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정의 발레인사이트]고립된 영혼과 열린 욕망의 대비 -백조의 호수(Swan Lake)
[김순정의 발레인사이트]고립된 영혼과 열린 욕망의 대비 -백조의 호수(Swan Lake)
  • 김순정(성신여대 무용예술학과 교수)
  • 승인 2015.05.15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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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순정 성신여대 무용예술학과 교수/김순정발레단 예술감독/한국발레협회 부회장/한국예술교육학회 부회장/전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한때 가장 좋아했던 발레리나는 러시아 볼쇼이발레단의 마야 플리세츠카야(1925-2015)였다. 그녀가 89세를 일기로, 얼마 전 5월 2일 러시아가 아닌 독일 뮌헨에서 영면했다.

3년 전 오월에 돌아가셔서 이제는 곁에 안 계신 아버지는 오래전에 연구차 일본을 자주 드나들었는데,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발레 비디오테이프와 음반을 잊지 않고 사다주셨다. 사춘기 시절 처음 본 <백조의 호수>속의 마야 플리세츠카야는 내 심장을 마구 두드리는 매혹적이고도 강력한 여전사와도 같았다. 그녀는 안무가에 종속된 무용수의 틀에서 벗어나 주도적으로 무대를 휘어잡는 마력을 지닌 특별한 존재였다. 곧 그녀는 나의 우상이 되었다.

마야 플리세츠카야는 “지나친 연습은 무용수로서의 생명을 단축시킨다”며 적절한 연습만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누구나 그럴 수는 없지만 그래서인지 그녀는 65세까지 볼쇼이 무대에서 활동했고 <백조의 호수>를 30년간 800회 이상 추며 관객의 끊임없는 갈채를 받았다.
 

▲백조(오데트역)-마야 플리세츠카야.

1999년 여름 모스크바에 유학을 가서 집을 구하러 다닐 때, 사할린에서 온 한인3세 부동산업자는 시내 뜨벨스카야 대로변의 한 아파트로 안내했다. 마침 집 주인이 없어 들어가 볼 수 없었는데 그 집이 예전에 마야 플리세츠카야가 살던 집이라는 말을 했다. 전율이 일었다. 드디어 발레의 나라 러시아에 왔구나, 를 실감한 순간이었다. 왠지 그 집은 나중에라도 안보는 게 나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에 대해 오랜 기간 품어 온 환상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날 저녁 어렵게 암표를 사서 열 살 된 아들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볼쇼이극장으로 <백조의 호수>를 보러 갔다.

발레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백조의 호수>는 1877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오스트리아인 안무가 라이징거에 의해 초연되었으나 실패로 끝났고 그의 이름도 발레사에서 잊혀졌다. 차이코프스키의 심포닉발레음악에 익숙하지 않았던 보수적인 관객들은 혹평을 하였고 거장 프티파라면 제대로 안무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은 채 차이코프스키는 안타깝게도 1893년 눈을 감고 말았다.

다음해인 1894년 2월 뻬쩨르부르크의 마린스키극장에서 차이코프스키의 추모기념연주회가 열렸다. 이 때 낭만(로맨틱)발레에 재능이 있는 이바노프에게 안무를 일임한 프티파는 완성도 있는 2막을 선보이며 큰 성공을 이루었고 이후 차이코프스키의 총 악보를 다시 연구한 끝에 1895년, 전 4막의 성공적인 <백조의 호수>를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프티파(1818-1910)가 이바노프에게 2막을 일임한 이유는 고령에 접어든 나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표현과 스토리 위주의 낭만발레가 지겨웠기 때문이었고 그의 관심은 완벽한 미학적 자세를 기반으로 해 이룩된 고전(클래시컬)발레로 자연스레 옮겨갔기 때문이다.
 

▲마야플리세츠카야의 오데트역.

순수한 춤으로의 진화가 그 이유였다는 것은 내게 새로운 발견이었다. 아! 그래서 기꺼이 이바노프에게 그의 재능을 펼칠 기회를 주었구나. 이바노프(1834-1901)는 2막과 4막을 안무했다. 역사 상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인 2막에서 이바노프는 고립된 영혼인 백조(오데트)의 이미지를 구현해냈다. 그에 비해 프티파는 3막에서 절박하고 충동적인 열정을 지닌 흑조(오딜) 이미지를 대비시킴으로서 선과 악의 끝없는 갈등을 보여주려 했다. 

한국에서는 1967년 한.중.일 합작공연으로 <백조의 호수>가 처음 공연되었다. 임원식, 당시 서울예술고등학교 교장이자 지휘자인 그는 음악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하기 이를 데 없는 발레계를 위한 체제의 정비와 대폭적인 지원이 절실함을 인사말에서 누누이 강조하였다. 악보는 물론 연습실조차 변변치 않았던 당시 상황을 떠올리면 우리 선구자들의 노력은 참으로 눈물겹다.

국립발레단에서 <백조의 호수>전4막(안무 임성남)을 초연한 해는 1977년이니 러시아 최초의 <백조의 호수>공연 이후 꼭 100년이 흐른 뒤다. 나에게는 1984년 국립발레단의 <백조의 호수>공연이 첫 주역 데뷔무대로 프티파와 이바노프 안무 이후 89년이 지나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