영되는 문화 예술 기관이 결국 납세자인 국민과 관객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 돼버렸으니 잘못 돼도 너무 잘못됐다. 그러니 깨어있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희망은 있다. 나는 항상 자부심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는 굉장한 일을 해낸 나라이기 때문이다. 올해 광복 70년을 맞는데 오페라의 역사를 살펴보면 굉장한 발전을 이룬 나라다. 나 혼자 할 수 없다. 역할분담으로 나눠서 해야 한다. 민간단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몇 개 없다.

새가 한쪽 날개로 날 수 없듯이 민간단체와 공공기관이 함께 해야 한다. 우리가 5000년의 역사가 있지만 외국인의 입장에선 오페라에서는 신생국가인데 이만큼 오페라를 하는 나라가 어디 있을까. 러시아는 온통 다 국립이다. 정말 대단한 나라다 이젠 성장이 아닌 성숙! 이것이 오페라에 있어야한다. 민간단체들이 이만큼 헌신한 것에 대한 고마움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오늘날 이렇게 오페라를 발전시킨 우리 선배들 보다 한참 모자란다. 그분들은 정말 절박하게 엄청난 에너지로 열심히 끌어 여기 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 에게 필요한 것은 성장이 아니라 성숙이다.

국립오페라단, 단장과 예술감독 분리, 한국오페라 마스터 플랜 가진 사람이 예술감독 돼야

단장님 사명으로 여기는 ‘한국오페라의 세계화’를 서울오페라앙상블을 통해 어떻게 이룰 건지 그 계획을 말해달라.
우리는 서울오페라앙상블이며 오페라단이란 이름을 붙이지 못했다. 오페라단은 많다. 그러나 10년 뒤에 친구들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생각해보자는 약속을 했지만 여전히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뭔가 축적도 돼있고 후원회도 온전해지고 음악적인 완성도도 높아져야 하지만 20년 해서 해결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난 10년 열심히 했을 뿐 그렇게 인상적이진 못했다. 하지만 늘 2년에 한번 씩 오페라페스티벌의 참여자격도 얻었고 또 소극장오페라축제도 17년 동안 외롭지만 한 번도 안 빠지고 챙겼다. 누가 펑크 내면 내가 채우고 그렇게 끌어 왔다. 내가 유일하게 한가지 박수받을 것은 한국의 오페라 현장에서 일하는 무대감독  70%가 '내 새끼'들이다. 정말 어려울 때 함께 걸어온 사람들이다. 문제는 “서울오페라앙상블의 대표작을 뭐야?” 하면 부끄럽다. 이질문은 “대한민국 오페라의 대표작은 뭐야?” 와 똑같은 말일 것이다. 그거 만들어 내야한다. 그러나 나혼자 절대 할 수 없다. 함께 역할분담으로 해야 한다.

늘 작품을 많이 해 오고 있는데, 올해 계획은 어떻게 되나?
바로 이달 22일부터 3일간 예술의 전당 오페라축제에 <모세>공연과 6월26일~28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글루크(Gluck) 탄생 300주년을 기념하는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를 올린다. 지하철 공간에서 시민과 함께하는 씻김노래다. 7월13일에는 대전엑스포 극장에서도 올려지고10월에는 대전예술의전당에서 돈 조반니의 작품을 하게된다. 11월에는 소극장페스티벌이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에서 올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