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그리운조성국 선생님 ②
[특별기고]그리운조성국 선생님 ②
  • 심우성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민속사학자
  • 승인 2015.05.15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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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에 이어>

▲ 심우성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민속사학자

[한국인간문화재 종합예술제 취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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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문화재나 우리 인간문화재는 이제 정부의 보호 만을 받고 있을 진열품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혈관에는 전통예술이 시원(胎原)하던 태고적 그 시대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조상들의 뜨거운 피가 맥박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들의 종목이 일상 생활과 다소 거리가 있더라도, 또 우리의 기예능(技藝能)이 완전한 것이 못 된다 할지라도 쉽게 공감이 갈 것이며 저절로 일체감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인간문화재들은 지정 무형문화재의 원형을 그대로 지키고 이어줄 임무 만을 맡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인으로서 이 시대의 새로운 전통예술을 창조하는 일은 우리들의 분야가 아닙니다. 예술은 살아 있는 것이며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인 것이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의 원형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임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능한 원형의 테두리 안에서 자신의 천부적인 소질로 명인대가(名人大家)의 경지에 이르는 길 만이 있을 따름입니다. 꼭 언급하여 두고 싶은 것은 이러한 우리의 작업은 전통예술의 수원지(水源池)로서 갖게 될 것이며, 이 수원지를 통해서 오늘에 창출될 주체성 있는 우리의 예술이 피어나게 될 것을 충심으로 바라는 바입니다.

▲ 조상국 선생님

한국인간문화재 연합회에서는 이번 종합예술제를 시작으로 지방 공연을 가질 예정이며 공예품전시회도 마련해서 국민 여러분을 모시고자 합니다.

전통예술의 바탕이 국민 생활 속에 자리 잡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데 이바지하고자 하오니 끊임없는 성원과 아낌없는 꾸짖음을 주시기 바랍니다.

전통예술이 온 국민의 관심에서 벗어나고 일상 생활에 뿌리박지 못하면 우리 스스로 달리 존립할 수 없다는 엄연한 법칙을 우 리는 뼈저리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정 문화재는 이미 민족적인 보배이기 때문에 안이(安易)한 복고조(復古調)도 아니며 값싼 관광자원은 물론 아닙니다. 이번 종합예술제는 오로지 국민 여러분과 숨결을 같이하는 공동의 광장일 것을 진심으로 바랄 뿐임을 밝혀 둡니다.

다시 한 번 숙연한 몸가짐으로 국민 여러분의 뜨거운 편달을 바라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이상의 취지문은 선생이 초안한 것을 당시 이 일을 추진하는데 주축이 되었던 몇 분과 또 나도 말석을 차지하여 밤새워 축조 심의했던 것입니다. 지금 보아도 선생의 앞을 내다보시는 안목에 감탄케 됩니다.

선생의 회갑잔치는 ‘영산줄다리기 쇠머리대기’(소민원,1978)라는 알찬 민속지(民俗誌)의 출판으로 대신 했었습니다.

서문은 임석재 선생이 쓰셨는데

“‘…줄다리기와 쇠머리대기’에 대해 이를 지정하기 위하여 담당 조사자가 현지를 답사하여 그 보고 문헌을 작성한 바가 있다. 그런데 이 문헌은 아무리 면밀히 조사하여 작성했다 하여도 외지인의 힘으로써는 누락과 미비가 있어 수박 겉핥기의 문헌이 된 모양이다. 이런 문헌에 미흡하게 여긴 영산 사람들은 올바르고 정확한 문헌 작성을 바랐으리라. 이런 지방인의 바람을 조성국 씨는 구현시키려 했다.

조성국 씨는 영산의 본토박이 인사다. 그는 영산에서 낳고, 자라고, 장가가고 살림하고 하면서 50고개를 넘긴 분이다. 그러므로 그는 영산의 지리적 조건이며 지역적 역사는 물론, 그 지방의 사회성, 경제 상황, 문화성, 민심의 기미까지 현미경으로 검고(檢考)하듯이 샅샅이 검고하여 효달(曉達)하고 있는 분이다.

이러한 인사가 자기 고장의 민속 문화를 문헌화하려 드니 그것은 올바르고 정확하고 타지인(他地人)으로서는 규지(窺知)할 수 없는 것까지 갖추어서 완벽한 문헌을 꾸몄을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중략)

조성국 씨의 향토문화에 대한 이러한 문헌화의 작업 태도와 기능은 다른 지방의 향토문화 연구가의 범례가 될 것이다. 지방 인사로서 자기 고장의 문화를 학적으로 구명하고 이를 문헌화한 사람은 여태까지 아직 보지 못했다.

이러한 점으로 모 면 조성국 씨는 향토문화의 문헌화 작업의 효시자(曉矢者)가 된 셈이다(후략)…”

▲영산줄다리기

한 분은 향토문화를 북돋기 위한 실천자요, 또 한 분은 이 방면의 전문학자로서 평생을 끈끈한 정으로 손잡았던 큰 어른이셨습니다.

넥타이를 맨 위에 흰 두루마기를 걸치고 영산 바닥을 휩쓸면서 줄다리며 쇠머리 대는 데, 미쳐버렸던 선생은 남은 신명 다 풀지 못하시고 우리의 곁을 떠나셨습니다.

그러나 해마다 영산 고을에서, 아니 젊음이 솟구치는 대학의 넓은 마당에서 그의 줄다리기는 오늘도 살아 꿈틀대고 있습니다.

소신껏 사시다가 홀홀히 가 버리신 일봉 조성국 선생님, 세상이 하 요상타 보니 당신이 더욱 그리워지는군요.

후학들이 엮은 이 『화보로 보는 ‘영산줄’과 ‘대학줄’』을 꼭 살피셔서 잘잘못을 일깨워 주셔야 할텐데….
그리운 조성국 선생님 부디 명복(冥福)하옵소서.